제2의 반도체 산업 된다더니…배터리,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안재광의 대기만성]

중국 전기차가 잘 팔릴 수록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전망이다

사진설명: 중국 IT 기업 화웨이가 작년 말 선보인 전기차 아이토(Aito) M9. 화웨이 / 한국경제신문


SK그룹이 요즘 굉장히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죠. 배터리 사업 때문입니다. 특히 이 회사가 안 좋은데요. SK온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SK온은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 된 자회사인데요. 떨어져 나온 첫해인 2021년에 2500억원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2022년에 약 5000억원, 지난해 8600억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적자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죠. 올해는 1분기에만 이미 3300억원 적자를 냈고요. 연간으로 하면 1조원을 가볍게 넘길 듯 합니다.

이게 SK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심각합니다. 한때 코스닥 대장, 코스피로 이전하는 에코프로도 올 1분기에 적자를 냈죠. 지주사 에코프로와 주력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이 각각 약 3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 산업’이 될 것이란 말까지 나왔는데요. 매출, 이익이 급증했고 주가도 폭등했죠. 그런데 단 1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반전했습니다. 반도체, 이런 말은 쏙 들어갔고요. 심지어 배터리가 과거에 태양광 산업처럼 중국에 다 먹힐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일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당연히 배터리가 ‘황금알’을 낳아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안 팔리는 전기차, 문제는 비싼 가격
배터리 산업이 안 좋은 건 우선 전기차가 잘 안 팔려서죠. 정확히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는데 이걸 충족을 못 해줬어요.

올 들어 4월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기차 판매는 약 177만 대였습니다. 작년 같은 기간 160만 대에 비하면 10%가량 증가한 겁니다.

10% 증가한 것이면 많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2017년부터 작년까지 6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무려 45.7%에 달했습니다. 이것과 비교하면 10%는 너무 초라한 수치죠.

그나마 중국 전기차 시장을 빼면 오히려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미국, 유럽 같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전기차를 안 사고 있습니다. 한국도 비슷한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기차가 아직까진 너무 비싸거든요.

작년에 기아에서 나온 EV9이란 모델이 있습니다. SUV인데요. 전기차가 대체로 작은 편인데 이건 크기가 팰리세이드보다 더 커서 큰 관심을 끌었어요. 그런데 가격이 최소 7000만원부터 시작하고요. 옵션 몇 개 달면 8000만~9000만원에 이릅니다.

전기차도 좋고 덩치 큰 SUV도 좋은데 기아 브랜드 달린 차를 이 가격에 살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올 들어 월평균 200대 조금 넘게 팔고 있어요. 비슷한 가격대의 제네시스 GV80은 4000대 넘게 팔립니다. 저 같아도 GV80 살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비싼 전기차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대체로 전기차가 동급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20~30% 비쌉니다. 여기에 전기차 같은 친환경 차에 주는 보조금은 계속 적어지고 있고요. 전기 요금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결국 전기차가 지금보다 20~30%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연기관 자동차와 경쟁이 어렵다는 얘깁니다.

전기차가 안 팔리니까 배터리에 들어가는 소재 가격도 크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에는 리튬이온배터리를 많이 쓰죠. 여기서 리튬 가격이 가장 중요한데요. 1년 전인 작년 6월에 kg당 300위안이 넘었는데 요즘은 80위안대로 뚝 떨어졌어요. 리튬은 중국 업체들이 가장 많이 사서 위안화가 기준이 됩니다. 배터리 양극재 원료로 쓰이는 니켈 가격도 톤당 2만2000달러 넘었던 것이 1만600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고요. 음극재 원료인 흑연도 30~40% 하락했습니다.

소재 가격이 떨어지면 배터리 소재 기업들 수익성이 안 좋아져요. 작년에 한국 증시의 최대 스타로 등극한 에코프로가 대표적인데요. 올 들어서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비싸게 사온 원료로 양극재를 만들었는데 이걸 싸게 팔아야 해서 그렇습니다. 에코프로는 삼성SDI 같은 셀 업체에 양극재를 공급하는데요. 셀 업체는 소재 가격에 마진 얼마를 얹어주는 식으로 에코프로로부터 양극재를 사오거든요. 소재 가격이 떨어지니까 가격을 확 후려쳐서 가져가고 있습니다. 포스코퓨처엠, 엘앤에프 같은 양극재 소재 기업들 다 비슷하게 비싸게 만들어서 헐값에 넘겨야 하고, 그래서 실적이 전반 다 안 좋아요.

분리막 소재는 더 안 좋죠. 배터리 소재는 크게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이 있는데요.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서로 닿지 않도록 일종의 벽 역할을 해줍니다. 분리막 소재 사업을 한국 회사들도 많이 했는데 하나둘 접고 있어요. 앞서 SK온 얘길 했는데요. SK그룹에 SK아이이테크놀로지란 분리막 사업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SK가 이 회사를 매물로 내놨습니다. 주문이 확 줄어서 공장을 절반 정도만 돌리고 있을 만큼 사정이 안 좋다고 합니다. 배터리 소재 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있는 겁니다.

소재 기업이 셀 업체보다 더 안 좋은 게 셀 업체들이 직접 소재 사업까지 하려 들거든요. 에코프로의 경우 최대 고객사인 삼성SDI와 함께 에코프로이엠이란 조인트 벤처를 세웠는데요. 주문을 여기로 집중해서 주고 있어요. 그래서 에코프로의 자체 양극재 사업 하는 에코프로비엠은 작년에 적자를 냈는데 합작사인 에코프로이엠은 15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고요. 올 들어서도 비엠은 적자, 이엠은 흑자가 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모기업인 LG화학에서 양극재를 받아서 쓰고 있고요.

◆中 전기차 부상…韓 배터리 최대 위기

그럼 배터리 셀 기업들은 괜찮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죠.

SK온도 어렵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도 암울한 상황입니다. 주가가 이걸 잘 반영하는데요.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2024년 6월 27일 기준 최근 1년 새 41%나 하락했고요. 삼성SDI도 46% 떨어졌죠.

전기차가 잘 안 팔린다고 했는데요. 한국 배터리를 쓰는 전기차가 특히 안 팔리거든요. 예를 들어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많이 쓰는 폭스바겐, 테슬라, 볼보 같은 회사들 전기차가 잘 안 팔렸어요. 특히 올 들어 4월까지 테슬라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41% 급감했고요. 볼보는 55%나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GM 전기차 판매는 늘고 있는데 이건 신차가 많이 나와서 그렇고요.

삼성SDI는 유럽 브랜드에 주로 납품하는데요. BMW가 매출 비중이 35%로 가장 큽니다. 또 스텔란티스와 아우디, 폭스바겐에도 공급하죠. 그런데 이런 브랜드 전기차 수요가 훅 빠졌습니다.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에선 전기차 보조금을 중단했거든요. 또 미국 리비안이란 회사에도 공급 중인데 리비안도 잘 안 팔리고 있고요.

근데 잘 팔리는 전기차도 있어요. 중국 전기차입니다. 테슬라 다음으로 전기차 많이 판 기업이 중국 BYD인데요. 올 들어 4월까지 48만 대 넘게 팔았어요. 시장점유율이 17.2%까지 올랐습니다. 1년 전에 비해 2.4%포인트 높아진 것이고요. 또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화웨이죠. 화웨이는 통신장비, 휴대폰 같은 걸 주로 만드는 회사인데요. 이런 IT 기술을 전기차에 접목해서 작년에 4단계 수준의 자율주행과 첨단 사양을 선보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표 모델인 아이토(Aito)는 올 들어 4월까지 10만 대 넘게 팔렸고 연간으로 30만 대 이상 팔릴 듯합니다.

중국 전기차가 부상할수록 한국 배터리 기업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되는데요. 중국 업체들은 중국산 배터리를 달기 때문입니다. 중국엔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 CATL을 비롯해 BYD, CALB 같은 대형 배터리 회사들이 즐비합니다. 특히 CATL은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기차에도 요즘 많이 들어가는데요. 리튬인산철, LFP 배터리 분야에선 한국을 한참 앞서 있죠.

LFP 배터리는 원래 배터리 용량이 낮아서 저가 전기차에 많이 쓰였는데 CATL이 기술력을 끌어 올려서 최근엔 한 번 충전으로 1000km까지 가기도 합니다. 전기차가 비싸서 잘 안 팔리는데 가성비 좋은 LFP 배터리를 넣으면 가격을 확 낮출 수 있어요. 그래서 현대차나 기아조차도 CATL 배터리를 일부 쓰는데 계속 적용 모델을 늘려가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한국의 배터리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중국 업체들과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승부는 지금부터 입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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