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 저평가? 웃기는 얘기[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따상’, 신규 상장 종목이 거래 첫날 공모가의 두 배로 시작해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2020년 등장했습니다. 구글 트렌드로 보면 2021년 말과 2022년 초 검색량이 급증한 후 금세 사그라드는 것이 보입니다.

광풍이 불었습니다. 공모주 투자가 대박을 의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기업들은 앞다퉈 계열사를 상장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1개도 없던 공모금액 1조원이 넘는 기업 상장이 6개나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상장 주식 수가 일순간에 급증하면 물량 부담으로 주가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때 상장한 대표적 기업이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입니다. 기업 상장은 자유이며 돈이 넘쳐나던 때였기 때문에 타이밍도 잘 잡았습니다. 하지만 모회사인 카카오와 계열사가 동시에 상장되는 ‘쪼개기 상장’이 시장의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카카오 투자자의 99%가 현재 손실을 보고 있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은 ‘물적분할’ 논란을 촉발했습니다.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 부문을 분리해 상장한 것에 대해 투자자들이 반발했습니다. 핵심 사업을 빼내가는 것도 문제지만 같은 업종의 대형 회사가 상장되면 기관투자가들은 기존 주식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LG엔솔 상장은 카카오 계열사 상장과 함께 한국 자본시장이 소액주주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근저에는 지배구조 문제가 깔려 있기도 합니다.

또 다른 논란의 회사는 남양유업입니다. 2000년대 남양유업은 항상 우량 자산주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순현금성 자산이 한때 시가총액의 80%에 육박했을 정도로 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질 논란, 오너의 판단 착오 등이 겹치며 결국 회사가 매각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2021년 한때 80만원을 찍은 주가가 반토막이 나며 투자자들의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기업만 신뢰를 못 얻은 것은 아닙니다. 느닷없이 튀어나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공매도 금지’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란 말도 못 꺼내게 만든 정책이었습니다.

이 밖에 한국 자본시장의 문제를 보여주는 장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여기서 삼성전자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2000년 이후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주가도 꽤 올랐습니다. 5월 말 기준으로 하면 10년 주가상승률은 154%에 달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삼성전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한국 대표주식의 역동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매출은 2013년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2014년 206조원을 기록했습니다. 작년 매출은 259조원. 10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2.32%에 그쳤습니다. 성장을 거의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은 삼성전자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삼성전자가 빛을 잃으니 시장 참가자들은 “살 종목이 없다”고 말합니다. 반짝했던 2차전지 기업들을 제외하면 새로운 스타 기업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시장 전체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혹자는 한국 시장이 저평가됐다고 합니다. 저평가란 말에는 향후 받게 될 정당한 평가가 함축돼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뢰도 없고 스타 기업도 없는 한국 주식시장에 저평가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장은 냉정합니다. 한국 시장은 딱 그 정도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밸류업 정책을 편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소액주주 보호도 해야 하고, 배당도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한국 시장의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안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식시장은 신뢰란 토양 속에서 꿈을 먹고 성장한다고 합니다. 미래의 이익을 당겨와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는 방식 자체가 희망에 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꿈이 있는 주식이 없습니다. 그 결과는 초라합니다. 코스피 상장사 시총 합계는 2270조원 정도입니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3조 달러, 4000조원이 넘습니다. 엔비디아는 한때 용산에서 그래픽칩을 팔던 회사로 취급당했지만 지금은 코스피 상장사를 다 팔아도 주식을 절반밖에 못 사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국 사회는 가난을 극복하고, 제조업으로 선진국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시스템은 그 역할을 다한 듯합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구조의 한계, 수십 년간 가장 머리 좋은 인재들이 의대로 방향을 잡게 했던 사회구조와 교육, 사회를 통째로 말아먹을 기세로 떨어지고 있는 출생률과 경제성장률, 고갈 타령만 하고 활용 방안은 없는 국민연금 등이 주식시장에서 꿈을 빼앗아 갔다면 과언일까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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