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도덕적인 나라[김홍유의 산업의 窓]


오늘도 우리 사회는 부(富)와 권력(權力), 도덕(道德)이 하나가 된 삼위일체의 인간을 그리워하면서 지독한 투쟁을 한다. 이는 모두 조선시대 유교의 유물이며 이미 낡아빠진 지식체계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한다. 조선시대에 부와 권력, 도덕을 얻는 길은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

첫째는 처사(處士)로 한평생 살면 도덕을 얻는다. 처사는 선비라고도 하며, 벼슬을 하지 않고 오직 학문과 도덕적 수양만 한다. 선비는 생계를 할 수 없기에 초야에 묻혀 가난하게 산다. 선비는 가난과 도덕을 무기로 현실 정치에 날 선 비판을 한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모르는 극단적 이상 원리주의자가 된다. 그렇지만 선비는 절대권력인 ‘도덕’을 가지고 있으며, 생업을 하지 않는다는 도덕을 증명해야 하기게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둘째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도덕과 권력을 얻는 길이다. 처사가 권력을 얻으려면 과거시험에 선발되어야 한다. 이제 관료가 된 처사는 사대부라 이름이 바뀐다. 사대부는 여전히 부를 축적하지 않았기에 ‘정치’하는 권력 집단에 머문다. 권력을 지향하지만 부를 멀리한다. 부의 ‘더럽고’, ‘불결한’ 이미지가 없기에 현실 정치에 강하게 참여한다. 현실적으로는 권력을 얻어 집권층이지만 부를 축적한 타락한 양반을 기득권이라 몰아붙일 때는 야당이 된다. 항상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소홀히 하여 조금이라도 도덕적 흠이 생기면 재야의 처사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는다. 우리는 재야에 있을 때 그렇게 도덕적으로 완벽할뿐더러 올바른 소리를 잘하는 분이 사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할 때가 많다.

마지막은 부와 권력, 도덕을 함께 가지는 양반이 되는 길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양반은 세습되지 않는다.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3대 자손까지만 양반으로 인정받는다. 고위 관료가 되어 권력을 얻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권에 개입하여 부를 축적한다. 이 과정에서 권모술수, 더러움, 불결한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러면 타락한 기득권층으로 몰려 처사와 사대부의 집중 비판을 받게 되고 급기야는 권력을 내려놓게 되고 부의 재편이 시작된다.

이것이 과거 우리가 꿈꾸던 사회의 모습이다. 조선시대는 농업 기반 사회다. 부를 축적할 수 있는 토지는 더 이상 늘지 않는 한계에 도달한다. 상공업으로 부의 지도를 바꿔야 하지만 그렇게 못했다. 누군가는 내놓아야 하고 누군가는 가져가야 한다. 누군가는 빼앗아야 하고,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권력자 수가 증가하면 가진 자원의 부족으로 부(富)가 줄어들게 되고, 그 결과 내부의 긴장감과 갈등이 고조된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산업화하면서 이런 맬서스 함정에서 벗어났다. 산업화 과정은 하나로 뭉쳐져 있던 삼위일체인 부와 권력, 도덕이 분화된 계기를 만들었다. 부는 기업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시장을 개척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양반이 되었다. 권력은 정치가가 되어 국민과 소통하고 나라를 경영하는 그룹으로 분파되었다. 도덕은 산업화에 알맞은 품위로 변경되어 전 국민이 가져야 할 개인의 덕목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낡은 인식의 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인에게도 무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기업인의 실적은 지속 성장이며 매출액이다. 일론 머스크처럼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해도 테슬라가 지속 성장을 하고 매출이 증대되어 주주의 이익이 극대화되면 훌륭한 경영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상한 짓이 갑질로 바뀌어 처벌 받는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개인의 문제로 분파한 ‘도덕’이라는 덕목이 여전히 ‘삼위일체’의 틀 안에서 꿈쩍도 못 하고 있다.

기업인이든 정치가든 갑질은 조직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다. 더 심각한 낡은 인식은 부는 도덕적으로 타락한다는 이미지다. 조선시대에 양반은 생업을 할 수 없었다. 오직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권력을 얻어야만 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 따라서 부(富)라는 인식에는 ‘타락’이라는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고 가난이라는 이미지에는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되었다. 하지만 산업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산업이 생기고 국제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권력이 아닌 개인의 능력이 부를 결정하는 요소로 바뀌었다. 유교가 국가발전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도구로 활용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이념화될 때는 국가의 부를 퇴보시킨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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