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간 매출 513억6200만 달러,
당기순이익 57억 달러 기록…제자리 걸음
너무 많아진 경쟁사
온홀딩·호카 등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인기
존 도나호 나이키 CEO,
스포츠 개념과 이해도 낮은 '컨설턴트' 출신
영원한 1위, 스포츠 제왕, 명품보다 더 비싼 리셀가….
나이키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언제나 화려했다. 오랜 경쟁사인 독일의 아디다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1980년대 이후 나이키의 영향력은 독보적이었다.
스포츠 스타 마케팅으로 내놓은 상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고 루이비통, 디올, 자크뮈스 등 유명 명품 브랜드들은 앞다퉈 나이키와 협업을 하려 했다.
그러던 나이키가 흔들리고 있다. 2021년 한때 160달러대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최근 70달러대로 추락했다. 2022년부터 줄곧 내리막을 걷더니 6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나이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나이키, 얼마나 안 좋길래최근 나이키 실적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나이키는 지난해 연간 매출 513억6200만 달러, 당기순이익은 57억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0.3%, 12.4% 늘었다.
나이키는 2021년 60억46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50억7000만 달러로 16.1% 감소했다. 이후 지난해 57억 달러로 약간 늘었다.
4분기(3~5월) 매출은 126억600만 달러, 순이익 15억 달러를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했다. 월가의 전망치(128억6000만 달러)를 밑도는 부진한 수치였다.
실적이 지지부진하자 주가는 폭락했다. 나이키가 연간 실적과 4분기 실적을 발표한 6월 27일(현지 시간) 다음 날 회사의 주가는 20% 가까이 떨어졌다. 증권업계에서는 ‘나이키 최악의 하루’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모건스탠리 앨릭스 스트라튼 애널리스트는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전략 변화를 거치는 동안 나이키의 최근 실적은 엉망이 되고 있다”며 “나이키의 장기적 성장과 수익성 궤적은 불분명하고 이전 가정치보다 낮다”고 전했다.
심지어 실적 전망도 부정적이다. 나이키가 발표한 2025 회계연도 1분기(2024년 6~8월) 매출은 전년(129억3900만 달러) 대비 10%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LSEG가 발표한 전망치(3.2% 감소)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나이키는 올해 전체 매출도 한 자릿수 중반 수준의 하락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당초 나이키는 0.9% 증가를 예상했지만 최근 이 의견을 ‘하락’으로 변경했다. ◆ 요인 1. 너무 많아진 경쟁사나이키가 하락세를 걷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경쟁사의 영향력 확대’다.
우선 나이키의 사업 부문은 △신발 △의류 △액세서리 등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매출의 65~70%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신발이다.
문제는 최근 나이키 신발 사업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러닝화 분야에서는 다양한 전문 브랜드가 등장했고 아디다스는 레트로(복고) 트렌드 영향으로 가젤, 삼바 등 과거 인기를 끈 제품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반면 나이키는 이렇다 할 히트 제품이 없다.
업계에서는 러닝화 시장에서 나이키의 영향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미국의 소비지출 위축과 잠재적인 경기침체에도 소규모 운동화 브랜드들의 주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동종 업체들을 제치고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호카, 온러닝 등 규모는 작지만 전문적인 브랜드가 대기업인 나이키를 제치고 러닝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호카는 시중에 판매되는 러닝화보다 2배 이상의 쿠션감을 추가하고 험난한 지형에도 적합하도록 신발 밑창(아웃솔)을 과하게 부풀린 제품으로 러너들의 선택을 받았고, 온홀딩(온)은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밑창이 수평 또는 수직으로 압축돼 필요한 곳에 쿠션을 제공하는 제품으로 성공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이키는 러닝 문화의 붐을 놓친 것”이라며 “대기업이 신생 기업에 시장점유율을 내주고 있고 이로 인해 매출은 침체되고 있다”고 전했다.
역사가 오래된 경쟁사들도 나이키와 달리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우선 미국 러닝화 브랜드 브룩스는 나이키의 대체재로 관심을 받고 있다. 브룩스는 지난해 12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치다. 2018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은 14%를 웃돈다. 짐 웨버 브룩스 CEO는 “브룩스처럼 달리기에 집중하는 브랜드에 지금보다 더 신나는 시기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는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0억 달러를 달성하며 전년 대비 7% 늘었다. 회사에 따르면 미국 소매점 성인용 기능성 러닝화 시장에서 1위를 기록했고 연간 시장점유율은 21%를 기록했다. 브룩스는 “지난해 2000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원한 경쟁자 아디다스는 복고 유행에 힘입어 젊은층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아디다스의 대표 모델인 삼바는 1949년 출시된 제품이지만 최근 ‘잇 슈즈’(젊은층에서 인기 있는 신발 모델들)로 떠오르며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외에도 가젤, 슈퍼스타, 캠퍼스 등 다수의 모델도 반응이 좋다.
비욘 굴덴 아디다스 CEO는 “지난해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삼바, 가젤, 스페지알, 캠퍼스 등의 매출이 성장했다”며 “소비자와 관련해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한 해를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요인 2. 잘못된 판매 전략아디다스 역시 나이키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5800만 유로(약 83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연간 적자는 1992년 이후 처음이다.
주가도 부정적이었다. 2021년 300달러선까지 치솟던 주가가 2022년 들어 추락하기 시작했고 한때 100달러 선까지 무너졌다.
그러나 아디다스는 다시 살아났다. 아디다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54억5800만 유로, 영업이익은 3억3600만 유로를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460% 늘었다.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한 58억2200만 유로, 영업이익은 96.6% 늘어난 3억4600만 유로다.
주가는 지난해 7월 24일 174.80유로에서 지난 7월 22일 228.70유로로 뛰었다. 1년 만에 30.8% 올랐다.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다른 길을 걷는 가장 큰 이유는 채널 전략의 차이다. 그간 고집해온 소비자직접판매(DTC)를 포기한 게 아디다스 재기의 핵심 요인이다. DTC는 제조사가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자사몰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온·오프라인 플랫폼에 입점할 경우 입점 수수료, 판매 수수료 등을 내야 하지만 제품 경쟁력이 있다면 자체 매장을 운영해 이 금액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DTC의 장점이다.
문제는 트렌드의 변화다. 이커머스가 유통산업의 주류가 되면서 소비자들은 쉬운 주문과 결제 등 쇼핑 편의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됐다. 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제품을 경험·비교해 구매하는 행위가 자리 잡았다. 전 세계에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이 인기를 끈 것도 같은 이유다.
아디다스는 채널 전략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했다. 굴덴 CEO는 소매점 등 유통 채널과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DTC를 포기했다. 그는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변화는 채널”이라며 “12개월 전만 해도 DTC 중심 회사였지만 이제 리테일러와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디다스는 소매업체와의 관계 개선을 사업 개편의 우선순위로 삼았다.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리테일 파트너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공급을 꾸준히 늘렸다.
반면 나이키는 DTC를 고집했다. 2022년 나이키는 2025년까지 매출의 60%를 DTC에서 발생시키겠다고 선언하는 등 DTC 강화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나이키는 DTC 강화를 위해 2021년 미국 메이시스 백화점을 비롯한 여러 유통점과 관계를 끊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 6월에는 일부 나이키 주주들이 존 도나호 CEO와 매슈 프렌드 CFO 등 고위 임원 2명을 상대로 DTC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DTC 전략이 실패했음에도 채널 전략을 고집했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들은 “나이키는 많은 도매 및 소매 파트너와 관계를 끊었고, 이후 심화된 경쟁에서 회사를 보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나이키는 이에 따라 전략을 수정했다. 플랫폼에 다시 입점했다. 도나호 CEO는 지난 4월 DTC 전략이 잘못됐다는 걸을 인정했다. 그는 “우리가 의도했던 것과 달랐다”며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도매, 소매 파트너들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요인 3. 또 컨설턴트가…현지에서는 나이키의 근본적인 문제는 스포츠에 대한 개념과 이해도가 낮은 MBA 출신의 컨설턴트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이 월스트리트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알지만 운동선수 또는 러너들이 원하는 것은 영원히 모를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실제 도나호 CEO는 스포츠웨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다트머스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나이키로 옮기기 직전에는 클라우드 기반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 서비스나우 CEO로 있었다. 그 이전에는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에서 일했다.
일각에서는 제품 이해도가 높은 전직 운동선수가 이사진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나이키는 되살아날 수 없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실제 나이키의 공동 창업자이자 2015년까지 이사회 의장을 맡았던 필 나이트 역시 오리건대 육상 선수 출신이다.
그 결과 충성 고객으로 꼽히는 ‘커뮤니티’를 외면한 문제로 이어졌다. 현재 나이키는 △커뮤니티 소통 단절 △엘리트 선수에 치중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나이키는 엘리트 선수와 올림픽 등 글로벌 영향력이 큰 주요 대회 등을 후원하고 있지만 소규모 러닝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WSJ는 “작은 브랜드들의 행보와 달리 나이키는 커뮤니티 투자에서 한발 뺐다”고 전했다.
이 기간 호카, 뉴발란스 등 경쟁사들은 지역 러닝 단체를 후원하는 등 커뮤니티를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 특히 이들은 젊은 러너들을 유치하기 위해 러닝 클럽도 운영했다. 온 러닝클럽, 호카 글로벌러닝클럽 등이 대표적이다.
소매업 애널리스트 닐 손더스는 “나이키는 여전히 가장 큰 회사지만 그 규모가 결국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이키는 커뮤니티 대신 유명 인사와 협업한 일회성 제품을 확대하는 등 ‘한정판 전략’에 치중했다. 그간 나이키는 미국 래퍼 트래비스 스콧, 영국 래퍼 스켑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등과 협업 제품을 선보이며 스타 마케팅을 이어왔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