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너무 착했지?"…파괴력 커진 트럼프의 경제정책[해리스vs트럼프③]

칩스법·IRA법 비난한 트럼프, 한국 기업 영향은?
관세 올리고 감세 추진
"강달러 시대 끝내 수출 경쟁력 끌어올리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 18일 위스콘신주 밀워키 파이서브포럼 무대의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AP 연합뉴스


“(트럼프 1기 때의) 결정적 실수는 ‘너무 착했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지난 4월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정권을 잡으면 더 단호하고 속도감 있게 자신의 구상을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수많은 경제정책 중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이 꾸준히 언급하는 네 가지 주제가 있다. 관세는 올리고 세금은 줄인다. ‘강달러’ 시대에 마침표를 찍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중앙은행(Fed)을 압박해 독립성을 약화한다.

감세와 저금리·약달러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상충한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의 정책이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한마디가 추가될 때마다 전 세계 증시가 출렁이고 채권시장이 움직였다. 금과 비트코인의 진폭도 커지고 있고 통상 정책 변화에는 전 세계 기업과 국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트럼프의 말을 통해 더 파괴적인 힘을 가질 ‘트럼프 2기’의 경제정책을 정리했다.
지난 7월 18일 트럼프의 이 한마디로 전 세계 반도체 주가가 줄줄이 급락했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에 시장이 반응한 것이다.

우선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전부 가져갔다는 트럼프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은 엔비디아, 퀄컴, AMD 등 반도체 설계 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을 키웠다. 노동집약적이고 인건비가 비싼 반도체 ‘생산’에는 관심이 없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테일러시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설계하면 생산은 TSMC나 삼성전자 등 아시아 기업이 맡아서 하는 ‘분업화’가 당연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 공식이 뒤집어졌다.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설계부터 생산까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자립’을 결정했다. 바이든의 강력한 의지로 공급망 재편은 빠르게 이뤄졌다.

해외 기업의 생산공장을 미국 내로 끌어들였고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가 이뤄졌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수십조원을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영향이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만들어 보조금을 주는 당근을 내밀었다. 칩스법 안에는 390억 달러(약 53조원)의 보조금과 750억 달러(약 103조원) 상당의 대출 지원이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미국 반도체 공장에 총 440억 달러(61조원)를 투자하기로 했고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 달러(5조2000억원)를 투자한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칩스법을 비판하고 나선 만큼 한국 기업의 수출 전략도 뒤집힐 수 있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바꿀 경우 미국 투자 방향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가 칩스법과 함께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법안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다. 트럼프는 IRA를 아예 ‘녹색 사기’로 규정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몇 년간 발생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공급망 대란에서 촉발했다고 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등 청정 에너지 산업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해 고물가를 극복하겠다는 게 IRA의 구상이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전기차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막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특히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는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 정도 세액공제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대신 배터리 부품 중 북미산이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핵심 광물도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40% 이상을 사용한 제품만 포함됐다.

IRA 발효 이후 태양광 산업을 하는 한화솔루션과 배터리 사업을 하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가 모두 미국 공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

IRA 혜택을 위해 다른 나라 대신 미국 시장을 택한 만큼 법안의 존폐 여부에 기업의 생산능력과 수출 전략이 달렸다. 트럼프는 최근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인플레이션 위기를 부추기는 현 정부의 터무니없는 세금 낭비를 끝낼 것”이라며 IRA 폐기를 시사했다.

대신 “원유 등 에너지 생산을 늘리겠다”며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공급할 뿐만 아니라 세계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규모의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재생 에너지가 축소되고 이 때문에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전기차 산업은 위축되고 유가는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서 원유 생산량이 늘어날 경우 유가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가 당선된다고 해도 IRA를 쉽게 폐기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의회를 통과한 법안인 만큼 공화당의 압도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IRA와 칩스법이 대통령 행정명령이 아니라 의회를 통과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국승민 미시간주립대 정치학과 교수는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넉넉한 차이로 다수당이 돼야만 IRA를 폐지할 텐데 만약 상·하원 중 하나라도 의석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어려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역시 “오는 11월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원 전원과 상원의원의 3분의 1도 교체된다”며 “선거 결과 공화당이 의회를 석권해야 법안 폐지나 수정이 가능한 만큼 한국 기업들이 의회 선거 내용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한국 기업들이 투자한 지역이 모두 공화당 텃밭이라는 점이다.

신 변호사는 “칩스법과 IRA와 연계해 한국 기업들이 투자한 지역이 텍사스나 조지아 등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라며 “한국 기업이 투자를 통해 현지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 철폐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세도 트럼프의 핵심 공약이다. 트럼프는 2017년 재임 당시 2025년까지 연방 법인세율을 35%에서 21% 낮추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법인세 인하를 연장하는 동시에 앞으로 15%까지 낮추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에서는 근로자를 위한 대규모 세금 감면도 언급했다. 특히 팁(Tip)에 대한 세금면제를 다시 주장했다. 지난 6월 공화당원들과의 회의에서는 소득세를 전면 폐지하고 이를 초고율 관세로 대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트럼프는 감세가 기업 투자, 가계 소비 여력을 늘려 경제성장과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정부 세수가 줄어들면서 이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이 늘어나고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의회 예산국은 트럼프의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재정에 5조 달러의 추가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정을 확대해 돈을 풀면 물가는 오른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16명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가 미국의 세계적 경제적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인플레이션 재가열 등 경제에 불안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트럼프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추는 대신 해외 기업에 관세를 더 받아 곳간을 채운다는 입장이다.

공약에는 모든 국가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1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제품에는 최소 6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대선 수락 연설에서 “중국산, 멕시코산 차량에는 200%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앙겔라 메르켈(왼쪽 세번째) 전 독일 총리가 2018년 6월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회의장에 앉아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 첫번째)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는 관세가 미국 경제를 외국 제조업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를 촉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동맹국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생산 주권을 잡았다면 트럼프는 더 강경한 방식으로 제조업 르네상스를 일으키겠다는 의미다.

지난 7월 18일 트럼프가 중국뿐만 아니라 멕시코에도 대규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멕시코 공장 계획을 일단 중단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강달러 현상을 비판했다. 당시 엔화 대비 달러가 최고점을 찍자 “멍청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말로 들리겠지만 미국 제조업체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라고 썼다.

달러 가치가 높아서 미국 제조업체들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JD 밴스 상원의원 역시 달러 패권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밴스 상원의원과 포옹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밴스 상원의원은 지난해 상원 청문회에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가 미국 소비자에게는 보조금이지만 미국 제조업체에는 세금”이라고 발언했다. 다른 국가에서 수입해오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올라가지만 해외 제조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미국 기업들에는 악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무역보좌관이자 차기 재무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트럼프 재선 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을 고민해 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라이트하이저는 1985년 플라자 합의와 유사한 방식으로 외국 정부와 대규모 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보다 확실하게 달러 가치를 낮추는 방법은 금리인하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할 경우 달러 약세를 위해 Fed에 더 많은 달러를 찍어내도록 촉구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달러 약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Fed를 압박해야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낮은 금리가 좋다”면서도 “11월 대선 때까지 연준이 금리를 내리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놨다. 대선 전에 금리를 내려 경기가 호전되면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4월 트럼프 선거 캠프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의 측근들이 트럼프 재선 이후 연준의 독립성을 약화시켜 정부가 금리 정책에 강력하게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미 파월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는 7월 16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내가 보기에 파월이 ‘옳은 일을 하는 것 같으면’ 임기(2026년 퇴임)를 채우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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