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기사는 근로자”…프리랜서 플랫폼 비상 [민경진의 판례 읽기]
입력 2024-08-04 06:04:01
수정 2024-08-04 06:04:01
대법, 쏘카 패소 원심 확정
유사 소송 이어질 경우 플랫폼 생태계 ‘흔들’
택시 호출 서비스 ‘타다’ 운전기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플랫폼 기업과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종사자라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했다면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전자상거래, 배달, 청소 등 다양한 분야의 플랫폼 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법원이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플랫폼 업계는 “일과 고용자를 이어주는 플랫폼 사업의 특성을 간과한 결정”이라며 향후 줄소송을 우려하고 있다.
“회사에 근무 시간·장소 구속”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024년 7월 25일 타다 운영사였던 VCNC의 모회사 쏘카가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중노위 측 보조참가인인 A 씨는 2019년 5월 VCNC와 운전기사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7월 회사는 70여 명의 인원을 감축하면서 A 씨에게도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A 씨는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지만 지노위는 신청을 각하했다. 이어진 재심에서 중노위는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중노위는 “A 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그 사용자는 쏘카이며 인원 감축 통보는 서면 통지의무를 위반한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이에 불복한 회사 측은 재심 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운전기사의 업무가 이용자 호출에 의해 결정되고 운전기사에게 배차 수락 결정권이 있었다”며 회사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업무가 타다 서비스 운영자가 정한 틀 내에서 이뤄졌고 구체적인 지휘·감독이 있었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중노위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타다 운전기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봤다. 상고심 재판부는 “(A 씨가 소속된) 협력 업체는 VCNC가 제공한 교육자료 등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프리랜서 드라이버의 업무 내용을 별도로 결정하거나 독자적으로 관리·감독할 자료나 수단을 보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VCNC가 협력업체에 배포한 교육자료 등과 앱을 통해 안내된 운전업무 수행 절차, 방법 등은 사실상 복무 규칙으로 기능했다”며 “앱을 통해 드라이버의 근태를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 씨는 제3자로 하여금 운전업무를 대신 수행하게 하거나 운전업무 수행 중 추가적인 이윤 창출을 할 수 없었다”며 “운전업무에 사용된 차량과 비품은 모두 회사 소유였고 부대비용 일체를 회사가 부담한 반면 피고 보조참가인은 손실을 초래할 위험을 부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협력업체는 운전업무에 관해 독립성, 독자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A 씨는 VCNC가 정한 근무 시간·장소에 구속됐고 근무 시간에 비례한 보수를 받았으므로 그 보수는 근로 자체의 대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근로자에 완화된 기준 적용
대법원은 이날 플랫폼 근로자도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감독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판단하는 기존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사용자가 근로자가 직접 개별적인 근로계약을 맺을 필요성이 적은 사업구조, 일의 배분과 수행 방식 결정에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이나 복수의 사업참여자가 관여하는 노무관리의 특성을 고려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및 사용자 판단 요소들을 적정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 완화된 근로자성 판단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근로자성을 확대한 판결”이라며 “다른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플랫폼 경제 생태계에 큰 부담을 줄 판결이다”고 밝혔다.
“플랫폼 특수성 간과” 줄소송 우려
플랫폼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쏘카는 A 씨 등 70여 명의 부당해고 주장에 대한 배상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인건비와 노무 관리 부담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쏘카 측은 “법원이 타다 드라이버 공급업체와 타다 서비스 운영사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한 것은 플랫폼 사업이라는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타다 판결을 계기로 다른 플랫폼에서도 유사 소송이 이어질 경우 한국의 플랫폼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리랜서 서비스 공급자와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중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회사가 적지 않아서다.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플랫폼 사업 모델 자체가 일과 고용자를 이어주는 것인데 이번 판결로 고민해야 할 회사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얼어붙은 플랫폼 투자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이제 어떤 투자자가 법적 리스크가 있는 플랫폼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려고 하겠냐”며 “플랫폼 생태계에 돈이 돌지 않으면 폐업하는 플랫폼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기준 국내 플랫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2년 전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VCNC는 2018년 10월 스마트폰 앱으로 운전기사와 11인승 승합차를 빌려 이용하는 ‘타다 베이직’을 선보였다. 한때 17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불법 콜택시 영업”이라는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2020년 3월 ‘타다금지법’이 통과되면서 서비스가 중단됐다.
검찰은 타다 서비스가 면허 없이 유상으로 여객자동차 운송사업을 했다고 보고 2019년 10월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전 대표를 불구속기소 했다. 하지만 이들은 1·2심에 이어 2023년 6월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돋보기]
“불이익 처분 3개월 지나 상대 변경해도 적법”
회사 측은 재판 과정에서 A 씨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 과정에서 뒤늦게 상대를 변경한 것도 문제 삼았다. 대법원은 이 쟁점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면서 노동위 구제 신청 절차의 피신청인 변경 적법 여부와 그 판단 기준을 최초로 판시했다.
A 씨는 지노위에 VCNC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는데 이후 쏘카를 상대로 추가했다. 이에 회사 측은 행정소송에서 최초 구제 신청의 대상이 된 불이익 처분인 ‘인원 감축 통보’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쏘카를 상대로 추가한 것은 ‘제척 기간’을 넘겨 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모두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상고심 재판부는 “현대의 고용 형태가 점차 다변화됨에 따라 근로자는 자신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정확히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그러한 경우일수록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를 이용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자의 구제 신청 이후 피신청인을 추가하거나 변경할 사정이 발생했는데도 제척기간이 이미 도과했다는 이유로 구제를 거부한다면 노동위 구제 절차를 둔 취지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상고심 재판부는 “A 씨가 제척기간 내에 인원 감축 통보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이상 원고를 피신청인으로 추가하는 당사자변경신청이 제척기간 후 이뤄졌더라도 피신청인 변경이 허용되고 제척기간 준수에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대법원은 피신청인의 추가나 변경은 최초 구제 신청의 대상이 된 불이익처분을 다투는 범위에 한정돼야 한다고 봤다. 또 노동위는 새로운 피신청인에게 주장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