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신화'에서 '양치기(?)'로 전락한 구영배[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③]

20년 전, 국내 최초의 오픈마켓 지마켓 설립
옥션 뛰어넘는 1위 업체로 만들며 실력 인정받아

이베이와 경업금지 계약으로 한국 떠나
싱가포르서 큐텐 설립해 이커머스 사업 지속

2020년 이후 한국 재진출
티몬부터 AK몰까지 연이어 인수

[커버스토리: 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20년 전 구영배는 이커머스 신화로 불렸다. 국내 최초의 오픈마켓 지마켓(G마켓)을 만들고 당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미국 이베이에 회사를 팔았다. 전형적인 창업 성공의 스토리였다. 그래서 그는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구영배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고 싶어했다.

2024년 구영배의 이미지는 180도 달라졌다. 금융당국은 그를 ‘양치기 소년’이라 규정했다. 티몬과 위메프 피해자들은 구영배를 사기꾼이라며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 구영배, 지마켓에서 큐텐으로1966년생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이커머스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은 1999년이다. 당시 인터파크를 이끌던 이기형 사장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구영배 대표는 1991년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계 석유탐사회사 슐럼버거에 다니다 1999년 인터파크에 입사했다. 2000년 인터파크 경매사이트 ‘구스닥’의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고 2001년 인터파크에서 사내 벤처 형태로 인터파크구스닥(현재 G마켓)을 창업했다.

구스닥이 G마켓이 된 것은 2003년이다. 마켓플레이스 기능을 강조한 ‘마켓’을 적용해 ‘G마켓’으로 이름을 바꾸고 당시 1위 업체였던 옥션과 경쟁했다. 구스닥 사장 구영배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시장에서 옥션과 경쟁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며 “이미 30만 개에 달하는 상품거래와 가격 경쟁력 등에서도 옥션에 이은 마켓플레이스로 시장점유율 국내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맞붙겠다”고 했다.

결과는 대성공. G마켓은 어렵지 않게 오픈마켓 1위를 차지했다. 출범 2년 만인 2005년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고 이듬해 4분기 옥션의 거래액을 추월하며 왕좌를 차지했다. 2006년에는 미국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2008년에는 거래액 4조원이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냈다. 설립 5년 만이었다. 매년 거래액이 조 단위로 늘어난 셈이다.

결국 옥션의 대주주였던 이베이는 G마켓의 승리를 인정했다. 이베이는 경쟁 대신 소유를 택했다. 2009년 4월 이베이는 G마켓 경영진 보유분 등 총 67%에 달하는 지분을 약 8억 달러(1조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이베이는 순차적으로 G마켓 지분 100%를 사들였고 여기에 투자한 금액은 12억 달러(약 1조6000억원)에 달했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 회사에 자신을 투영한 사업가나스닥 상장, 매각을 통해 신화를 쓴 구영배는 한국을 떠났다. 매각 당시 이베이와의 계약 조건 가운데 ‘10년 경업금지’가 있던 탓이다. 이베이는 구영배가 동종업계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제3자를 내세워 사업하는 것을 금지했다.

싱가포르에서 구영배는 G마켓을 매각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베이와 손을 잡고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큐텐이다. 2010년 5월 일이다. 자본금은 2000만 달러(약 225억원), 구영배가 51%, 이베이가 49%를 출자했다. 대표는 구영배가 맡았다.

G마켓을 이끌 때도 해외 진출 욕심이 있었던 그는 이베이와 함께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나섰다. 2006년 G마켓을 코스닥이 아닌 나스닥에 상장시킨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전 세계 시장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포착했고 한국에만 갇혀 있으면 도태된다는 판단이었다.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스닥 상장이 필요했다.

구영배는 당시 “이번 합작사 설립으로 일본과 싱가포르 시장에 맞춤형 전자상거래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구영배는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G마켓의 이전 사업명인 구스닥에는 구영배의 ‘구’가 들어간다. G마켓의 ‘G’ 역시 구(GOO)의 이니셜을 사용했다. 큐텐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탐험(Quest)의 ‘Q’를 사용했다고 설명하지만 업계에서는 구영배의 영어 발음 ‘쿠(QOO)’를 사용했다는 의견이 있다.

큐텐은 한국 소비자에게 ‘해외 직구 업체’로 알려져 있었다. 2013년부터 한국어 지원을 시작했으며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큐텐에서 10억벌기’라는 네이버 카페가 운영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큐텐은 2015년 한국에서 국내 기업과 셀러들을 대상으로 입점 설명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인지도 확대에 나섰다. 이 시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큐텐 직구 후기’, ‘큐텐에서 휴대폰 구매하는 방법’ 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젊은 직구 고객들은 구영배란 이름은 알지도 못했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큐텐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021년 ‘이베이코리아 예비 입찰’이었다. 이베이코리아가 매물로 나오자 신세계, 롯데, SK텔레콤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예비 입찰에 참여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등장했다. ‘큐텐’이었다. 구영배는 10년 경업금지가 풀리는 2020년이 지나자 한국 진출에 속도를 냈다. 이베이코리아 입찰도 같은 맥락이었다. 구 대표와 이베이의 긴밀한 관계가 주목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큐텐은 한국에 별도 법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해외 직구 사업을 위해 직원들이 상주하는 사업장만 있었다. 그러나 당시 5조원까지 치솟던 이베이코리아의 높은 몸값 탓에 큐텐은 본입찰에서 탈락했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 2년 전 시작된 덩치 불리기한국 무대에 다시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2022년 9월. 티몬 투자사로부터 티몬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티몬 지분은 사모펀드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PSA컨소시엄(티몬글로벌) 등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큐텐이 이 지분 전량을 사들였다.

방법은 지분 교환. 티몬 지분과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형태다. 사모펀드들은 티몬 지분을 큐텐에 전달하고 큐익스프레스가 발행한 신주를 받았다. 현금은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큐텐은 티몬 대표 자리에 류광진 당시 큐텐 부사장을 앉혔다. 류광진 대표는 구영배와 함께 G마켓을 성공시킨 창립 멤버 중 한명이다.

큐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3년 3월 인터파크의 쇼핑부문(현재 인터파크커머스)을 사들였고 4월에는 위메프까지 품었다. 시장에서는 이들 3개 회사 인수 규모를 약 6000억원 안팎으로 봤다. 티몬 2000억원, 인터파크커머스 1500억원, 위메프 2500억원 등이다.

실제로 오간 돈은 없다. 3개 회사 모두 지분 교환 방식으로 확보했기에 현금을 조달할 필요도 없었다.

올해도 미친듯한 M&A는 멈추지 않았다. 2월에는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사 콘텍스트로직이 운영하는 쇼핑몰 위시를 1억7300만 달러(약 2300억원)에 인수했다. 일부 지분 교환 방법을 이용했지만 이때는 약 400억원 규모의 현금이 필요했다. 7월 30일 구영배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티메프 관련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 위시 인수에 정산대금 일부를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 대표에게 “티몬의 판매자 정산대금을 위시 인수에 활용했냐”고 질문했다. 구 대표는 “맞다. 그렇지만 한 달 내로 바로 상환했다. 증거 있다”고 답했다.

큐텐은 한 달 만인 3월에도 애경그룹의 AK플라자가 운영하던 AK몰을 5억1782만원을 주고 사들였다. 지급 형태는 현금이었다.

구영배는 지난 2년간 자본잠식 상태의 업체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면서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입점사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고 티몬과 위메프는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 상태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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