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의 골짜기’ 들어섰다?…주가 떨어뜨린 AI 버블론

월가 중심으로 AI 수익성에 의구심 급증
피차이 "과잉 투자보다 과소 투자가 훨씬 위험"
가트너, AI 반드시 거쳐야 할 기술 발전의 필연적 현상

[비즈니스 포커스]


인공지능(AI) 열풍을 주도하던 엔비디아 주가가 급락했다가 잠시 반등하는 장세를 거듭하면서 최근 10일 변동성지수는 등락이 심하기로 유명한 비트코인보다도 2배나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갑작스러운 주가 변동의 배경에는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AI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짙게 깔려 있다.

1250억 달러의 구멍이
5000억 달러의 구멍으로지난 6월 20일 월가에 문제의 글이 하나 등장했다. 실리콘밸리의 최고 벤처투자사 중 하나인 세쿼이아캐피털의 파트너 데이비드 칸의 ‘AI의 6000억 달러 문제’라는 글이었다. 그는 빅테크 기업들이 AI 프로젝트나 기술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필요한 매출은 올해 연간 추정치 기준으로 6000억 달러(822조6000억원)인데 실제 매출은 후하게 가정해도 1000억 달러(137조1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계산이 맞다면) 투자한 돈의 고작 17%에 불과하다. 올해에만 5000억 달러의 구멍이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수익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도발적인 질문은 사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가 추정한 AI업계의 2023년 연간 손실은 1250억 달러였다. 불과 1년 만에 1250억 달러의 손실이 5000억 달러로 커진 것이다. 그는 “AI 인프라 구축에 따른 수익 기대치와 AI 생태계의 실제 수익 성장 사이에 큰 격차가 있음을 알아챘다”고 썼다. 즉 빅테크 기업들의 인프라 투자 비용과 기대매출 간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칸은 1000억 달러에 불과한 매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AI 수익의 대부분을 ‘챗GPT’를 만든 오픈AI 1개사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의 IT매체인 더인포메이션은 오픈AI의 수익이 2023년 말 16억 달러에서 현재 34억 달러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소수의 스타트업도 수익을 확대했지만 1억 달러 미만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칸은 챗GPT를 제외하고 오늘날 소비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AI 제품은 몇 개인지 되물었다.

그의 발표는 실리콘밸리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포브스도 AI 컨설팅사인 퓨처럼그룹의 대니얼 뉴먼 CEO는 기고를 통해 칸의 AI 수익성에 대한 질문을 조명했다. 7월 9일 뉴먼은 “칸의 글은 올해 가장 흥미로운 얘깃거리였다”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은행, 호텔, 레스토랑, 제조 및 기타 산업에서 AI와 생성 AI가 어디에서 사용되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느 회사가 AI 기반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까?”

1년 전 AI가 향후 10년 동안 세계경제 생산량을 7% 증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던 골드만삭스도 AI 수익성에 물음표를 찍었다. 골드만삭스의 짐 코벨로 애널리스트는 최근 발표한 AI 관련 보고서에서 “엄청난 투자에도 AI는 필요한 곳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며 “세상에 쓸모가 없거나 준비되지 않은 것을 과도하게 구축하는 것은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골드만삭스 자체 방송에서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AI가 비용 효율적인 용도로 활용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의견을 냈다.

영국의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도 최근 보고서에서 “(챗GPT가 나오고) 2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소비자나 기업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챗GPT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깃허브 코파일럿’뿐”이라면서 월가의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고 있음을 짚었다.

월가의 논쟁은 기업의 실적 발표 날 현실로 들이닥쳤다. 7월 23일 구글의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에게 “분기당 120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하는 AI 투자가 언제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할 것인가”를 물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AI에 대한) 과소 투자 위험이 과잉 투자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빅테크 대표기업 CEO의 AI 버블에 대한 답변은 곧 나스닥 폭락으로 돌아왔다. 사진=연합뉴스

피차이는 “(AI에 대한) 과소 투자 위험이 과잉 투자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고 답했다. 현재 수익성 대비 과잉 투자를 하는 것은 맞지만 과소 투자의 위험이 더 크므로 앞으로도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을 것이란 말이었다.

지난 2분기 구글의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14%, 순이익은 29% 증가하는 등 월가의 예상치를 충족했지만 이날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주가는 오히려 5% 하락했다. 자본 지출이 예상치를 넘어선 게 이유였고 근본적으로는 AI 투자에 대한 우려였다. 챗GPT 이후 ‘AI 랠리’에 동참했던 투자자들이 슬슬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알파벳의 실적 발표 다음 날 나스닥지수는 4% 가까이 급락했다. 2020년 10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었다. 과도한 기대의 정점에서
투자·관심이 급감하는 시기로 이러한 시장의 파장은 혁신적 기술 발전의 필연적 현상이기에 AI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시기란 주장도 있다. 앞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3년과 2024년 연속으로 ‘AI 하이프 사이클(AI Hype Cycle)’이란 연구를 발표했다. 생성형 AI가 ‘부풀려진 기대치의 정점’에 도달했으며 지금은 악명 높은 ‘환멸의 골짜기’로 떨어지기 직전이란 분석이었다.


‘하이프 사이클’은 기술이 발전하는 단계를 설명하는 가트너의 연구이론이다. 연구에 따르면 혁신 기술은 5단계를 거친다. 기술 촉발(Innovation Trigger) → 과도한 기대의 정점(Peak of Inflated Expectations) → 환멸의 골짜기(Trough of Disillusionment) → 깨달음의 단계(Slope of Enlightenment) → 생산성의 안정기(Plateau of Productivity) 순이다.

1단계는 신기술이 등장하는 단계로 기술의 구체적인 실용화 사례는 드문 상태다. 초기 개념 증명 및 프로토타입이 발표되며 미디어와 초기 혁신가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2단계는 기술에 대한 기대가 극도로 높아지는 단계로 많은 홍보와 과장이 이루어진 때다. 초기 성공 사례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가 형성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실패하거나 예기치 않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3단계는 환멸의 골짜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과도한 기대가 사라지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실망이 커지는 단계다. 초기 기술의 한계와 문제점들이 부각되며 많은 기업들이 기술 도입을 포기하거나 재검토한다. 투자와 관심이 급격히 감소하는 시기로 이 단계를 거치는 기술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술은 사장된다.

4단계는 기술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와 기대가 형성되는 단계다. 초기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개선된 기술이 등장하고 점차 실질적인 활용 사례가 증가한다. 기술의 신뢰성이 높아지면 5단계, 드디어 기술이 성숙하고 널리 채택되는 단계에 이른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기술을 도입하며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한다. 기술이 일상적인 비즈니스 운영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 시기다.

가트너는 AI가 현재 3단계, 즉 환멸의 골짜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2023년 챗GPT의 탄생으로 과도한 기대의 정점에 서게 됐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면서 실망이 커지고 투자와 관심이 급격히 감소하는 시기란 뜻이다. AI가 처한 주요 문제는 수익성과 규제 부분이다.

예컨대 해당 이론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3D TV’를 해당 이론에 빗댈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보안 문제, 비용 초과, 성능 저하 등의 문제가 부각되어 일부 기업들이 도입을 재검토하거나 포기했다. 현재는 어떤가. 많은 기업들이 클라우드를 부분적으로 도입해 비용 절감과 유연성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다수의 기업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클라우드는 IT 인프라의 중요한 일부분이 됐다.

반면 3D TV는 초기 기술 도입 시 영화와 TV 시청 경험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되며 가정용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환멸의 골짜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안경을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 제한된 3D 콘텐츠, 높은 비용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부각되면서 현재까지도 4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TV 제조업체들이 3D 기능을 포기하거나 최소화하고 4K, 스마트TV 기능 등 다른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반대로 AI는 이러한 가트너의 기술 규칙에서 예외란 주장도 있다. 기술 기업가이자 AI 옹호자인 스티브 패팃은 미디움에 쓴 기고문에서 “가트너의 과대광고 주기는 AI에 의해 죽었다”고 주장했다. AI는 단일 기술이 아닌 여러 하위 범주로 구성된 기술 집합체로 머신러닝, 딥러닝, 자연어 처리, 컴퓨터 비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에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다방면의 발전은 특정 AI 기술이 일시적으로 실패(일부 투자자의 실패)하더라도 전체 AI 산업의 발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고 AI 개발 열차를 끊임없이 달리게 할 것이란 주장이다.

AI가 실제 어떠한 이론을 따르든 시장 심리는 이미 ‘AI 버블’에 대한 피로감이 짙게 형성되고 있다. 수익성 문제와 규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AI 버블은 조만간 폭발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처럼 ‘옥석 가리기’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기업들이 수익을 독차지하는 상황이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시 ‘AI의 6000억 달러 문제’를 제기한 칸의 마지막 주장을 들어보자.

“투기적 열광은 기술의 일부이며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순간에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회사를 세울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착각을 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 착각은 ‘인공지능의 일반화(AGI)가 곧 도래할 것이며 우리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자원인 GPU를 비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AGI의) 앞길이 멀고 험할 것입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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