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감세냐 중산층 세부담 완화냐…‘상속세’ 25년 만에 대수술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상속세 개편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이를 두고 ‘초부자 감세’라는 비판과 ‘중산층의 세부담 완화’를 위한 합리적 개편이라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세제 개편안 191개 항목 가운데 법률 개정이 필요한 항목이 상당수인 데다 야권이 “더욱 강화된 부자감세”라며 “재정파탄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두 자녀에 17억 아파트 물려줘도 ‘세금 0원’

기획재정부는 7월 25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2024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세법개정안의 핵심은 상속세 부담 완화다.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내리기로 했다.

과세표준도 현행 5단계에서 4단계로 조정된다. 과표 구간은 현행 △1억원 이하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에서 △2억원 이하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10억원 초과 40%로 조정된다.

최저세율인 10%를 적용하는 구간도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상속세 세율과 과표구간은 1999년 마지막으로 조정된 이후 물가와 자산 가격 상승에도 25년간 유지돼왔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상속세 자녀공제액도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상향된다. 정부안대로라면 상속재산 17억원에 자녀가 2명이고 배우자 공제를 5억원 받는다고 할 때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기존에는 일괄공제(5억원)에 배우자공제(5억원)를 더하면 10억원을 공제받아 과표 7억원에 대해 1억5000만원을 내야 했다. 기초공제(2억원)에 자녀공제(5000만원X2명)를 합한 금액(3억원)이 일괄공제(5억원)보다 적기 때문에 대부분이 일괄공제를 선택했다.

정부안대로 자녀공제액이 5억원으로 확대되면 일괄공제 대신 기초공제 2억원에 자녀공제 10억원(2명)을 선택하고 배우자공제 5억원까지 더해 17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평균적인 수준의 서울 아파트라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12억9967만원(6월 14일 기준)이었다.

정부는 이번 상속세 과표·세율 조정에 따라 8만3000명이 2조3000억원가량 부담을 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녀공제에 따른 경감효과까지 4조원가량의 세 감소가 예상된다. 정부가 상속세 개편에 나선 것은 상속세제가 그간 성장한 경제 규모를 반영하지 못한 탓에 ‘집 한 채’만 있는 중산층도 세금을 부담하게 됐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거래 가격이 10억원을 넘어가며 서울에서 집 한 채를 가진 상당수는 상속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상속세율 40%로 하향…최대주주 할증 폐지

기업 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한 세 부담 완화를 위해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 대한 20% 할증 평가도 폐지할 계획이다.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50%)은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OECD 평균(25%)을 크게 웃돈다.

특히 최대주주 할증률(상속세율의 20%)이 적용되면 최고세율이 60%로 높아지는 점을 고려하면 OECD 38개국 중 1위다. 경영계는 세법개정안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대주주 할증 과세를 폐지하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내린 것은 그동안 경제계가 지적한 이중과세 문제를 해소하고 경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세제의 불합리성을 개선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내년 시행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도 폐지를 추진한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 수익이 연 5000만원, 기타 금융상품 수익이 연 250만원일 경우 수익에 대해 최대 27.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자본시장 규제 혁파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금투세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금투세 도입을 찬성하는 야당에서는 전체 금융투자자의 상위 1%만이 해당한다고 강조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금투세가 도입되면 이른바 ‘큰손’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거나 투자매력도가 떨어져 국내 주식시장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전면 폐지를 촉구해왔다.

정부는 국내 투자자를 보호하고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금투세를 폐지하고 현행 양도소득세 체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우리 자본시장은 1400만 개인투자자와 그 가족들까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투세를 폐지하고 배당을 비롯한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유도하는 세제 인센티브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주환원 촉진세제’를 신설한다.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밸류업(가치 제고) 기업은 법인세 부담을 낮춰주고 이들 기업에 투자한 개인주주들의 배당소득세는 경감해준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기업의 출산지원금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준다. 지금까지 출산을 준비하는 근로자가 기업으로부터 큰 금액의 출산지원금을 수령해도 근로소득세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 개편이 이뤄지면 총급여 5000만원을 받던 근로자가 출산지원금 1억원을 지급받을 경우 세부담은 기존 약 2440만원에서 260만원으로 약 2180만원이 경감될 전망이다.

결혼을 장려해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한 지원책으로 결혼세액공제도 신설한다. 나이와 소득 등과 관계없이 혼인신고를 한 신혼부부 1인당 50만원씩 최대 100만원을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해준다.

올해 1월 1일 혼인신고분부터 소급되며 2026년까지 3년간 생애 1회 한정이다. 결혼세액공제에 따른 세수 감소 효과는 1265억원이다. 결혼세액공제 적용 대상은 지난해 기준 38만7400명 수준이다.

종부세·유산취득세·가상자산 과세 손 못 대

다주택자 중과세율 폐지를 중심으로 거론됐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과 윤석열 정부가 출범 때부터 추진해온 유산취득세 도입은 이번 세법개정안에 담기지 않았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는 가운데 종부세 완화가 집값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법개정안 사전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종부세 부담을 낮추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고 아직도 개선해야 될 사항이 지적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개편을 하려면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 재산세와의 관계 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산취득세는 전체 유산이 아니라 상속인이 물려받는 유산 취득분에만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현행 유산세 방식보다 세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상속세 과세 방식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유산취득세 전환을 위해서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방대한 개정 작업이 필요한 만큼 정부의 장기 과제로 남게 됐다.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던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소득에 세금을 물리는 가상자산 과세 시기는 또다시 2년 뒤로 밀렸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 양도 또는 대여로 250만원(기본 공제금액)이 넘는 수익을 올린 가상자산 투자자에 대해선 20%(지방세 포함 22%)의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이번이 세 번째다. 정부는 2022년부터 발생한 가상자산 소득에 대해 소득세를 매길 예정이었으나 당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 등 제도가 부재했고 세제 당국과 가상자산 거래소의 관련 시스템이 미비했던 탓에 두 차례 연기됐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가 담긴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과세 시점은 2027년 1월로 늦춰진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정훈 세제실장. 사진=연합뉴스


상반기 국세 10조 덜 걷혀…세수 펑크 우려

법인세 수입 급감으로 올해 상반기 세수 펑크 규모가 10조원에 육박한 가운데 정부가 감세 일변도의 세법개정안을 내놓으면서 2년 연속 세수 결손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6월 국세수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세수입은 168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조9800억원(5.6%) 감소했다. 지난해 실적 악화로 주요 대기업이 법인세를 내지 못하면서 법인세 납부 실적이 16조원 넘게 줄어든 탓이다.

법인세는 국세 수입의 약 20%를 차지하고 매출 상위 기업 0.01%(98곳)가 법인세의 40% 이상(2022년 기준)을 내고 있다. 법인세 납부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반도체 불황으로 수조원대 적자를 내면서 올해 법인세로 ‘0원’을 신고했다.

6월 세수진도율(세수 목표 대비 실적 비율)은 45.9%로 세수 결손을 기록한 지난해 5월(51.9%)보다도 6.0%포인트 낮다. 최근 5년 평균 진도율(52.6%)과 비교해도 6.7%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 세수진도율이 최근 평균 5년 대비 -5%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지자 세수결손 조기 경보를 발령하고 세수 재추계에 들어갔다. 기재부는 56조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발생한 지난해에도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올해 세법개정안으로 내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세수가 총 4조3515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년(2024년)과 비교하는 순액법에 따른 계산이다. 세법개정안 시행 기준 연도 대비 향후 5년간 줄어들 세수의 총합을 집계하는 누적법 기준 세수 감소액은 18조4000억원이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3년째 감세 행진, 거대 야당 반발 변수로

세수 펑크가 계속되는 상황에도 3년째 감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재정 기반이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감세 기조’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년째 계속되고 있다. 2022년 발표된 세제 개편안의 세수 감소 효과는 13조1000억원, 2023년에는 4719억원이었다. 누적법 기준으로 보면 올해 세법개정안까지 세수감 규모는 81조원 수준에 이른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81조원(누적법 기준 세수감 규모)은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세법개정안은 지속적인 성장과 균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했다.

세법개정안은 8월 입법예고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되는데 여소야대 국면에서 세법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 세법개정안을 현실화하려면 소득세법을 비롯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 15개의 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 담긴 정부의 세제 개편 방안 191개 항목 가운데 법률 개정이 필수적인 것은 88%인 168개에 달한다. 세법개정안 대다수는 거대 야당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만큼 야당 설득이 관건이다.

상속·증여세 감세효과가 5년간 누적 18조6000억원으로 전체 세수 감소액(18조4000억원)보다 큰 만큼 야당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정 건전성, 세수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야당이 대표적인 ‘부자 감세’ 개편안으로 꼽는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 상속세율 인하 등은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일부 수정 또는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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