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징후를 모두 무시한 티메프 사태, 책임자는 누구일까[EDITOR's LETTER]
입력 2024-08-05 07:00:01
수정 2024-08-05 07:00:01
[EDITOR's LETTER]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경쟁했습니다. 초기 전문가 대부분은 힐러리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징후는 뜻밖의 곳에서 포착됐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그해 5월 한 콘퍼런스에서 “최근 15년간 백인 45세에서 55세 저학력층 사망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겹친다”고 발표합니다. 사망 원인은 과거 우범지대 흑인들을 묘사할 때 등장했던 스트레스, 비만, 약물중독 등이었습니다. 일각에서 이는 히스패닉 등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민주당 지지자인 블루컬러 노동자들이 “구해달라”고 보내는 구조신호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힐러리는 이 신호를 무시했습니다. 러스트벨트 가운데 한 곳인 위스콘신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힐러리는 위스콘신을 비롯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 러스트벨트에서 모두 패했습니다. 대통령 자리는 트럼프 차지였습니다.
징후를 무시한 또 다른 예는 챌린저호 폭발 사건입니다. 1987년 발생한 이 사고로 미국 우주비행사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발사 전 엔지니어들은 과거 통계를 근거로 발사를 반대했습니다. 낮은 온도에서 안전장치가 이상을 일으킨다는 통계가 있었지만 NASA는 이를 무시하고 발사를 강행하고 비극을 자초했습니다.
국내에서 1997년 말 터진 IMF 외환위기 때도 온갖 경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연초부터 한보그룹,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나고 금융회사와 기업들은 달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노무라증권도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정부가 뒤늦게 이를 인정하고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던 거지요. 수많은 직장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스포츠라고 다를까요. 최근 한국 축구가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져 탈락하기 전 많은 불안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아시안게임에 금메달을 딴 후 급조된 팀이고 평가전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대한축구협회는 여기에 결정타를 먹입니다. 황선홍 감독을 월드컵 대표팀 감독까지 겸임시킨 겁니다. 전력도 온전치 않고 급조된 팀에 할 짓은 아니었지요. 결국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은 물거품 됐습니다. 축구협회는 한국 스포츠팬들의 공적이 돼 있습니다. 징후를 무시하고 독단적 결정을 밀어붙인 결과입니다.
최근에 수많은 소비자와 제품 판매자를 절망에 빠뜨린 티몬·위메프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영배가 이끄는 큐텐이 적자 회사인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할 때 일각에서 이상하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흑자로 돌릴 대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11번가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때도 “무슨 돈으로 인수하지?”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께 큐텐에서 물건을 팔고 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다는 판매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판매자가 거래를 중단하는 것으로 끝나고 징후는 무시됐습니다.
올 들어 티몬이 큰 폭의 상품권 할인 판매를 시작할 때는 이미 위기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손실이 불가피한 상품권 할인 판매를 하며 그 상품권은 1개월 후에 지급한다는 이상한 거래였습니다. 급히 돈을 모으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판매였습니다.
이런 징후들은 모두 무시됐습니다. 그리고 일이 터졌습니다. 판매대금을 정산해주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금융당국,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누구도 사이렌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처가 다 관련이 있었지만 책임 있게 상황을 추적한 곳은 없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티몬과 위메프 사태를 다뤘습니다. 구영배라는 큐텐 창업자의 탐욕, 허술한 규제 시스템, 덮쳐오는 위기에 대한 무감각 등이 어우러져 수많은 소비자와 판매자를 피해의 수렁에 빠뜨린 사태입니다.
발 빠르게 수습에 나섰습니다. 수천억원을 지원하겠다며 많은 부처가 함께 작성한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전세사기 등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젊은이들이 이태원 길거리에서 죽어나가도 못 본 척하다시피한 당국이 왜 이리 기민하게 움직일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수많은 판매업자들이 대금을 못 받으면 이들에게 대출한 은행에 부실채권이 쌓이며 시스템 위기로 진화될까봐 그런 것이려니. 그래도 근본적 질문은 남습니다. 국민의 돈(세금)을 이 사태 수습에 투입하는 게 맞는 일일까.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경쟁했습니다. 초기 전문가 대부분은 힐러리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징후는 뜻밖의 곳에서 포착됐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그해 5월 한 콘퍼런스에서 “최근 15년간 백인 45세에서 55세 저학력층 사망률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겹친다”고 발표합니다. 사망 원인은 과거 우범지대 흑인들을 묘사할 때 등장했던 스트레스, 비만, 약물중독 등이었습니다. 일각에서 이는 히스패닉 등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민주당 지지자인 블루컬러 노동자들이 “구해달라”고 보내는 구조신호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힐러리는 이 신호를 무시했습니다. 러스트벨트 가운데 한 곳인 위스콘신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힐러리는 위스콘신을 비롯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 러스트벨트에서 모두 패했습니다. 대통령 자리는 트럼프 차지였습니다.
징후를 무시한 또 다른 예는 챌린저호 폭발 사건입니다. 1987년 발생한 이 사고로 미국 우주비행사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발사 전 엔지니어들은 과거 통계를 근거로 발사를 반대했습니다. 낮은 온도에서 안전장치가 이상을 일으킨다는 통계가 있었지만 NASA는 이를 무시하고 발사를 강행하고 비극을 자초했습니다.
국내에서 1997년 말 터진 IMF 외환위기 때도 온갖 경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연초부터 한보그룹,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나고 금융회사와 기업들은 달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노무라증권도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정부가 뒤늦게 이를 인정하고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던 거지요. 수많은 직장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스포츠라고 다를까요. 최근 한국 축구가 40년 만에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져 탈락하기 전 많은 불안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아시안게임에 금메달을 딴 후 급조된 팀이고 평가전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대한축구협회는 여기에 결정타를 먹입니다. 황선홍 감독을 월드컵 대표팀 감독까지 겸임시킨 겁니다. 전력도 온전치 않고 급조된 팀에 할 짓은 아니었지요. 결국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은 물거품 됐습니다. 축구협회는 한국 스포츠팬들의 공적이 돼 있습니다. 징후를 무시하고 독단적 결정을 밀어붙인 결과입니다.
최근에 수많은 소비자와 제품 판매자를 절망에 빠뜨린 티몬·위메프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영배가 이끄는 큐텐이 적자 회사인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할 때 일각에서 이상하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흑자로 돌릴 대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11번가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때도 “무슨 돈으로 인수하지?”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께 큐텐에서 물건을 팔고 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다는 판매자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판매자가 거래를 중단하는 것으로 끝나고 징후는 무시됐습니다.
올 들어 티몬이 큰 폭의 상품권 할인 판매를 시작할 때는 이미 위기로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손실이 불가피한 상품권 할인 판매를 하며 그 상품권은 1개월 후에 지급한다는 이상한 거래였습니다. 급히 돈을 모으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판매였습니다.
이런 징후들은 모두 무시됐습니다. 그리고 일이 터졌습니다. 판매대금을 정산해주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금융당국,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누구도 사이렌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처가 다 관련이 있었지만 책임 있게 상황을 추적한 곳은 없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티몬과 위메프 사태를 다뤘습니다. 구영배라는 큐텐 창업자의 탐욕, 허술한 규제 시스템, 덮쳐오는 위기에 대한 무감각 등이 어우러져 수많은 소비자와 판매자를 피해의 수렁에 빠뜨린 사태입니다.
발 빠르게 수습에 나섰습니다. 수천억원을 지원하겠다며 많은 부처가 함께 작성한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전세사기 등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젊은이들이 이태원 길거리에서 죽어나가도 못 본 척하다시피한 당국이 왜 이리 기민하게 움직일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수많은 판매업자들이 대금을 못 받으면 이들에게 대출한 은행에 부실채권이 쌓이며 시스템 위기로 진화될까봐 그런 것이려니. 그래도 근본적 질문은 남습니다. 국민의 돈(세금)을 이 사태 수습에 투입하는 게 맞는 일일까.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