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비리 불거진 나눔의집…“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반환해야” [민경진의 판례 읽기]
입력 2024-08-18 06:04:01
수정 2024-08-18 06:04:01
“계약 목적과 실제 사용처 불일치”
원고 승소 취지 파기환송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의 후원금 횡령·비리 논란과 관련해 후원자들이 “후원금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패소로 판단한 1·2심 판결을 뒤집고 후원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초 안내된 후원 목적과 실제 후원금이 사용된 곳 사이에 ‘착오’로 볼 만큼 큰 차이가 있다면 후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다.
상고심 재판부는 “원고들은 이러한 착오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후원 계약 체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며 평균적인 후원자의 관점에서도 같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1·2심 “부담부증여 아냐”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024년 8월 1일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반환소송 대책모임’이 나눔의집을 상대로 낸 후원금 반환 소송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나눔의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양로시설 및 사회복지시설 등을 운영해왔다. 이 사건 원고 A 씨는 2017년 8월부터 2020년 4월까지 31회에 걸쳐 나눔의집에 월 5만원씩 후원금을 납부했다.
그는 따로 후원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홈페이지에 기재된 계좌로 후원금을 납입했다. 당시 나눔의집 홈페이지에는 ‘후원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만행을 폭로하고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활동에 쓰인다’는 후원 취지가 게재됐다.
정기 후원에 대해서는 구체적 목적이나 납입 계좌가 별도로 안내되지 않았지만 일시 후원의 경우 일반후원(할머니들의 생활·복지·증언 활동을 위한 후원),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후원, 국제평화인권센터 건립 후원으로 나뉘어 있고 유형별로 납입 계좌가 별도로 안내됐다. A 씨는 이 가운데 일반후원 납입 계좌로 후원금을 송금했다.
하지만 2020년 나눔의집의 보조금 부정 수급, 후원금 유용 의혹이 제기됐다. 나눔의집 시설의 일부 직원들은 나눔의집 측이 거둬들인 후원금이 대부분 법인에 유보돼 있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제대로 사용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사비로 치료비 등을 지출한다고 폭로했다.
실제 경기도 조사 결과 후원자들이 낸 후원금은 나눔의집이 아닌 법인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다. 할머니들이 생활하는 시설로 보낸 금액은 총 88억원 중 2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후원자 50여 명은 후원금을 반환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1차 후원금 반환 소송에는 A 씨 등 총 23명이 참여했으며 청구 금액은 5000여 만원이었다. 2차 소송에는 31명의 후원자가 참여해 3600여 만원을 청구했다. 소송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1980~90년대생이었고 적게는 6만원부터 많게는 210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1차 후원금 반환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다.
원고 측은 “나눔의집은 후원금을 모집할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 복지, 증언활동 등에 따라 후원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홈페이지에는 위와 같은 용도와 목적으로 후원금을 사용한다는 안내 문구와 함께 후원입금계좌를 게시했다”며 “원고들을 기망하면서 후원금을 모집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원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 후원계약은 증여받는 사람에게 일정한 의무를 지도록 하는 부담부증여로 볼 수 없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후원계약이 체결된 경위와 방식, 후원계약서가 따로 작성되지 않은 점, 후원계약에서 당사자 각각의 의무를 명확히 정하고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이 사건 후원계약이 부담부증여라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가 이 사건 후원금을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 복지, 증언활동 지원에 사용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이러한 용도로 사용할 것처럼 원고들을 기망했다거나 원고를 착오에 빠뜨려 이 사건 후원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1심 패소 판결에 불복한 원고 5명은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A 씨는 2심 판단에 불복해 홀로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법원 “착오 인정…후원 계약 취소해야”
대법원은 A 씨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착오를 원인으로 한 이 사건 후원 계약 취소 주장을 배척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상고심 재판부는 “이 사건 후원 계약의 목적은 단순한 동기에 머무르지 않고 계약 내용에 편입됐고 그 목적은 계약 내용의 중요한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고는 피고의 후원 안내에 따라 후원금이 위안부 피해자 관련 활동에 사용돼 왔거나 현재도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의 인식은 장래에 있을 어떤 사항에 대한 단순한 예측이나 기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예측이나 기대의 근거가 되는 현재 사정에 대한 인식도 포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나눔의집 측이 모집한 대부분의 후원금이 특정 건물 건립 용도로 법인에 유보돼 있다는 사정은 후원 당시 피고가 밝힌 후원 목적뿐만 아니라 원고가 가지게 된 인식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고심 재판부는 이러한 인식 차이를 착오로 평가할 만한 정도의 불일치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장래에 대한 어떤 인식이 그 예측이나 기대의 근거가 되는 현재 사정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전제 안에서 현재 사정에 대한 인식이 실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착오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돋보기]
공익제보자 직장 내 괴롭힘 등 관련 소송 잇달아
나눔의집 사건은 재단법인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맡았던 윤미향 전 국회의원이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에 당선되면서 불거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 전 의원의 기부금 횡령 의혹을 제기했고 나눔의집에서도 내부고발이 이어지면서 소송전이 시작됐다.
후원금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 전 의원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2023년 9월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가족부로부터 보조금을 부정 수령한 혐의에 대해서 원심의 무죄 판단을 유죄로 뒤집고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비를 모금하는 과정에서도 조의금을 관련 없는 용도로 사용한 점도 유죄로 인정했다.
1심에서는 후원금 횡령 액수로 1718만원을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총 8000만원으로 횡령액이 크게 늘었다. 윤 전 의원 측은 항소했으나 약 11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상고심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또 안모 전 소장을 비롯한 나눔의집 일부 임직원들도 사기·기부금품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다.
한편 나눔의집 실태를 고발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직원들은 최근 1심에서 정신적 피해를 인정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부장 허준서)는 지난 6월 B 씨 등 7명이 나눔의집과 그 운영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1인당 2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앞서 B 씨 등은 2022년 4월 나눔의집 운영진을 상대로 7억원대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2020년 5월 시설 운영 비위를 공익제보한 이후 업무배제 등 보복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한편 시설 측이 자신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고소를 남발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약 2년간 심리 끝에 원고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운영진 3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피고들은 원고들에게 공익신고에 따른 불이익 처분을 하고 직장 내 괴롭힘을 한 불법 행위의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