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의회 “청소년을 지켜라” 빅테크 규제 강화[글로벌 현장]

SNS 유해콘텐츠, 괴롭힘·폭력·섭식장애 조장해
빅테크는 “표현의 자유 위배” 반발 커

올해 1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주요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에 출석한 모습, 사진 AFP=연합


유튜브·틱톡과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그 무엇보다 강조해 온 미국이 자국 빅테크 업체들을 스스로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만큼 청소년의 미래에 플랫폼이 미치는 해악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해 콘텐츠, 빅테크가 걸러야

미국 상원은 지난 7월 30일 우울감을 조장하고 폭력, 괴롭힘, 약물, 술, 담배 등에 관한 유해 콘텐츠를 막아야 할 의무를 플랫폼 측에 부여하는 아동온라인보호법(KOSA)을를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아동 개인정보 보호 대상을 16세 미만으로 확대하는 아동 온라인 사생활 보호법 2.0(COPPA 2.0)도 이날 함께 통과됐다.

두 법안 중 새로 등장한 KOSA는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미성년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값을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설정하고, 유사 콘텐츠를 자동으로 무한 재생하는 기능을 끌 수 있도록 해서 중독을 방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정신건강 장애, 학대, 성적 착취 등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도록 강제하는 주의 의무를 부여했다.

괴롭힘, 폭력, 자살 조장, 섭식 장애, 약물 남용, 마약·담배·술 등에 관한 유해 콘텐츠에 관한 기능을 제한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독적인 소셜미디어 기능이나 개인화된 알고리즘 추천을 ‘거부할 권리’를 이용자에게 줘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날 함께 통과된 COPPA 2.0 법안은 1998년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COPPA의 후속 법안이다. 당시 미 의회는 13세 미만 어린이에게서 데이터를 수집하기 전에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요건을 담은 COPPA를 통과시켰다. COPPA 2.0은 부모 동의가 필요한 대상을 16세까지로 확대하고 기업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광고하는 것을 금지한다.

1998년 당시 하원 의원으로서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에드워드 J 마키 상원의원(민주당·매사추세츠주)은 “26년 만에 당시에도 필요했으며 오늘날에는 훨씬 더 필요해진 보호 조치를 법에 포함시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리처드 블루멘탈 상원의원(민주당·코네티컷주)은 “의회가 마침내 수십 년 동안 완전히 무책임하고 무모했던 산업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법안 발의를 주도한 상원 상업·과학·교통위원회 위원장 마리아 캔트웰 의원(민주당·워싱턴주)은 본회의에서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2022년 한 해 동안 미국 미성년자에게서만 110억 달러(약 15조2000억원) 수익을 거뒀다”고 지적했다. 빅테크 “검열하라는 거냐” 반발
다만 법안이 시행되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각 주 정부가 시행에 들어가면 플랫폼 기업과의 소송전이 기다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구글, 아마존, 메타 등 플랫폼 기업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넷초이스는 KOSA가 표현의 자유를 막는다며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넷초이스에서 주 정부 등을 상대로 금지 명령 소송을 벌이고 있는 크리스 마르체스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 판매를 막는 법률을 시행하려다 위헌성 문제로 폐지된 사례를 들며 “KOSA가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 기업들은 겉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광고 중단 명령 등으로 인한 매출 감소 등이 직접적인 이유로 분석된다. 기업들은 나아가 이 법안의 통과가 향후 인공지능(AI) 등 더 까다로운 분야에서도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다른 입법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스냅(스냅챗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링크드인 소유주)와 엑스(옛 트위터)는 이 법안을 지지했다.

전혀 다른 이유로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진보 운동단체에서는 이 법안이 ‘정상성’을 강요하는 장치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파이트 포 더 퓨처’의 에번 그리어 국장은 “성 정체성 확인 치료, 낙태, 인종 정의, 기후변화 등 그들이 싫어하는 콘텐츠를 억압하도록 기업에 강요하기 위해 보호 의무가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COPPA 위반한 틱톡 규제도 착수
미국 행정부도 입법부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미국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8월 초 어린이 개인정보 수집에 제한을 둔 COPPA 규정을 위반한 것과 관련해 중국계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과 그 모회사 바이트댄스를 상대로 캘리포니아 중부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틱톡은 2019년부터 지금까지 13세 미만 아동이 일반 틱톡 계정을 만들고 성인 및 다른 사용자와 쇼츠·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게 허용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에게 통지하거나 동의를 얻는 과정은 없거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키즈 모드’로 생성한 계정의 경우에도 COPPA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틱톡은 불법적으로 아동의 이메일 주소와 기타 유형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보유했다고 법무부 등은 주장했다. 심지어 부모가 자녀의 계정을 발견하고 틱톡에 계정과 정보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더라도 틱톡은 그런 요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법무부는 지적했다.

내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도 틱톡이 이런 요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틱톡은 아동이 생성한 계정이 어떤 것인지 찾아내고 그것을 삭제하기 위한 내부 정책이나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했다. 그동안 성인 계정과 아동 계정을 제대로 분리해서 운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분리해서 대응할 역량도 부족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미국 법무부가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틱톡은 2019년 전신인 뮤지컬리 때부터 COPPA를 준수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법무부의 요청을 받았고 법원 명령도 받았으나 이행하지 않았다.

벤저민 C 마이저 법무차관 대행은 “법무부는 틱톡이 법원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동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리나 칸 FTC 위원장도 틱톡이 “고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아동들의 사생활을 침해해 전국 수백만 아동들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지적했다.

칸 위원장은 “아동을 관찰해서 이들의 데이터로 돈을 벌려고 하는 정교한 디지털 코드를 배포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FTC는 모든 권한을 동원해 아이들을 온라인에서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이언 보인턴 법무부 부차관보는 “이번 조치는 반복적인 다수 위반 사례가 있는 원고가 아동들의 개인정보를 부모 동의나 통제 없이 수집·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FTC가 틱톡이 법원 명령이 떨어진 후에도 이런 ‘배짱 영업(아동 정보 수집)’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루 5만1744달러(약 7044만원)씩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전체 벌금 규모는 이론적으로 수십억 달러(수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계산했다.


워싱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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