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벌집아이스크림부터 2023년 탕후루까지
많은 관심 받았지만 새로운 트렌드 생기며 인기 줄어
MZ세대 소비 행태인 리퀴드 소비와 디토소비 영향
고정적이지 않고 가벼운 소비 즐기며 변화 좋아해
‘보이면 쟁여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얻자 각 편의점의 발주 수량이 제한됐고 품귀현상까지 일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할인 행사도 자주 한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유행은 끝났다.
유통업계의 트렌드는 빠르게 바뀐다. 1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숏폼)을 중심으로 다양한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는 영향이다. 여기에 MZ세대의 소비 행태인 ‘리퀴드 소비’와 ‘디토 소비’도 한몫했다. 리퀴드 소비란 액체(리퀴드)처럼 고정적이지 않고 가벼운 소비, 다양한 변화를 즐기는 소비를 뜻한다. 좋아하는 인물, 인플루언서의 취향을 따라하는 것을 디토(ditto) 소비라 부른다.
문제는 이로 인해 시장에 뛰어든 소상공인들의 줄폐업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유행이 바뀌는 주기는 해가 지날수록 더 짧아지는 추세다. ‘디저트 대세’ 자리를 요아정에 자리를 내준 탕후루부터 과거 대만 카스테라까지 유통업계를 휩쓸고 간 마른 장작의 역사를 살펴봤다. ◆ 2013년 벌집 아이스크림2013년 하얀 아이스크림 위에 벌집을 얹어 단맛을 극대화한 제품이 등장했다. 벌집 아이스크림은 한겨울에도 1시간을 줄서서 사먹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당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노홍철은 이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기 위해 양봉 체험을 하기도 했다. 백화점도 앞다퉈 벌집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입점시키며 트렌드를 좇았다.
당시 벌집 아이스크림의 시초로 불린 소프트리는 2013년 6월 가맹 사업을 시작했고, 1년 만에 매장은 전국 35개로 늘었다. 후발주자들의 브랜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14년 5월이다. 한 방송에서 아이스크림의 벌집 부분에 양초의 주원료인 ‘파라핀’ 성분이 섞여 있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유해 성분을 사용한 업체는 일부에 불과했지만 ‘벌집 아이스크림’ 자체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으면서 대부분의 가맹점이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소프트리와 유사한 미투(me too)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이 쏟아지자 소비자들은 어디서든 ‘벌집 아이스크림’을 접하게 됐고 구매 과정에서 얻는 재미가 떨어졌다. 결국 소프트리 가맹점은 2017년 8개로 줄었다. 2019년 6개로 감소했고 2020년 들어서는 모든 가맹점이 사라졌다. ◆ 2016년 대만 카스테라 2016년 대만에서 물 건너왔다는 ‘대왕 카스테라’가 등장했다. ‘대만 야시장의 명물’이라는 수식어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세를 얻었고 한국에서도 먹어볼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며 인기는 수직 상승했다. 홍대, 강남, 이태원 등 젊은층이 주로 찾는 동네마다 대왕 카스테라 매장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단수이 대왕카스테라, 락 카스테라, 대왕통카스테라, 대만언니 대왕카스테라 등 여러 브랜드가 생겨났다.
이 같은 인기는 소상공인들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10평 내외 점포에서 소자본으로 점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당시 대만 카스테라는 ‘인기 창업 아이템’으로 꼽혔다. 6개월 만에 30여 개의 브랜드가 생겼고 이 가운데 가맹 사업을 진행하는 업체는 2017년 17개에 달했다. 가맹점은 150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부 대왕카스테라 업체가 원가 절감을 위해 반죽에 버터 대신 다량의 식용유와 화학첨가제를 썼다는 내용이 알려지며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일부 브랜드들은 반박문을 올리며 ‘정직하게 만든다’고 강조했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어려웠다.
당시 분위기는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배우 송강호는 생활이 어려워진 이유에 대해 “대만 카스테라 사업이 망해서”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 2018년 흑당 버블티2년 뒤 다시 새로운 ‘유행템’(유행하는 아이템)이 생겼다. 타피오카 펄을 흑설탕 시럽에 절여 우유에 섞어 먹는 ‘흑당 버블티’였다. 대만 여행객 사이에서는 ‘스린 야시장’ 필수 먹거리로 알려지자 블로그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게 됐다.
타이거슈가와 더앨리 등 대만 카페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게 됐고 공차, 커피빈, 빽다방, 요거프레소, 할리스 등 대부분의 국내 카페 프랜차이즈도 앞다퉈 흑당 버블티와 관련된 신메뉴를 출시했다.
흑당 버블티의 유행도 오래 가지 않았다. 과당음료의 대체재가 많고 한 컵의 칼로리가 밥 한 공기 수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버블티를 선택하지 않기 시작했다. 또 타피오카 펄의 소화가 더뎌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들에 한해 복통·변비 등을 유발시키는 문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팔공티는 2020년 304개의 매장을 운영했으나 꾸준히 매장이 감소해 2022년 기준 220개가 됐다. 타이거슈가 역시 2020년 52개의 매장을 운영했으나 지속 감소해 최근 기준 13개 매장만 남게 됐다. ◆ 2019년 저가 생과일 주스2019년에는 저가 생과일 주스 붐이 일었다. ‘쥬씨’가 대표적이다. 단 음료에 대한 젊은층의 니즈가 흑당 버블티에서 생과일 주스로 바뀌었다. 특히 쥬씨의 시그니처 메뉴인 ‘딸바’(딸기바나나 음료)는 2019년 5000만 잔 판매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쥬씨 외에도 떼루와, 킹콩 쥬스&커피 등의 브랜드도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과도한 당분 함량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인기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서울시와 소비자시민모임이 2019년 5~6월 가맹점이 많은 생과일주스 3개 브랜드 75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컵당(기본사이즈 평균 중량 314.6g) 평균 당류 함량은 하루 기준치의 30.8%(30.8g)로 나타났다. 한 컵에 각설탕(3g) 10개가 들어 있는 셈이다.
쥬씨 가맹점은 2019년 486개에서 2022년 314개로 줄었다. 떼루와는 같은 기간 가맹점이 58개에서 17개로 줄었다. 킹콩 쥬스&커피도 55개에서 21개로 감소했다. ◆ 2021년 탕후루최근에는 탕후루가 유행했다. 여러 가지 과일을 설탕물로 코팅해 단맛을 증가시킨 길거리 음식으로 2021년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탕후루는 다양한 과일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SNS 사진 촬영용으로 좋고 자극적인 단맛의 중독성이 강해 10대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그 결과 20개에 가까운 탕후루 가맹점이 생겨났다. 이 가운데 업계 1위 업체인 왕가탕후루 매장은 2022년 43개에서 2023년 500개까지 늘었다. 빠르게 가맹에 뛰어든 일부 소상공인들은 한때 월매출 7000만원을 기록할 만큼 높은 수익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외식 트렌드가 △제로 슈거 △저당 음료 등으로 변화하고 건강을 즐겁게 관리하는 ‘헬시 플레저’가 젊은층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탕후루의 열기도 빠르게 식었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탕후루 매장을 매도하거나 업종 변경을 완료했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탕후루 관련 폐업 매장은 지난해 72개에서 올해 190개로 급증했다. ◆ ‘요아정·두바이 초콜릿’ 결말은탕후루의 자리를 대체한 것은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이다.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에 여러 토핑을 얹은 형태의 음식이다. 특히 초콜릿, 생과일 등 기호에 맞게 다양한 토핑을 추가해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층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며 ‘대세 유행템’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SNS의 주요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계정에 요아정을 지속 노출하면서 디토 소비의 영향도 받았다. 요아정 매장은 2021년 성수동에서 1호점을 냈고 그해 99개의 매장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66개로 증가했으며 올 상반기 기준으로는 350개를 돌파했다.
두바이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피스타치오와 카다이프(중동 지역에서 즐겨 먹는 얇은 국수)를 섞은 스프레드를 넣어 만든 초콜릿으로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SNS를 통해 국내외 소비자에게 알려졌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없어서 못 판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백화점은 연이어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 제품을 출시하는 등 두바이 초콜릿 열풍에 올라탔다.
다만 요아정과 두바이 초콜릿 등도 새로운 유행 아이템이 등장하면 빠르게 인기가 식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SNS의 영향으로 디저트류의 인기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점도 그 이유로 꼽힌다. 이들이 더 이상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디저트 열풍은 다른 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 업계에서 F&B(식음료) 사업을 전개할 때 고정 매장을 내는 대신 단기 팝업스토어 형태로 3~6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매장을 선보이는 것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