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중 가장 보수적 투자 전략을 고수해온 삼성SDI가 달라졌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0%가량 급감하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의 여파를 피하진 못했지만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SDI는 올해 설비투자를 축소 없이 계획대로 집행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광물 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LG에너지솔루션, SK온이 투자 속도조절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美 보조금 제외해도 ‘나홀로 흑자’
삼성SDI의 올해 2분기 실적은 매출 4조4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2802억원으로 38% 줄었다.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인 매출 5조2000억원, 영업이익 3320억원을 큰 폭으로 하회했다.
전력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주로 ESS 매출이 전분기 대비 20% 증가하며 선전했지만 캐즘 여파로 중대형·원통형 배터리 실적이 악화하면서 전지사업부문에서만 영업이익이 46%나 줄었다.
다만 배터리 3사 중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제외하고도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올해 1분기부터 AMPC를 영업이익에 반영하기 시작했는데 2분기 AMPC 규모는 79억원이다.
삼성SDI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능력 확대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미국 진출도 가장 늦었다. 한발 늦게 미국 시장에 진출한 만큼 IRA에 따른 AMPC 혜택이 실적에 반영되는 시점도 가장 늦었다.
그럼에도 그간 P5 등 부가가치가 높은 배터리로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는 수익성 중심 전략을 토대로 AMPC 수혜 없이도 배터리 3사 중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해왔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 중 하나인 영업이익률도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8.7%다. 수익성이 악화된 올해 2분기 삼성SDI의 영업이익률은 6.3%로 전년 동기 대비 1.4%포인트 하락했으나 LG에너지솔루션(4.1%), SK온(적자) 대비 양호한 편이다.
그간 비축해둔 체력을 기반으로 최근 유럽과 북미 투자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JV) 스타플러스에너지(SPE)를 설립하고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 2개의 공장을 짓고 있다.
당초 2025년 1분기 가동 예정이던 스타플러스에너지 1공장의 가동 시점을 연내로 앞당겼다. 삼성SDI는 올해 하반기는 회복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중장기적으로 전지 산업의 고성장은 변함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4조→6.5조로 투자비 상향…“계획대로 집행”
지난해 설비투자(CAPEX)에 약 4조원을 집행한 삼성SDI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대폭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설비투자액이 전년보다 50%이상 많은 6조5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설비투자액은 헝가리 법인 증설과 북미 스텔란티스 JV인 스타플러스에너지 1공장 건설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김윤태 삼성SDI 경영지원실 상무는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헝가리 법인 증설, 미주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공장 건설 등 이미 확보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와 전고체 전지 및 46파이 등 중장기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상반기 기준으로 이미 전년 대비 2배 수준(약 3조원) 투자를 집행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말 기준 100GWh 수준이었던 글로벌 생산능력을 2026년 200GWh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북미에 이어 유럽 지역 신규 생산거점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 현지 언론은 삼성SDI가 항구 도시인 그단스크에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SDI 관계자는 “신규 투자와 관련해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으나 투자 규모, 시기, 지역 등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신규 생산시설 투자는 소극적이었지만 연구개발(R&D) 투자는 항상 1등이었다. 최윤호 사장의 ‘초격차 기술 경쟁력’, ‘최고의 품질’,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 등 3대 경영전략에 따른 것이다.
국내 배터리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릴 때도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하며 캐즘에 버틸 체력을 비축해뒀다. 그러면서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R&D 비용은 대폭 늘려왔다.
삼성SDI의 누적 연구개발비는 2021년 8776억원, 2022년 1조764억원, 2023년 1조1364억원으로 지속 확대됐다.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입하고 있으며 이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대비 안정성, 에너지 밀도, 충전 성능을 끌어올려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경쟁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지난해 말부터 5개 자동차업체에 전고체 배터리 샘플을 넘겨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어려워도 담대하게” 역발상 투자로 세계 1등 노린다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를 늘리는 삼성SDI의 ‘역발상 투자’ 전략은 이병철 창업자 때부터 내려온 ‘삼성 DNA’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위기 때마다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호황기에 미리 확보해둔 생산능력을 앞세워 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DS) 부문에서 15조원의 적자를 내고도 오히려 시설투자를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려 53조원을 투입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업황 부진에도 R&D에 지난해 연매출의 10.9%에 달하는 28조원을 투자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R&D는 보험이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농부가 배가 고프다고 논밭에 뿌릴 종자로 밥을 지어 먹는 행위와 같다”며 R&D 투자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재용 회장은 올해 초 삼성SDI 말레이시아 사업장을 찾아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며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주문했다.
삼성SDI는 1970년 창립 당시만 해도 흑백 브라운관과 진공관이 주력인 전자부품 회사였지만 1994년 그룹 차원의 중복 사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등에서 연구하던 배터리사업을 인수하며 배터리회사로 전환했다. 흑백 브라운관에서 시작해 전고체 배터리로 향하는 삼성SDI 역사의 시작이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대다수 기업이 투자를 줄일 때 이건희 회장은 소형 배터리 설비 확충에 2000억원을 투자해 천안사업장을 건설했다. 초격차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R&D에도 속도가 붙으며 2005년 소형 배터리 사업에서 처음 흑자를 달성한 뒤 2008년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2009년 BMW 최초의 전기차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현재까지 BMW와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다.
최윤호 사장의 질적 성장전략은 배터리산업 잠재력이 크게 부각됐던 시기에는 소극적 경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캐즘 국면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삼성SDI의 보수적 투자 전략이 현재는 실적과 재무 안정성으로 빛을 보고 있다.
최 사장은 견고한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국내 배터리 3사 정기인사에서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했다. 최 사장은 “하반기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이 예상되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향후 시장이 턴어라운드되는 시점에 새로운 기회를 선점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중 가장 보수적 투자 전략을 고수해온 삼성SDI가 달라졌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0%가량 급감하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의 여파를 피하진 못했지만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SDI는 올해 설비투자를 축소 없이 계획대로 집행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광물 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LG에너지솔루션, SK온이 투자 속도조절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美 보조금 제외해도 ‘나홀로 흑자’
삼성SDI의 올해 2분기 실적은 매출 4조4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2802억원으로 38% 줄었다.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인 매출 5조2000억원, 영업이익 3320억원을 큰 폭으로 하회했다.
전력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주로 ESS 매출이 전분기 대비 20% 증가하며 선전했지만 캐즘 여파로 중대형·원통형 배터리 실적이 악화하면서 전지사업부문에서만 영업이익이 46%나 줄었다.
다만 배터리 3사 중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제외하고도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해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올해 1분기부터 AMPC를 영업이익에 반영하기 시작했는데 2분기 AMPC 규모는 79억원이다.
삼성SDI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능력 확대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미국 진출도 가장 늦었다. 한발 늦게 미국 시장에 진출한 만큼 IRA에 따른 AMPC 혜택이 실적에 반영되는 시점도 가장 늦었다.
그럼에도 그간 P5 등 부가가치가 높은 배터리로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는 수익성 중심 전략을 토대로 AMPC 수혜 없이도 배터리 3사 중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해왔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 중 하나인 영업이익률도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8.7%다. 수익성이 악화된 올해 2분기 삼성SDI의 영업이익률은 6.3%로 전년 동기 대비 1.4%포인트 하락했으나 LG에너지솔루션(4.1%), SK온(적자) 대비 양호한 편이다.
그간 비축해둔 체력을 기반으로 최근 유럽과 북미 투자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JV) 스타플러스에너지(SPE)를 설립하고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 2개의 공장을 짓고 있다.
당초 2025년 1분기 가동 예정이던 스타플러스에너지 1공장의 가동 시점을 연내로 앞당겼다. 삼성SDI는 올해 하반기는 회복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중장기적으로 전지 산업의 고성장은 변함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4조→6.5조로 투자비 상향…“계획대로 집행”
지난해 설비투자(CAPEX)에 약 4조원을 집행한 삼성SDI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대폭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설비투자액이 전년보다 50%이상 많은 6조5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설비투자액은 헝가리 법인 증설과 북미 스텔란티스 JV인 스타플러스에너지 1공장 건설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김윤태 삼성SDI 경영지원실 상무는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헝가리 법인 증설, 미주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공장 건설 등 이미 확보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와 전고체 전지 및 46파이 등 중장기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며 “상반기 기준으로 이미 전년 대비 2배 수준(약 3조원) 투자를 집행했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말 기준 100GWh 수준이었던 글로벌 생산능력을 2026년 200GWh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북미에 이어 유럽 지역 신규 생산거점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 현지 언론은 삼성SDI가 항구 도시인 그단스크에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SDI 관계자는 “신규 투자와 관련해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으나 투자 규모, 시기, 지역 등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삼성SDI는 신규 생산시설 투자는 소극적이었지만 연구개발(R&D) 투자는 항상 1등이었다. 최윤호 사장의 ‘초격차 기술 경쟁력’, ‘최고의 품질’,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 등 3대 경영전략에 따른 것이다.
국내 배터리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릴 때도 보수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하며 캐즘에 버틸 체력을 비축해뒀다. 그러면서도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R&D 비용은 대폭 늘려왔다.
삼성SDI의 누적 연구개발비는 2021년 8776억원, 2022년 1조764억원, 2023년 1조1364억원으로 지속 확대됐다. 매년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입하고 있으며 이는 업계 최고 수준이다.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대비 안정성, 에너지 밀도, 충전 성능을 끌어올려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경쟁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지난해 말부터 5개 자동차업체에 전고체 배터리 샘플을 넘겨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어려워도 담대하게” 역발상 투자로 세계 1등 노린다
어려울 때일수록 투자를 늘리는 삼성SDI의 ‘역발상 투자’ 전략은 이병철 창업자 때부터 내려온 ‘삼성 DNA’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위기 때마다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호황기에 미리 확보해둔 생산능력을 앞세워 반도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DS) 부문에서 15조원의 적자를 내고도 오히려 시설투자를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려 53조원을 투입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업황 부진에도 R&D에 지난해 연매출의 10.9%에 달하는 28조원을 투자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R&D는 보험이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농부가 배가 고프다고 논밭에 뿌릴 종자로 밥을 지어 먹는 행위와 같다”며 R&D 투자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재용 회장은 올해 초 삼성SDI 말레이시아 사업장을 찾아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며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주문했다.
삼성SDI는 1970년 창립 당시만 해도 흑백 브라운관과 진공관이 주력인 전자부품 회사였지만 1994년 그룹 차원의 중복 사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등에서 연구하던 배터리사업을 인수하며 배터리회사로 전환했다. 흑백 브라운관에서 시작해 전고체 배터리로 향하는 삼성SDI 역사의 시작이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대다수 기업이 투자를 줄일 때 이건희 회장은 소형 배터리 설비 확충에 2000억원을 투자해 천안사업장을 건설했다. 초격차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R&D에도 속도가 붙으며 2005년 소형 배터리 사업에서 처음 흑자를 달성한 뒤 2008년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2009년 BMW 최초의 전기차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현재까지 BMW와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다.
최윤호 사장의 질적 성장전략은 배터리산업 잠재력이 크게 부각됐던 시기에는 소극적 경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캐즘 국면에서 재평가받고 있다. 삼성SDI의 보수적 투자 전략이 현재는 실적과 재무 안정성으로 빛을 보고 있다.
최 사장은 견고한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국내 배터리 3사 정기인사에서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했다. 최 사장은 “하반기 역시 녹록지 않은 상황이 예상되지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위한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향후 시장이 턴어라운드되는 시점에 새로운 기회를 선점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