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보다 국민연금?” 국내 큰손의 투자 전략 보니…[큰손의 포트폴리오]
입력 2024-08-25 08:03:35
수정 2024-08-27 18:42:06
엔비디아·엑손모빌 담은 국민연금
M7·반도체 팔고 월마트 담은 KIC
애플·테슬라 사고 스타벅스 판 미래에셋
워런 버핏 vs 국민연금.
만약 큰손의 포트폴리오 중 하나를 투자 길라잡이로 삼아 따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아마 많은 사람이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수치가 있다.
10.88% vs 19.06%. 이는 1000달러, 즉 134만원을 약 10년 동안 투자했을 때 양쪽의 수익률이다. 워런 버핏의 상위 10종목을 추종한 포트폴리오는 10.88%의 수익률을 기록해 2677달러로 불어난 반면, 국민연금의 상위 10종목을 따라간 포트폴리오는 5275달러로 늘었다. 2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국민연금의 수익률도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다.
국내에도 주목할 만한 큰손의 투자 전략이 있다. 드넓은 미국 주식의 세계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줄 한국 큰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소개한다. “AI, 아직 더 간다”
엔비디아 더 늘린 국민연금
국민의 노후자금 1114조원을 굴리는 거대 공룡 국민연금은 국내주식(13.5%)보다 더 많은 비중을 해외주식(33.9%)에 투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수익률이 ‘넘사벽’이다. 국내주식 투자로 2% 수익률을 낼 때 해외 증시에서는 16%의 성과를 내며 기금을 불렸다. AI를 등에 업은 미국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국민연금 역시 올해 2분기 미국 증시에서 IT 비중을 추가로 늘리며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8월 21일 국민연금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13F(1억 달러 이상 기관투자가 보유 지분 공시) 문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민연금의 미국 주식 직접투자 자산가치는 870억3423만 달러다. 이는 5개 분기 연속 사상 최고치다. 2분기 영수증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신규 투자 : 20개 종목
추가 매수 : 344개 종목
매도 : 13개 종목
지분 감소 : 131개 종목
상위 10개 종목 보유 비중 : 35.49%
먼저 국민연금이 보유한 미국 주식 톱10은 애플(5.92%), 마이크로소프트(5.92%), 엔비디아(5.83%), 인베스코퓨어베타 MSCI USA ETF(4.52%), 아마존(3.24%), iShares Core S&P500 ETF(2.59%), 메타(2.18%), 알파벳A(2.06%), 알파벳C(1.83%), 일라이릴리(1.39%) 순이다. 서학개미들의 투자 리스트와도 비슷한 M7 등 ‘빅테크’ 위주다. 테슬라만 유일하게 톱10에서 빠졌다. 12위다.
‘갓비디아’는 국민연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연금은 2분기 엔비디아 보유량을 2.61% 늘렸다. 보유한 M7 중 비중 변화가 가장 크다. 반면 애플의 보유량은 1.85% 줄였다. M7 중 주식 보유량이 줄어든 것은 애플이 유일하다. 월가에서 M7이 과대 평가됐다는 ‘AI 거품론’과 여전히 잠재력이 크다는 ‘낙관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국민연금은 차익실현 대신에 하반기에도 M7이 주도하는 랠리에 베팅한 것으로 보인다.
톱10 중 제일 많이 사들인 건 S&P500지수를 추종하는 ETF인 iShares Core S&P500 ETF(티커 IVV)다. 보유량을 5.85% 늘림으로써 빅테크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였다.
반면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미국 대표기업 600여 개를 선정해 만든 MSCI USA 지수를 추종하는 ETF인 PBUS는 2분기에 보유량을 6.95% 줄였다. 톱10 중 최대 삭감이다.
국민연금이 이번 2분기에 눈여겨본 종목은 엑손모빌이다. 보유량을 14.92% 늘렸다. 대표적인 에너지주로 ‘트럼프 수혜주’로도 꼽히는 종목이다. 이어 MSCI 스페인 지수를 추종하는 ETF인 EWP의 보유량을 5.85% 늘렸다. 지난해 4분기 보유량을 15.78% 늘린 뒤 연이은 추매다. 포트폴리오 내 비중은 0.29%에 불과하지만 국민연금이 미국 다음으로 스페인 시장에 주목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새로이 장바구니에 담은 종목도 20개나 된다. 섹터별로 보면 IT(5개), 산업재(4), 금융(3), 임의소비재(2)에서 비교적 많은 종목을 매수했다.
특히 IT 부문에서는 트랜스유니언(신용정보 및 정보 관리 서비스 제공), 퓨어스토리지(데이터 스토리지 및 관리 솔루션 제공), 옥타(ID 및 접근 관리 소프트웨어 제공), 앱러빈(모바일 앱 마케팅 및 수익화 플랫폼), 마이크로스트레티지(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소프트웨어 및 비트코인 투자) 등 5곳에 투자했다. AI 투자 열풍을 타고 기술 혁신과 디지털전환에 따른 성장 잠재력이 큰 곳들이다.
특히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비트코인 최대 보유 기업으로, 국민연금의 비트코인 간접 투자로 이번 신규 투자를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매수액은 3억3700만 달러로 투자 규모 상위에 올랐다.
신규 매수 건 중 비중이 가장 큰 TSPA(T Rowe Price US Equity Research ETF), TGRW(T Rowe Price Growth Stock ETF) 등 금융주에 대한 전략적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하반기 금리인하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이 부문에서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헬스케어(1), 소재(1), 부동산(1), 유틸리티 및 통신(1) 섹터에 대한 소량의 투자도 이루어졌다. 이는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 차원의 포트폴리오로 보인다.
장바구니에서 완전히 빼버린 종목도 13개다. 특히 1분기에 샀던 도이치텔레콤(IT)과 재즈파머슈티컬스(헬스케어), 아치캐피털그룹(금융)을 털었다.“AI 버블론 대신에 미국 경기!”
M7 차익실현 나선 KIC국내 최대 규모의 위탁자산을 관리하는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KIC)는 2분기 M7의 차익실현에 나섰다.
보유 종목 톱10 중 일라이릴리(0.30%)를 제외한 모든 종목의 보유 지분 일부를 팔아치웠다. 구글(-3.75%)을 시작으로 엔비디아(-2.65%), 마이크로소프트(-2.12%), 메타(-2.16%), 애플(-0.35%)의 보유량을 줄였다. 애플의 지분만 줄이고 추매에 나선 국민연금과 상반된 행보다.
KIC가 톱10 중 가장 많이 판 건 반도체주인 브로드컴이다. 보유량의 6.99%를 정리했다. KIC의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2%다.
브로드컴과 함께 마이크론테크놀로지(8460만 달러), 엔비디아(6720만 달러), 온세미콘덕터(5840만 달러) 등 반도체 기업들의 일부 지분을 매도했다. 매도액 기준으로 보면 KIC의 매도 상위 종목들이다.
톱10 밖이지만 테슬라는 1분기(-9.47%)에 이어 2분기에도 10.66%를 팔아치웠다. 포트폴리오 비중은 0.91%다.
M7 차익실현에 나선 KIC가 2분기 장바구니에 담은 건 일라이릴리와 소매업, 그리고 전력 인프라다. 일라이릴리는 국민연금과 KIC 모두 톱10에서 추매한 유일한 공통종목이다. 비만치료제 ‘마운자로’의 제약사로 최근엔 이 약이 성인의 당뇨병 발병 위험을 크게 낮췄다는 임상 결과도 나왔다.
2분기에 소매업 비중을 늘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KIC는 세계 최대 소매 체인인 월마트와 세계 최대 주택용품 판매 업체인 홈디포의 보유량을 각각 7.27%, 10.83% 늘렸다. 두 기업 모두 미국인들의 소비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만큼 소비 유통, 건설 경기를 전망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AI 인프라주도 차곡차곡 쌓고 있다. AI 시장의 성장으로 미국의 인프라 투자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들이다. 대표적인 게 데이터센터, 반도체, 배터리, 항공우주 등의 분야에 사용되는 전력 인프라를 제공하는 이튼이다. 2분기에만 보유량을 79.34% 늘렸다.
2분기에 신규 편입한 종목에서도 에너지(사우스웨스턴에너지, 코드에너지, GE버노바)주를 많이 담았다.
이 밖에 국방(엘빗시스템스), 헬스케어(그레일) 등 여러 산업에 걸쳐 13개 기업에 신규 투자했다. 노르웨이안크루즈홀딩스(크루즈 산업), 리프트(모빌리티) 신규 투자는 경기 변동에 민감한 공격적인 투자로 볼 수 있다. 소매업 투자와 동일하게 미국의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은 투자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과 KIC가 동일하게 신규 투자한 곳은 GE버노바, 엠코그룹, 마이크로스트레티지, 솔벤텀, 그레일 등 5개사다. 이 중 GE버노바와 그레일, 솔벤텀은 기존 대기업(GE, 일루미나, 3M)에서 분사 후 독립상장한 기업이다. 특히 GE버노바는 AI 관련 미국의 핵심 전력인프라 업체로 꼽힌다.
비트코인과 금 투자도 눈여겨볼 만하다. 두 기관 모두 마이크로스트레티지를 신규 투자함으로써 비트코인 간접 투자 규모를 늘렸다. 이 회사는 전 세계 기업 중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약 2000만개에 이르는 비트코인 전체 공급량의 1% 이상인 22만6500개를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이번 신규 투자를 비트코인에 대한 간접 투자로 해석하는 이유다.
이 밖에도 KIC가 2분기에 보유량을 가장 많이 늘린 건 단연 금이다. 금에만 388.62%, 캐나다 기반의 금광 회사인 KGC에 105.36%를 투자해 사실상 금투자에 올인했다. 12kg짜리 금괴 1개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우리 돈 13억3000만원을 넘어서는 등 금값은 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애플과 테슬라, 남과는 다른 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전방위 투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는 좀 더 공격적이다. M7에 대한 차익실현에 나서면서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이색 도전도 눈에 띈다.
미래에셋글로벌인베스트먼트가 미국 SEC에 제출한 보유주식 현황자료(13F)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MS(-23.88%), 알파벳A(-17.05%), 엔비디아(-31.14%)의 보유 지분 일부를 매도했다.
반면에 애플 보유량은 외려 15.45% 늘렸다. 회사의 포트폴리오에서도 애플 지분은 1분기 2.66%에서 4.02%로 늘었다. 애플 지분을 축소한 국민연금, KIC와는 상반된 선택이다.
테슬라를 늘린 것도 3사 중 미래에셋이 유일하다. 미래에셋은 2분기에만 보유량을 136.69% 대폭 늘리며 포트폴리오에서 테슬라 지분을 0.58%에서 1.61%로 키웠다.
아마존, 일라이릴리 등이 톱3에 안착한 것도 이색적이다. 미래에셋의 포트폴리오 넘버 원은 아마존, 넘버 스리는 일라이릴리다.
이 회사가 2분기에 새롭게 투자한 곳은 총 19개사다. 글로벌 다각화를 노리는 미래에셋답게 지역적 다각화를 꾸렸다.
중남미 시장에 상장된 대형주 40개를 추종하는 ‘아이셰어즈 라틴아메리카 40 ETF’, 멕시코 경제의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MSCI 멕시코 ETF’, 신흥국 통화로 발행된 채권에 직접 투자하는 ‘VanEck J.P. Morgan EM 지역화폐채권 ETF’ 등의 투자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멕시코 등 신흥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엿봤다.
또 큐레이티브, 바이오래드, 델테크놀로지스, 페어아이작 등 헬스케어, IT업종에서 기술 혁신을 이루는 기업에도 적극 투자했다. 대신에 ‘제이피모간 U.S. Aggregate Bond ETF’, ‘뮤니채 ETF’, ‘iShares Short Treasury Bond ETF’, ‘iShares 10-20 Year Treasury Bond ETF’, ‘VanEck J.P. Morgan EM Local Currency Bond ETF’, ‘iShares Floating Rate Bond ETF’, ‘Schwab U.S. Aggregate Bond ETF’ 등의 채권 및 고정수익 관련 투자 상품을 다수 포함함으로써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강화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지분을 축소한 곳은 스타벅스를 비롯해 76개사다. 특히 스타벅스는 2분기에만 보유량의 95.38%를 뺐다. 포트폴리오도 1분기 1.93%에서 0.08%로 줄었다. 월트디즈니 보유량도 84.92% 감소했다.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6%에서 0.02%로 대폭 감소했다. 사실상 투자리스트에서 제외한 셈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