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동거인, 노소영에 20억원 줘야”…‘역대급’ 위자료 나온 이유[민경진의 판례 읽기]

법원 “혼인 파탄 공동 책임” 인정
김 이사 항소 포기, 판결 나흘만에 20억원 입금

[법알못 판례 읽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4월 16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관련 항소심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앞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에서 사상 최대 규모 위자료(20억원)가 나온 데 이어 이른바 ‘상간 소송’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위자료가 책정된 것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혼인 파탄으로 인해 입은 정신적 피해가 막대하다고 보고 최 회장과 김 이사의 공동 책임을 인정했다.

“김 이사, 최 회장과 동등한 금액 부담해야”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이광우 부장판사)는 2024년 8월 22일 노 관장이 최 회장의 동거인인 김 이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최 회장과 공동으로 원고에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노 관장은 2023년 3월 “최 회장과의 혼인 생활이 파탄 나는 데 김 이사가 원인을 제공했고 이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위자료 30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노 관장 측은 “유부녀였던 김 이사가 최 회장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 뒤 부정행위를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또 “(최 회장과 김 이사가) 혼외자까지 출산했고 최 회장은 2015년 이후에만 김 이사에게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김 이사 측은 “이미 혼인 관계가 파탄된 상태였고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은 노 관장에게 있다”고 맞섰다. 노 관장 측이 주장한 1000억원에 대해서는 명백한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며 이를 언론에 밝힌 노 관장 대리인을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노 관장이 이혼소송에서 최 회장을 상대로 반소를 제기한 2019년 12월 이후 부부 공동생활은 실질적으로 파탄 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신과 최 회장의 관계가 부정행위를 구성하지 않고 시효도 소멸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재판부는 노 관장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와 최 회장의 부정행위, 혼외자 출산, 최 회장의 일방적인 가출과 별거의 지속, 피고와 최 회장의 공개적인 행보 등이 원고와 최 회장 사이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혼인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것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분명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위자료 액수에 대해서는 “원고와 최 회장의 혼인 기간, 혼인 생활의 과정,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경위, 부정행위의 경위와 정도, 나이, 재산 상태와 경제 규모, 선행 이혼 소송의 경과 등 사정을 참작했다”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진 피고와 최 회장의 부정행위로 원고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실질적인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 이사와 최 회장은 노 관장에 대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원칙적으로 각자가 손해배상액 전액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김 이사의 책임이 최 회장과 비교해 특별히 달리 정해야 할 정도로 가볍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최 회장과 동등한 액수의 위자료를 부담하는 게 정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선행 이혼소송의 항소심은 최 회장이 원고에게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며 “부부의 일방과 제3자가 부담하는 불법행위책임은 공동불법행위책임으로서 부진정연대채무 관계에 있다”고 밝혔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인 김수정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는 선고 후 “원고와 자녀들이 겪은 고통은 어떠한 금전으로도 치유되기 어렵지만 무겁게 배상 책임을 인정해 주신 것은 가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보호하려는 법원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김 이사 측 대리인인 배인구 법무법인 와이케이 변호사도 “김 이사는 이유 여하를 떠나 원고인 노소영 씨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저희는 이번 소송이 재산분할 소송에서 유리한 입지를 위해 기획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이상 도가 지나친 인격 살인은 멈춰 달라”고 덧붙였다.

위자료 추가 인정 여부 주목

노 관장이 항소하지 않아 1심 판결이 확정된다면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인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소송의 결과와 무관하게 노 관장은 20억원의 위자료를 확보하게 된다.

노 관장이 김 이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이혼소송과는 별개 소송으로 판결이 확정될 경우 각자 효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위자료를 20억원보다 적게 책정한 판결이 나오더라도 노 관장이 이미 받은 위자료를 반환할 의무는 없다.

반대로 20억원이 넘는 위자료가 확정될 경우 그 액수에서 20억원을 제한 돈을 최 회장이 홀로 지급해야 한다.

김 이사는 1심 선고 직후 항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선고 나흘 만인 지난 8월 26일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을 입금했다. 김 이사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라움의 박종우 변호사는 이날 “김 이사는 오늘 판결 원리금을 직접 노 관장 계좌로 이체하고 곧바로 대리인을 통해 노 관장 측에 그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관장 측은 아무런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입금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노 관장 측은 “상간녀 측에서 아무런 사전 협의나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입금했다”며 “돈의 성격이 채무변제금인지 가지급금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노 관장의 대리인인 이상원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는 입장문을 통해 “김 이사의 일방적인 송금 행위는 돈만 주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며 “노 관장의 개인정보인 계좌번호 정보를 어떤 경위로 알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 측은 별도 입장문을 내 “송금액은 항소를 전제로 한 가지급금이 아니라 판결에 따르겠다는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확정적인 채무 변제금”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 관장이 소송에서 낸 증거에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매월 생활비를 보내던 계좌번호가 포함됐다”며 “김 이사는 이를 통해 노 관장의 계좌번호를 알게 된 것으로 판결금 이행에는 관련 법령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돋보기]
사상 최대 재산분할·위자료에 전합 가능성 제기

앞서 최 회장과 노 관장 부부 이혼소송에서 항소심 법원은 최 회장의 혼인 파탄 책임을 인정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을 명령했다. 1심에서 인정한 재산분할액 665억원에서 무려 20배나 늘어난 금액이다.

법원이 이혼소송에 이어 이번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위자료 20억원을 인정한 점에도 법조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전까지 위자료는 3000만~5000만원 선이었는데 이보다 훨씬 큰 금액이 연달아 법원에서 인정됐기 때문이다. ‘위자료 20억원’이라는 선례가 생기면서 앞으로 억 단위 위자료가 줄줄이 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편 대법원은 최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사건을 1부에 배당했다. 상고심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된 가사소송에서의 사실인정 문제, 2심 법원이 SK C&C의 전신인 대한텔레콤의 주식 가치를 판결문에 잘못 적었다가 사후 경정(정정)한 것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아울러 원심이 이례적인 규모의 재산분할 금액과 위자료를 인정한 만큼 상고심에서 이 같은 판단의 정당성을 다시 따져볼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거나 사회적 파급력이 큰 중요 사건을 다룬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표결로 판단한다.

지금까지 이혼 재산분할 사건이 전원합의체 판단을 받은 사례는 없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일반적인 가사 사건과 달리 재산분할 금액 및 위자료 규모가 상당히 크고 복잡한 쟁점이 많아 소부에서 쉽게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전합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민경진 한국경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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