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폭탄’에 고개든 ‘영끌족’까지…엇박자 정책이 부른 금융불안
입력 2024-09-04 09:13:09
수정 2024-09-04 09:13:09
[비즈니스 포커스 1-2]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가 이어지고 내수 회복세가 더디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및 글로벌 위험회피심리 변화가 수도권 주택가격 및 가계부채, 외환시장 상황 등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한국은행이 지난 8월 22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이다. 한은은 제1의 목표인 물가상승률이 둔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로 수도권의 주택가격과 가계부채를 꼽았다.
대통령실은 유감을 나타냈고 한은은 이에 반발했다. 20년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튀어오르게 한 주범은 누구일까. “2개월간 빚 내라더니…”지난 6월 25일 시장을 뒤흔든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일을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연기하는 내용이었다. 시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나온 급작스러운 조치였다.
시중은행들도 불과 며칠 전까지 대출한도 축소 시뮬레이션 등을 바탕으로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러운 연기 통보를 받아들었다. 일부 은행은 내부 공문을 통해 7월 시행 안내 사전 예고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정부는 범정부적 자영업자 지원대책이 논의되는 상황이고 6월 말 시행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성 평가 등 전반적인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륙 과정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난색을 표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사실상 빚을 더 내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정부는 호언장담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변함이 없다”며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또 “향후 스트레스 DSR 적용 범위 확대, 스트레스 금리 단계적 확대 적용으로 가계부채 억제 효과도 점점 확대될 것”이라며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스트레스 금리가 상승하면서 금리 하락에 따른 대출한도 확대 효과를 제어할 수 있어 효과도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책 발표 후 시장은 ‘신호’를 받아들였다. 부동산 시장은 신규 부동산 대출을 받아 막차를 타려는 이들로 들썩거렸다. 잘못된 신호였지만 정책이 만든 불꽃 장세는 꺾일 줄 몰랐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주간 상승폭을 꾸준히 키워가더니 지난 7월 넷째주 5년 10개월여 만에 최대 주간 상승폭을 나타냈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연기 한 달 만이었다. 파죽지세였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인기 주거지를 중심으로 신축 아파트값 상승세는 큰 폭으로 확대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특히 7월의 서울 신축(준공 5년 이내) 아파트값은 6월보다 2.34% 올랐다. 서울 전체 아파트값 상승률(1.19%)의 배 수준으로 2012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서초구 반포동과 강남구 개포동 등 최근 신축 대단지가 들어선 지역에선 역대 최고가 거래가 쏟아졌다. 서울 서초구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는 7월 24일 43억원에 거래됐다. 지난 2009년 이 아파트가 준공된 이래 최고 가격이다. 해당 평형은 지난 6월 1일 39억원에 신고가로 거래된 데 이어 2개월 사이 10번이나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아크로리버파크’나 ‘래미안 원베일리’ 등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랜드마크들이 맹활약했지만 다른 서울 아파트도 상승 흐름에 올라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3월 넷째주 0.01% 오른 것을 시작으로 16주 연속 상승했다.
1년 뒤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소비자도 급증했다. 한은이 발표한 7, 8월 소비자 동향조사에서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전월보다 7포인트, 3포인트 오른 115(7월), 118(8월)로 집계됐다. 2021년 11월(116)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1년은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서 집값 폭등이 이어지던 시기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나타나면서 당시 수준의 기대가 형성된 것이다.
주택가격전망 CSI는 기준치인 ‘100’보다 높을수록 소비자들이 향후 1년 동안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향이 강함을 나타낸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 연기 후 주택담보대출과 주택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가 커졌다”고 말했다.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부동산 투심은 불타올랐다. 치솟는 짒값에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공포심은 ‘패닉 바잉’을 자극했다. 있는 대로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이른바 ‘영끌족’도 다시금 급증했다.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559조7501억원에 달해 6월 말의 552조1526억원보다 7조5975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6년 1월 이후 월간 최대 증가폭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6월 말 기준으로 20대와 30대가 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에서 빌린 주담대 잔액은 140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많은 비중이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2030 연령대의 주담대 잔액은 12조8000억원 증가해 전체 대출 증가폭(32조9000억원)의 38.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도 급증했다. 8월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6월 말 중앙정부 채무와 가계신용 합계는 304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명목 GDP의 약 1.25배 수준으로 정부와 가계빚이 3000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계신용은 금융권 가계대출과 결제 이전 카드 사용액을 더한 실질적인 가계부채를 뜻한다. 특히 가계부채는 최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2분기에만 13조8000억원 증가하며 1896조2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치다.
“은행의 경영 실패라고?”한은을 비롯한 다수의 전문가들이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 연기와 가계부채의 연관 관계를 꼬집었다. 그러나 정부 분석은 달랐다.
8월 27일 박중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가계부채 관련 긴급 브리핑을 열고 “7~8월 들어 가계부채 증가폭이 당국이 생각하는 관리 수준을 벗어났다”며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 경영계획 실패가 심각해 개입 필요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주담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시중은행 가계대출(8월 21일 기준 517조5000억원)이 이미 올해 계획했던 목표치(512조7000억원)를 넘긴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앞선 25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한 방송에 출연해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대출) 물량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며 “지금까지는 은행 자율성을 고려해 개입을 적게 했는데 앞으로 더 개입을 세게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이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관리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해 은행 대출 행태를 더욱 엄격히 관리할 방침을 전했다. 또한 집값 급등세, 대출 급증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 남아 있는 각종 규제 카드를 총동원해 ‘가계부채와의 전쟁’에 나설 것이란 강력 방침도 시사했다.
한은도 정책 공조에 나섰다. 미국 중앙은행이 사실상의 ‘피벗’을 선언하고 한은 역시 물가상승률이 2% 중반대로 내려오면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요인을 갖췄지만 치솟은 서울 집값과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가계부채가 금융불안이 되어 통화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오늘의 결과를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7월에 DSR 2단계 시행을 연기한 것은 가계에 두 달 동안 더 빚을 내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 없었다”며 “시행 시기가 너무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세대출과 담보대출을 포함한 전체 대출의 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입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DSR 규제 실행을 연기하며 부동산 매입을 권하더니 집값 급등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그 책임을 은행으로 돌린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한 술 더 떠 금리 동결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한은 측은 한국은행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입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물가상승률 둔화 추세가 이어지고 내수 회복세가 더디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및 글로벌 위험회피심리 변화가 수도권 주택가격 및 가계부채, 외환시장 상황 등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한국은행이 지난 8월 22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이다. 한은은 제1의 목표인 물가상승률이 둔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로 수도권의 주택가격과 가계부채를 꼽았다.
대통령실은 유감을 나타냈고 한은은 이에 반발했다. 20년간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튀어오르게 한 주범은 누구일까. “2개월간 빚 내라더니…”지난 6월 25일 시장을 뒤흔든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다.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일을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연기하는 내용이었다. 시행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나온 급작스러운 조치였다.
시중은행들도 불과 며칠 전까지 대출한도 축소 시뮬레이션 등을 바탕으로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준비하다가 갑작스러운 연기 통보를 받아들었다. 일부 은행은 내부 공문을 통해 7월 시행 안내 사전 예고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정부는 범정부적 자영업자 지원대책이 논의되는 상황이고 6월 말 시행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성 평가 등 전반적인 부동산 PF 시장의 연착륙 과정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난색을 표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사실상 빚을 더 내라고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정부는 호언장담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변함이 없다”며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또 “향후 스트레스 DSR 적용 범위 확대, 스트레스 금리 단계적 확대 적용으로 가계부채 억제 효과도 점점 확대될 것”이라며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스트레스 금리가 상승하면서 금리 하락에 따른 대출한도 확대 효과를 제어할 수 있어 효과도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책 발표 후 시장은 ‘신호’를 받아들였다. 부동산 시장은 신규 부동산 대출을 받아 막차를 타려는 이들로 들썩거렸다. 잘못된 신호였지만 정책이 만든 불꽃 장세는 꺾일 줄 몰랐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주간 상승폭을 꾸준히 키워가더니 지난 7월 넷째주 5년 10개월여 만에 최대 주간 상승폭을 나타냈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연기 한 달 만이었다. 파죽지세였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인기 주거지를 중심으로 신축 아파트값 상승세는 큰 폭으로 확대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특히 7월의 서울 신축(준공 5년 이내) 아파트값은 6월보다 2.34% 올랐다. 서울 전체 아파트값 상승률(1.19%)의 배 수준으로 2012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서초구 반포동과 강남구 개포동 등 최근 신축 대단지가 들어선 지역에선 역대 최고가 거래가 쏟아졌다. 서울 서초구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전용면적 84㎡는 7월 24일 43억원에 거래됐다. 지난 2009년 이 아파트가 준공된 이래 최고 가격이다. 해당 평형은 지난 6월 1일 39억원에 신고가로 거래된 데 이어 2개월 사이 10번이나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아크로리버파크’나 ‘래미안 원베일리’ 등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랜드마크들이 맹활약했지만 다른 서울 아파트도 상승 흐름에 올라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3월 넷째주 0.01% 오른 것을 시작으로 16주 연속 상승했다.
1년 뒤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소비자도 급증했다. 한은이 발표한 7, 8월 소비자 동향조사에서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전월보다 7포인트, 3포인트 오른 115(7월), 118(8월)로 집계됐다. 2021년 11월(116)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1년은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서 집값 폭등이 이어지던 시기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나타나면서 당시 수준의 기대가 형성된 것이다.
주택가격전망 CSI는 기준치인 ‘100’보다 높을수록 소비자들이 향후 1년 동안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향이 강함을 나타낸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 연기 후 주택담보대출과 주택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가 커졌다”고 말했다.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부동산 투심은 불타올랐다. 치솟는 짒값에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공포심은 ‘패닉 바잉’을 자극했다. 있는 대로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이른바 ‘영끌족’도 다시금 급증했다.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은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559조7501억원에 달해 6월 말의 552조1526억원보다 7조5975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6년 1월 이후 월간 최대 증가폭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6월 말 기준으로 20대와 30대가 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에서 빌린 주담대 잔액은 140조8000억원에 이르렀다.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많은 비중이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2030 연령대의 주담대 잔액은 12조8000억원 증가해 전체 대출 증가폭(32조9000억원)의 38.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도 급증했다. 8월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6월 말 중앙정부 채무와 가계신용 합계는 3042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명목 GDP의 약 1.25배 수준으로 정부와 가계빚이 3000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계신용은 금융권 가계대출과 결제 이전 카드 사용액을 더한 실질적인 가계부채를 뜻한다. 특히 가계부채는 최근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2분기에만 13조8000억원 증가하며 1896조2000억원까지 불어났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치다.
“은행의 경영 실패라고?”한은을 비롯한 다수의 전문가들이 스트레스 DSR 2단계 적용 연기와 가계부채의 연관 관계를 꼬집었다. 그러나 정부 분석은 달랐다.
8월 27일 박중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가계부채 관련 긴급 브리핑을 열고 “7~8월 들어 가계부채 증가폭이 당국이 생각하는 관리 수준을 벗어났다”며 주요 은행의 가계대출 경영계획 실패가 심각해 개입 필요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주담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시중은행 가계대출(8월 21일 기준 517조5000억원)이 이미 올해 계획했던 목표치(512조7000억원)를 넘긴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앞선 25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한 방송에 출연해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대출) 물량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며 “지금까지는 은행 자율성을 고려해 개입을 적게 했는데 앞으로 더 개입을 세게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이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관리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해 은행 대출 행태를 더욱 엄격히 관리할 방침을 전했다. 또한 집값 급등세, 대출 급증세가 잡히지 않을 경우 남아 있는 각종 규제 카드를 총동원해 ‘가계부채와의 전쟁’에 나설 것이란 강력 방침도 시사했다.
한은도 정책 공조에 나섰다. 미국 중앙은행이 사실상의 ‘피벗’을 선언하고 한은 역시 물가상승률이 2% 중반대로 내려오면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요인을 갖췄지만 치솟은 서울 집값과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가계부채가 금융불안이 되어 통화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이 오늘의 결과를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7월에 DSR 2단계 시행을 연기한 것은 가계에 두 달 동안 더 빚을 내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름 없었다”며 “시행 시기가 너무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세대출과 담보대출을 포함한 전체 대출의 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입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DSR 규제 실행을 연기하며 부동산 매입을 권하더니 집값 급등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그 책임을 은행으로 돌린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한 술 더 떠 금리 동결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한은 측은 한국은행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입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