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두산 사업 재편, 희비 엇갈려…주주 반발·금융당국 제동에 ‘백기’

[비즈니스 포커스]

SK그룹과 두산그룹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



SK와 두산이 나란히 추진 중인 지배구조 개편이 소액주주 반발로 도마에 오른 가운데 희비가 엇갈렸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압도적인 찬성으로 주주총회를 통과했지만 두산은 주주 반발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고강도 압박이 이어지자 결국 그간 추진해온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안을 철회했다.

9부능선 넘은 SK 합병…“보유 현금 주매청 감당 가능”


SK이노베이션은 8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SK E&S와의 합병 계약 체결 승인 안건이 참석 주주 85.75%의 찬성률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매출 88조원, 자산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합병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 주주 가치 훼손 논란도 적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 일부 주주는 1대 1.1917라는 합병비율이 불리하게 책정됐다며 반발해 왔다.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를 자산가치가 아닌 기준시가로 책정해 소액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됐다는 지적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을 따른 것이나 SK이노베이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6으로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돼 있어 합병비율이 주식가치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의 2대 주주로 6.2%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최대주주인 SK(지분율 36.2%)를 비롯한 대다수 주주가 찬성하며 합병안이 통과됐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8월 2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임시주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아직 주식매수청구권 변수가 남아 있지만 업계에서는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전량 주식매수청구권(주식매수 예정가격 11만1943원)을 행사한다고 가정하면 SK 측이 매수해야 하는 금액은 9229억원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이 설정한 한도 매수금액은 8000억원이지만 이를 초과해도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합병 취지에 공감하는 주주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예상한 범위 이상으로 매수청구권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회사 보유 현금이 1조4000억원이 넘는 만큼 주식매수청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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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두산타워. 사진=한국경제신문


두산, 금감원 압박에 결국 합병 철회

두산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안을 추진하다가 금융감독원의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두산은 8월 29일 사업구조 개편 차원에서 추진해 온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의 합병 계획안을 철회했다. 지난 7월 11일 사업구조 개편을 발표한지 49일 만이다.

이날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각각 긴급이사회를 소집하고 양사 간 포괄적 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든 뒤 두산밥캣을 상장 폐지하려던 계획도 사실상 무산됐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이날 각각 대표이사 명의의 주주서한을 내고 “사업구조 개편 방향이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주주 분들 및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추후 시장과의 소통 및 제도개선 내용에 따라 사업구조 개편을 다시 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양사 간 시너지를 위한 방안을 계속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합병은 속도조절…에너빌리티·밥캣 분할은 진행

다만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간 분할합병 안은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8월 초 주주서한에서 설명한 것처럼 원전 분야의 세계적 호황으로 전례 없는 사업기회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 생산설비를 적시 증설하기 위해선 이번 사업재편을 통해 투자여력을 확보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번 분할합병을 마치게 되면 차입금 7000억원 감소 등을 통해 1조원 수준의 신규 투자여력을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두산이 지배구조 개편에 있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금융당국의 정정요구 사항을 충실히 반영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 시장 의견 등을 수렴해 주주총회 등 추진 일정을 재수립할 예정이다. 당초 9월 25일로 예정된 주주총회 날짜도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간 인적분할 및 합병,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 등을 통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이전하는 사업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적자 기업인 로보틱스와 안정적인 ‘캐시카우’인 밥캣의 자본거래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1대 0.63으로 거의 동일하게 평가받았다는 측면에서 최대주주에게만 유리하고 소액주주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합병 비율을 두고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커지며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까지 전방위 압박을 받아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두산의 정정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8월 26일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관련,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에 대한 증권신고서에 대한 2차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융당국의 거듭된 정정 요구를 두고 두산이 직전 증권신고서에서도 논란의 핵심인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을 동일하게 고수하자 압박의 강도를 높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회에서는 ‘두산밥캣 방지법’이 발의됐으며 금감원은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 계획에 대해 두 차례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두 회사 합병을 위한 정정 증권신고서 제출은 9월 25일로 예정된 주주총회 일정상 이날이 데드라인이었다.


금융감독원. 사진=한국경제신문


국민연금이 SK에 반대표 던지자 결심한 듯

두산이 금감원의 2차례에 걸친 정정 요구에도 기존의 합병 비율을 고수하다가 결국 사업 재편 계획을 수정한 데에는 국민연금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에 반대표를 던진 영향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캐스팅보트인 국민연금이 두산의 합병안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최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조건에 대해 “10% 범위에서 (합병가액) 할증도 가능한데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들이 나왔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두산 합병안에도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두산의 합병 역시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비판이 거센 데다 국민연금이 언급한 ‘10% 할증 노력 부족’이라는 지적은 두산도 피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장사 간 합병과 주식교환 등은 시가를 기준으로 가치를 정하지만 계열사 간 거래인 경우에는 10% 이내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이 가능하다. 만약 저평가인 밥캣의 합병가액을 10% 할증하고 고평가인 로보틱스는 10% 할인한다면 교환비율은 0.63에서 0.77로 올라간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두산은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라 시장주가에 의해 합병비율을 계산했다고 하지만 계열사 간 합병 시 10% 범위 내에서 증감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러한 합병 비율에 대한 이사회의 충분한 설명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의 지분을 각각 6.94%와 6.49% 보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반대하고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합병 자체가 어려워진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한도로 6000억원을 설정한 바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주당 2만850원)을 기준으로 국민연금 한 곳만 반대 의사를 표해도 매수 한도를 초과하게 돼 합병이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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