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가 없다"...'토종커피' 자존심 이디야의 '추락'

지난해 매출 감소...2012년 실적 공개 이후 처음
'스벅'에 밀리고 '메가'에 치여

커피 시장 양극화에 애매해진 가격
낡은 브랜드 이미지로 소비자 외면

대대적인 리브랜딩으로 반등 노려
사영 변경까지 고민 중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해 이디야의 매출은 275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778억원)보다 0.8% 감소한 수치다. 이디야의 매출이 감소한 것은 2012년 실적을 공개한 이후 처음이다. 사진=연합뉴스


이디야커피의 질주는 무서웠다. 토종 중저가를 앞세워 스타벅스의 경쟁 상대로 거론될 정도였다. 하지만 2024년 이디야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오랜 기간 이어왔던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1위(점포 수) 자리를 빼앗긴 것은 물론 사상 처음으로 매출까지 마이너스 성장하며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디야의 매출은 275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2778억원)보다 0.8% 감소한 수치다. 매출이 감소한 것은 2012년 이디야가 실적을 공개한 이후 처음이다.

영업이익 역시 82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8.1% 줄었으며 당기순이익은 34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최근에는 신규 점포 출점이 급격히 둔화된 가운데 폐업하는 점포가 늘면서 전국 매장 수는 2000개 후반으로 떨어져 업계 선두(메가커피 약 3000개) 자리도 내줬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디야에 갈 이유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가격은 싸지 않고 분위기는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이디야가 대규모 리브랜딩에 나선 것도 내부에서 ‘이대로 가다간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내린 결정이다. 변화한 커피 시장 흐름에 맞춰 이디야라는 브랜드를 리포지셔닝하기 위한 고민에 돌입했다. 매장 인테리어 변경 및 신메뉴 개발 등 지난 20여 년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를 이번 작업을 통해 바꾸는 것이 목표다. 필요할 경우 사명까지 변경하겠다는 각오다. 이디야커피 관계자는 “신선함을 더해 새로운 타깃 소비자층을 발굴하는 것이 리브랜딩의 목표”라며 “빠르면 올해 말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토종 커피의 자존심 이디야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1. 포지셔닝의 실패“가격이 애매모호해졌다.”
한 커피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디야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는 원인을 축약한 문장이다. 이디야가 부진에 빠지게 된 것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실패 요인으로 잃어버린 가격 경쟁력을 꼽는다.

과거 이디야가 폭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최대 무기는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2001년 1호점을 오픈한 이디야는 매년 빠르게 점포 수를 확장했다. 2013년 가맹점 수 1000호점을 돌파하며 국내 커피 시장 1위에 등극했다. 이디야의 강점은 가격이었다. 국내 유일의 ‘가성비’ 커피로 브랜드를 포지셔닝하며 고객들의 발길을 이끈 것이다.

이디야가 한국 커피 시장 최강자로 올라선 배경은 2013년 당시 주요 업체들의 커피 가격에서도 나타난다. 스타벅스·커피빈·투썸플레이스·할리스커피 등의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이 약 4000원일 때 이디야는 이들의 60% 수준인 2500원 가격을 고수했다. 독보적인 ‘저가 브랜드’의 입지를 명확하게 가져가며 부담 없이 커피를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 수요를 끌어안았다.

지금은 달라졌다. 이디야의 현재 아메리카노 한 잔 가격은 3200원이다. 연이은 인상으로 스타벅스(4500원)의 70%까지 가격이 올라왔다. 물론 여전히 가격이 저렴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초저가로 브랜드를 포지셔닝한 브랜드들이 시장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빽·컴·메’(빽다방·컴포즈커피·메가커피)가 주인공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 이들은 빠른 보폭으로 국내 커피업계에서 ‘초저가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 이 브랜드들의 특징은 아메리카노 가격을 2000원 아래로 판매 중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초저가다. 용량도 기존 커피 정량의 틀을 깨는 대용량으로 판매한다. 특히 최근 경기침체 및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저렴한 커피를 찾는 이들 역시 급증하는 추세다. ‘원조 저가 커피’였던 이디야를 밀어내며 커피 시장의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2. 너무나 많은 경쟁자들갈수록 심화하는 업계 경쟁도 이디야의 설 자리를 점차 좁아지게 만들고 있다. 이디야를 위협하는 건 초저가 커피뿐만이 아니다. 가격이 비싼 해외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들도 대거 등장하며 갈 길 바쁜 이디야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커피 시장 잠재력을 눈여겨본 수많은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추세다. 모로코의 바샤커피, 미국의 인텔리아젠시아커피 등이 대표 격이다.

현지에서도 가격은 높지만 깊은 맛으로 유명한 고급 커피 브랜드들이다. 커피 애호가들이 늘어나는 한국 시장에서 이들은 차별화된 맛과 공간으로 연일 문전성시다.


점차 다양해지는 선택지에 소비자들도 더 이상 이디야를 찾을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한 커피 업계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의 한국 시장 진출과 초저가 커피의 약진으로 국내 커피 시장 구도는 점점 ‘프리미엄’과 ‘저가’로 양극화되고 있다”며 “중간 가격대를 가진 이디야의 타깃 자체가 불명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가 커피에는 가격에서, 고급 브랜드들에는 맛과 공간 매력도에서 밀리며 점차 문들 닫는 가맹점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공정거래위위원회의 가맹사업거래 정보공개서에 따르면 이디야커피의 폐점률은 2020년 2.8%에서 2022년 6.5%(2023년 미공개)까지 높아졌다. 2020년 81개였던 계약 해지 매장 수도 2022년 196개로 급증했다.
3. 얼굴이 없다…마케팅 전략의 부재폐점이 늘면서 이디야의 가맹사업 매력도 추락하고 있다. 이디야와 같이 가맹점 수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는 프랜차이즈 사업자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악재다.

이디야 가맹점주들 사이에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본사의 소극적인 마케팅 정책도 이런 결과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초저가 커피 브랜드들의 경우 글로벌 스타 마케팅을 앞세워 창업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가격은 저가지만 마케팅에 있어서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메가커피는 손흥민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메가커피 하면 축구선수 손흥민을 떠올릴 만큼 메가커피의 얼굴이 됐다.

컴포즈커피는 BTS의 멤버 뷔를 얼굴로 내세우며 스타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다 할 광고모델이 없는 이디야와 대조적이다.

이를 통해 양사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메가커피의 지난해 매출은 3684억원으로 전년 1748억원 대비 110% 증가했다. 영업이익 또한 124% 증가한 693억원을 기록해 큰 폭의 개선을 이뤄냈다.

컴포즈커피 역시 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컴포즈커피의 지난해 매출은 888억원으로 전년 737억원 대비 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49억원에서 366억원으로 46% 증가했다. 이렇다 할 광고모델 없이 실적이 꺾인 이디야와는 대조적인 행보다.
4. 20년이 넘은 오래된 기업이디야는 현재 2세 승계가 진행 중이다. 문창기 회장의 아들인 1993년생 문승환 씨가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올해 선임됐다. 하지만 그가 과거 문 회장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마케팅과 경영전략을 펼칠지는 미지수다. 이미 이디야도 창립 20년을 훌쩍 넘긴 회사가 됐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특정 임원의 전횡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래된 회사에서, 오랜 기간 창업자와 함께한 임원들의 파워가 강할때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문승환 본부장이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할 리브랜딩에 성공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메뉴, 인테리어의 변화뿐 아니라 보다 활발한 마케팅을 전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번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브래드를 되살리는 것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이디야가 리브랜딩을 통해 ‘프리미엄’으로 갈지 ‘저가’로 갈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한국인들의 커피 취향은 이미 다변화돼 있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설정을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성장성을 보여주기는 힘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디야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가맹점주들의 의견을 수렴해 브랜드가 나가야 할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