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인 메이커 천재성은 서로 통할까?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28>
돈 멜초2021-김환기 우주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1970년 1월 어느 날 천재 화가 김환기가 일기에 쓴 자조적인 고백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그는 지난 9월 2일 ‘아트 레이블 와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푸른색 점화 ‘우주(Universe 5-IV-71 #200)’를 통해 칠레 프리미엄 와인 레이블 속으로 들어간 것. 두 폭짜리 그림은 몇 해 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금양인터내셔날이 독점 수입하는 와인은 ‘돈 멜초 2021-김환기 우주’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롯데백화점과 환기재단, 비냐 콘차 이 토로(Viña Concha y Toro)그룹의 협력으로 제작됐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2년여의 힘든 노력과 양보 덕분이다.

실무를 담당한 최준선 소믈리에(롯데백화점 소속)는 “몇 해 전 서울 부암동 소재 환기미술관에서 그 우주 작품을 처음 봤다. 당시 신비함에 놀라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며 혼잣말처럼 고백했다. 이어 “초라한 인간의 한계에 비해 압도적인 무한 분위기의 작품이 너무 좋아 온 정성을 다해 이번 행사를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했다는 그의 선견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남미 최대 와인 생산자인 ‘콘차 이 토로’는 1883년 칠레 마이포 밸리를 배경으로 설립된 와이너리. 규모와 역사뿐 아니라 알마비바 등 프리미엄 와인 출시로도 유명하다.

이번 행사용 와인은 총 3000병만 한정 생산된다. 그 때문인지 상품 안내가 나가자마자 사전판매가 완료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비결은 다름 아닌 ‘레이블 마케팅’ 전략이다. 높은 수준의 예술적 취향을 지닌 와인 애호가들의 선호도를 적극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기법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아트 인 퓨전’ 방식. 세간의 유명세를 탄 작가와 작품을 원형 그대로 제품 홍보 및 판매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돈 멜초 2021-김환기 우주’ 와인이 이에 해당된다.

‘한국인이 만든 명품 와인’으로 유명한 바소 역시 유명 작품을 통해 홍보에 나섰다. 이희상 동아원 회장은 2005년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를 인수, 사진작가 구본창의 조선 백자 달항아리를 와인 레이블에 넣었다. 첫 작품 ‘바소’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에서 거주 중인 이 회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달항아리를 무척 좋아한다. 바소 와인 레이블에 동양 이미지를 활용했지만 잘 먹히지는 않았다”며 “레이블을 꽃무늬 모양으로 교체했으나 잘 살펴보면 지금도 조선백자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샤토 무통 로칠드 2013

다음은 ‘컬래버레이션’ 기법이다. 제품 레이블의 디자인이나 제작 과정에 유명 예술가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샤토 무통 로칠드’가 공개한 2013년 빈티지 라벨에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선정됐다. 국내 작가 참여로는 유일하다.

이 화백이 표현한 와인 레이블의 기본은 ‘점’이다. 오크통을 상징하는 자주색 이미지를 통해 전통적이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와 함께 와인 메이커의 간절함과 처절한 노력도 잘 담겨 있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이처럼 유명 미술작품의 마케팅 활용은 우리 사회에 정착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와인 애호가인 배우 하정우의 그림을 라벨에 넣은 ‘콜 미 레이터’ 와인이 출시돼 30분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명품의 근간인 천재성과 처절한 노력은 서로 통한다. 세계적인 그림을 감상하며 와인을 마시고, 화가와 와인 메이커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와인이 주는 기쁨’도 두 배로 늘어나지 않을까?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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