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홍콩 쇼핑 황금기…사라진 명품 관광객

SNS·소비 패턴 변화 등으로 상권 침체
잘파세대, 명품 사진만 찍고 내려놓아

홍콩 번화가 '캔톤로드'. (사진=연합뉴스)


과거 홍콩은 ‘명품 쇼핑 성지’로 불렸다. 홍콩 침사추이의 1881 헤리티지 쇼핑몰은 까르띠에, 쇼파드, 티파니 등 고가의 액세서리 구매를 위한 쇼핑객들로 가득했다. 도시 곳곳에 아웃렛 단지가 잘 형성돼 있으며 홍콩의 조세 제도 때문에 부가가치세가 붙지 않아 비행기값을 뽑고도 남을 만큼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세일기간을 노리고 가면 정가의 70% 수준에 유럽 주요 명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매력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쇼핑객들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최근 그 별명이 옛말이 돼 가고 있다. 먼저 핵심 고객인 중국인들의 쇼핑 씀씀이가 크게 줄었다. 여기에 명품 소비의 트렌드가 ‘SNS용 촬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도 치명타다. 젊은 고객들이 사진만 찍고 구매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홍콩 내 명품 소비 회복이 앞으로 수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잘나가던 홍콩, 요즘은홍콩의 명품 산업은 침체기다. 주요 명품 브랜드가 모여 있는 홍콩의 대표적인 번화가 ‘캔톤로드’의 임대료는 최근 크게 하락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거리에 입점한 스위스 명품 브랜드 오메가는 과거 한 달에 750만 홍콩달러(약 13억원)를 지불했으나 이 거리에 입점한 다른 회사는 최근 계약에서 80% 낮은 가격으로 자리를 얻어냈다.

또 캔톤로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거리 가운데 하나로 꼽혀온 홍콩의 러셀스트리트도 변화가 생겼다. 2022년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철수한 자리는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이 매장의 임대료는 버버리가 운영할 2019년(880만 홍콩달러, 약 15억원) 대비 89%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인 리카싱 CK에셋홀딩스 대표가 소유한 1881 헤리티지 쇼핑몰의 30개 점포 가운데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점포는 3개에 그친다. 이 쇼핑몰은 과거 다양한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입점하려던 장소다.

8월 30일 홍콩 조사통계국(C&SD)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올 7월 홍콩 소매 매출은 291억 홍콩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8% 감소했다. 심지어 5개월 연속 감소세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6월 9.7% 감소 △5월 11.5% 감소 △4월 14.7% 감소 △3월 7% 감소 등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아울러 올해 1~7월 소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3% 줄었고 거래량은 8.9% 감소했다.

외국인이 감소한 것은 아니다. 홍콩 관광청에 따르면 7월 방문객 수는 392만1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9.3% 늘었다. 6월(313만2000명)과 비교해도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중국에서 유입된 방문객은 314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 늘었다. 심지어 1~7월 관광객은 전년 동기 대비 52.2% 급증했다.

정부는 명품 매출이 줄어들면서 전체 소매업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보석, 시계 등의 명품 주얼리 판매는 6월 전년 동기 대비 23.1% 감소한데 이어 7월에도 25% 감소했다. 의류, 신발, 액세서리 판매 역시 6월 9.1% 감소하고 7월 17.9% 줄었다. 또한 백화점 매출도 7월 24.3% 감소했다.

홍콩 정부는 홍콩 명품 산업의 하락세 핵심 요인으로 ‘소비 패턴의 변화’와 ‘홍콩 달러의 강세’ 등을 꼽았다. 여기에 여름휴가 기간 홍콩 거주자들의 해외여행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비 패턴의 변화로 홍콩 명품 산업은 당분간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C&SD 대변인은 “홍콩 소매 부문은 당분간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홍콩 정부는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소비 혜택을 주기 위해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 이유는 ‘SNS·소비 패턴 변화’홍콩은 201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 ‘명품 허브’였다. 아시아 진출 시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는 지역임은 물론이고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유럽이 아닌 홍콩 증시에서 기업공개(IPO)에 나선 브랜드도 많았다. 2010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는 홍콩증시에 이름을 올렸고 2011년 미국 브랜드 코치는 뉴욕증권거래소에 대다수의 주식을 상장하는 동시에 10분의 1 수준의 물량을 홍콩 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이외에도 영국 명품 버버리, 이탈리아 명품 살바토레 페라가모 등도 홍콩 증시 상장을 검토했었다.

이 시기 홍콩은 가장 많은 명품 브랜드를 유치시킨 지역이기도 했다. 상업부동산 회사 CB리처드엘리스(CBRE)가 루이비통, 구찌 등 세계적인 고가 패션 브랜드 47개사를 대상으로 매장 설치 실태를 조사한 결과 홍콩이 47개 명품 브랜드 가운데 43개 브랜드의 매장을 확보해 전 세계 매장 설치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런던(41개), 두바이(40개), 파리(36개) 등과 비교해도 월등히 많은 수치다.

이들이 홍콩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의 접근성’이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 무역은 물론 중국 투자의 관문으로 꼽히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기업들이 대거 홍콩으로 몰렸다. 동시에 중국 부자들은 홍콩에서 쇼핑하는 것을 즐기면서 홍콩 명품 산업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2010년대 중국 관광객이 홍콩에 들어와 명품과 분유 등에 대한 구매를 늘리면서 발생한 7~8%에 달하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악화하면서 소비 전체가 줄었고 특히 중국인들의 명품 구매 패턴이 온라인화, 자국화 등으로 변화하면서 홍콩 명품 산업에 악영향을 미쳤다. 실제 지난해 중국의 명품 소비액은 1조420억 위안으로 사상 처음으로 1조 위안을 돌파했다. 세계 명품 소비 점유율은 38%까지 늘어나면서 명품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늘었다.

중국 단오절 연휴(6월 8~10일) 홍콩으로 입경한 사람 수는 42만484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33만3692명이 중국인으로 집계됐다. 여전히 홍콩은 중국인들의 휴가철 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으나 소비는 줄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중국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예전 같지 않으며 이제 홍콩은 그들에게 당일치기 여행지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홍콩관광업협회 딕키 입 회장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의 매력은 전반적으로 약해졌다”며 “예전에는 쇼핑 천국이었지만 지금 사람들은 같은 물건을 중국 본토에서 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젊은층의 소비 패턴이 달라진 것도 한몫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가 유행하면서 쇼핑에도 ‘인증샷’ 문화가 자리 잡았다. 명품 매장에 들어가도 온라인 계정에 올리기 위한 사진은 촬영하지만 촬영이 끝나면 구매하지 않고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국제쇼핑센터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Shopping Centers, ICSC)의 조사 결과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의 85%가 SNS가 구매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남성은 85%, 여성은 86%로 나타났다.

CNN은 “가장 최신 쇼핑 트렌드는 ‘쇼핑 안 함’이다”며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영미권 Z세대를 중심으로 저소비 코어(underconsumption core)가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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