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전자기기가 테러 도구로 이용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파괴 공작이 현실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7일~18일 레바논에서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의 동시다발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이 폭발로 최소 37명이 숨지고 3천 명 이상이 상처를 입는 등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사상자 중에는 어린이 등 민간인도 다수 포함됐다.
1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일상적인 기기가 엄청난 규모의 수류탄으로 바뀌었다”면서 파괴 공작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통신기기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공격은 새로운 수법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기기를 동시에 터뜨려 다수를 겨냥했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매체는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이번 공격이 전자 파괴 공작의 어두운 기술을 새롭고 무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에 표적이 된 기기는 바지 주머니와 벨트, 주방에 보관돼 있었다”며 우리는 일상적 도구가 치명적 무기로 바뀔 수 있다는 취약함을 이제야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법무 자문위원을 지낸 글렌 거스텔은 NYT에 “이번 사건으로 휴대전화부터 온도조절기까지 그 어떤 전자기기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무서운 세상을 마주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이미 러시아와 북한이 사이버 공격으로 전 세계 컴퓨터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것을 목격했다”며 다른 개인·가정용 기기가 다음 목표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NYT 또한 "역사적으로 이런 파괴공작은 한번 문턱을 넘으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번 공격의 목적이 공포심 조성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오르나 미즈라히는 “이번 공격으로 헤즈볼라 통신망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더 큰 피해는 심리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보여준다”며 “이런 작전에 당한다는 건 굴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영국 카디프대학 국제관계학 연구자 아말 사드는 “앞으로 헤즈볼라는 모든 것이 해킹되고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을 극도로 우려할 것”이라며 이번 공격의 가장 큰 영향은 그들의 사기 저하와 두려움이라고 평가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폭발 사건으로 레바논 시민들 또한 전자기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 삐삐, 무전기 등은 물론 휴대전화와 노트북에까지 공포심을 느끼면서 휴대전화 수요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