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 시계·주얼리 완벽한 결합… 탁월한 독창성[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피아제①
1969년 디자인 된 피아제 스위닝 소투아르(사진①) 사진 출처: instagram piaget


피아제 시계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것은 2009년 ‘논두렁 시계 사건’부터가 아닐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이 ‘박연차 게이트’ 당시 받았다고 알려진 시계가 피아제였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2억원짜리 시계 한 세트를 건넸다는 게 당시 수사책임자의 주장이다.

피아제는 1874년 스위스 쥐라산맥의 작은 마을인 라코토페에서 시작되었다. 창업자 조르즈 에두아르 피아제는 작은 공방에서 시계 무브먼트를 제작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확하고 탁월한 울트라 신 이스케이프먼트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언제나 완벽, 그 이상을 추구하라”라는 모토는 훗날 피아제가 앞으로 나갈 방향을 잡아주었다. 이 시계 공방은 1911년 아들 티모시 피아제가 이어 받았고 1943년 피아제란 이름으로 상표 등록을 했다.
1969년 디자인된 피아제 커프 와치 사진출처:instagram piaget

조르즈 에두아르 피아제의 손자 제랄드 피아제와 발렌틴 피아제가 사업을 확장했다. 제랄드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피아제를 홍보했고 발렌틴은 시계 메이커로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1957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인 2mm의 기계식 핸드 와인딩 무브먼트 칼리버 9P가 만들어졌다. 뒤이어 불어온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개발 열풍에 편승해 1960년 두께 2.3mm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 12P를 생산했다. 이 획기적인 발명은 시계 시장에서 울트라 신 무브먼트의 강자로 거듭나게 했다.

1874년 스위스 쥐라산맥 산골마을서 시작
피아제 데코 팰리스 피니쉬의 18k 로즈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26mm 라임라이트 갈라 시계 사진출처:instagram piaget

1957년 피아제는 귀금속을 중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플래티넘과 골드를 사용한 시계만을 제작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당시 스포츠 시계의 실용성이 인기 있는 것과 대비되는 매우 이례적인 발표였다.

산골 쥐라산맥에 위치한 피아제는 자체적인 자원을 이용해 부품을 개발하며 오랫동안 자급자족을 이어나갔다. 이후 제네바로 옮긴 후 자체 골드 주조 시설과 금세공 장인, 스톤 커팅 장인, 인그레이빙 장인 등을 두루 영입했다. 1959년 6월 제네바에 첫 부티크를 오픈한 피아제는 하이 주얼리 작품을 선보였고 비대칭 디자인과 다양한 커팅의 스톤이 조화를 이루는 시계를 판매했다.

이곳에서는 하이 워치메이킹 및 하이 주얼리 부문에서 독창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살롱 피아제로 알려졌던 부티크는 ‘피아제 올로제리 주얼리(Piaget Horlogers Joailliers) 피아제 워치메이커 주얼리’라는 명판을 통해 피아제의 핵심을 완벽히 표현했다.

창업자의 손자 발렌틴은 1960년대 말 피아제만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주얼리 디자이너들에게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것을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또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파리의 최신 패션쇼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줬다. 1960년대 전 세계에 유행했던 해방과 현대성이라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탁월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1969년에 만들어진 피아제 스위닝 소투아르(piaget swinging sautoir·사진①)는 목걸이뿐만 아니라 변형이 가능해 손목에 착용할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제작한 금체인은 11.68cts의 흰색 오팔 카보천에 싸여 있다. 희귀한 에메랄드 컷 노란색 사파이어 아래에 금, 다이아몬드 테슬이 장식되어 있다. 1960년대 피아제의 독창성과 대담함이 눈부신 활약을 펼친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피아제 라임라이트 갈라 하이 쥬얼리 시계 사진 출처 ; instagram piaget

탁월한 금세공, 황홀한 주얼리로 승화

1969년 ‘바젤 페어(Basel Fair)’에서 선보인 21세기 컬렉션을 통해 피아제는 워치 메이킹과 하이 주얼리가 완벽히 결합된 모던한 주얼리 시계를 선보였다. 컬렉션을 빛낸 주인공은 바로 골드였다. 피아제는 소재의 화려함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금세공 기술을 활용해 시계를 황홀한 주얼리로 승화시키며 골드가 지닌 생명력과 따스함, 매력적인 감촉과 관능미를 강조했다.

이처럼 면밀한 탐구 끝에 탄생한 21세기 컬렉션의 드라마틱한 시계들은 언론으로부터 ‘세계적인 엘리트들의 시계’라는 찬사를 받았다. 21세기 컬렉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대담하리만큼 넓은 너비의 브레이슬릿과 질감을 살린 인그레이빙 장식이었다. 피아제의 가장 특징적인 금세공 기법인 데코 팰리스(Decor Palace)는 1961년 기요세 인그레이빙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피아제의 시계와 주얼리를 완성하는 데코 팰리스는 피아제에서 가장 사랑받는 특별한 기법 중 하나이다. 나무껍질, 얼음 결정, 뱀 비늘, 은은하게 빛나는 스위스 호수의 수면, 물결치는 듯한 실크 리본 모양이 모두 데코 팰리스 금세공을 통해 표현되었다.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금의 황홀한 매력에 매혹되곤 했다. 살바도르 달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연금술과 골드 주화 메달에 관심이 많았다. 1960년대 후반 그는 자신과 아내 갈라(Gala)의 옆모습을 조각한 다양한 무게의 주화 시리즈 ‘달리 도르(Dali D’Or)’를 제작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예술가 모임에 합류한 제라드 피아제의 아들 이브 피아제는 시계 엔지니어링과 보석학을 공부했고 혁신적인 제품이 현대 예술 작품과도 같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피아제는 예술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1967년 달리와 협업을 통해 달리 도르 주화가 장식된 특별한 시계 및 주얼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피아제 달리 도르 컬렉션은 뮤리스 호텔에서 공개됐다. 달리는 투명한 왕좌에 앉아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해 큰 환호를 받았다. 예술과 수작업 디자인에 열정을 갖고 있던 이브 피아제는 “피아제는 시계를 생산하지 않습니다. 피아제는 시계를 창조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참고 자료: 피아제닷컴, instagram piaget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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