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가구 1위 내줬다...'한샘 제국'의 몰락[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마포구 상담 DMC 소재 한샘 사옥 모습 사진=한샘

‘가구’ 하면 ‘한샘’이라는 법칙이 깨지고 있다. 국내 대표 가구회사로서 명성을 다져온 한샘이 올 들어 현대리바트에 업계 1위 자리를 뺏겼다.

관련 업계에선 최근 한샘의 내부 인력 이탈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사모펀드인 IMM PE(프라이빗 에쿼티)에서 한샘을 인수한 이후 주요 임직원들이 경쟁사로 대거 이직하면서 한샘의 제품력, 영업력이 약화했지만 경쟁사들은 성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샘과 달리 호각을 다투는 대형 경쟁사들의 실적은 성장하는 추세다.

경쟁사 대비 B2C(가구 판매 등 소비자 대상 거래) 비중이 높은 한샘이 최근 시장과 경기 변화에 더 큰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호황을 누렸던 가구·리모델링 시장은 엔데믹과 함께 침체에 들어섰다. 소비자들이 외부활동을 시작하면서 집에 관한 관심이 준 데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등이 겹쳐 가구시장 침체를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에 경쟁력이 확고했던 B2C 시장에서조차 경쟁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가운데 최근 몇 년간 타격을 입은 브랜드 가치와 영업망을 제고하기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 주인 바뀌자 핵심 인력 이탈
대규모 빌트인(Built-in) 시장을 움직이는 아파트 시공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한샘에 대해 “주인이 바뀐 후 내부가 와해됐다”고 평가한다.

2021년 한샘 창업주 조창걸 명예회장은 자신과 특수관계인 지분(30.21%)을 약 1조5000억원에 IMM PE에 매각했다. 롯데쇼핑은 3000억원을 투자하며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했다. 국내에 최초로 입식 주방을 도입한 뒤 아파트가 주거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대세’로 성장한 한샘의 주인이 창사 51년 만에 처음 바뀐 것이다.

한샘은 매각 전까지 오너가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25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2014년에는 이케아가 국내에 진출하는 등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도 필요했다.

그러나 가구·리모델링 업계에선 인수합병(M&A) 직후 내부 조직 및 사정 변화 등으로 인해 한샘의 핵심 임직원들이 처우가 좋은 경쟁사로 대거 이동했다는 설명이다. 한샘은 업계에서 ‘이름값 대비 연봉이 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한샘 1인당 평균 급여는 5200만원, 경쟁사인 현대리바트 영업관리직 연봉은 6300만원이다.

2020년 말 기준 2471명이었던 한샘 직원 수는 올해 상반기 2109명으로 줄었다. 사후서비스(AS) 등을 담당하는 기술직은 자회사인 한샘개발 등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제품개발과 매출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관리·연구직, 영업직 인력 또한 두루 감소했다.

한샘 관계자는 “우수한 내부 인력들을 적재적소에 중용해 인재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인력을 줄이지 않는다”면서 “2021년 대비 감소인원 중 상당수는 고객 서비스 강화 및 시공 전문성 강화를 위해 계열사로 전출한 인원이며, 나머지 감소인원은 전체 인원의 3% 정도 수준으로 불경기로 인한 채용 축소 및 퇴사에 의한 자연 감소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일부 지역에선 영업망 문제로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인 아파트 현장의 빌트인 가구 수주가 대폭 줄었다는 평가다. 한 내장재 시공 관계자는 “회사가 팔린 이후 직원 다수가 이직했다고 들었다”며 “실제로 최근 몇 년 새 경쟁사들이 들어간 현장이 많은 걸 보면 영업망이나 제품 경쟁력이 타격을 입은 것 같다”고 말했다. CS 이슈에 브랜드 타격
‘한샘’ 브랜드의 명성도 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따금 품질 문제가 불거졌으나 수십 년간 다져온 브랜드 가치와 노하우, 전문경영인인 최양하 전 회장이 추진한 ‘디자인 경영’ 전략이 어우러져 대중적인 호감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리모델링 시장에서 하자보수 문제로 부정적 뉴스가 지속 노출된 데다 개인 브랜드나 경쟁사의 ‘디자인 상향 평준화’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이제는 “꼭 한샘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사이 현대리바트와 섀시, 마루, 장판 등 건자재를 전문으로 공급하던 LX하우시스 등도 리모델링 시장에 진출하며 한샘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홈쇼핑·온라인 채널 마케팅, 관계사와의 시너지를 통해 고객을 늘리고 있다.

이는 B2C뿐 아니라 B2B 시장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재건축, 재개발 사업의 경우 조합에서 입찰해 빌트인 가구 업체를 정하는데 한샘이 예전만큼 경쟁력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 역시 “현장에서 높은 단가로 입찰을 하면 대형 가구업체인 한샘과 현대리바트, 에넥스 등이 가격과 제품력으로 경쟁을 하게 된다”며 “최근 한샘 제품력이나 선호도를 봤을 때 건설사들도 굳이 한샘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B2C도 예전만 못해

실제로 한샘은 2021년 M&A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공급망 효율화 등 비용 절감을 통해 지난해 19억원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전반적인 외형은 움츠러드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한샘은 전년 동기(9840억원) 대비 감소한 9636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리바트 매출은 7688억원에서 1조17억원으로 성장했다.

한샘은 현재의 매출 부진이 주택경기 침체에 따른 결과라고 보고 있다. B2C 비중이 높은 자사의 사업구조로 인해 경기를 타게 됐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샘의 B2C와 B2B 비중은 각각 54.8%, 45.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B2C 부문에서조차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대리바트는 1분기 대비 2분기 B2C와 B2B 양쪽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었다. 2분기는 웨딩시즌 영향으로 통상 장롱, 침대, 소파 등 가구 매출이 증가한다. 올해 들어 주택매매 거래 건수가 늘면서 가구 수요도 증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리바트의 2분기 B2C 매출은 1612억원으로 1분기 823억원의 2배가량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한샘의 B2C 매출은 17억원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자체 온라인몰 구축에 힘쓴 현대리바트와 달리 ‘티메프 사태’에 얽히면서 대손충당금 46억원도 손실로 남았다.

최근 한샘은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고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상암 사옥을 그래비티자산운용에 ‘세일 앤 리스백’ 형태로 3200억원에 매각했다. 회사의 큰 자산을 처분한 만큼 쓰임이 중요할 전망이다. 한 리모델링 업계 관계자는 “한샘만의 브랜드 가치와 본원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근본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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