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고려아연, 동지에서 원수로…협업과 분쟁의 75년史 ①

[비즈니스 포커스]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중앙)와 장형진 영풍 고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등 장씨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 사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양사 간 인적교류가 활발하던 시기로 추정된다. 이 사진은 영풍 홈페이지 내 영풍 역사에 소개돼 있다. 사진=영풍 홈페이지



비철금속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최대주주 영풍이 사모펀드 운용사(PEF)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에 나섰다.

반대편에서는 고려아연의 중국 등 해외 매각에 따른 핵심 기술 및 경쟁력 유출, 국가기간산업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풍 장형진 고문 일가와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일가는 선대부터 이어온 공동경영 정신을 상대방이 먼저 파기했다고 겨누고 있다.

75년간 끈끈한 동업정신으로 고려아연을 비철금속 제련업 세계 1위로 키운 영풍 장 씨 일가와 고려아연 최 씨 일가는 왜 결별을 결심했을까. 두 집안의 협업과 분쟁 스토리를 정리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그룹 사옥 1층에 나란히 세워져 있던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 흉상. 고려아연이 종로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현재 영풍 사옥에는 장병희 창업주 흉상만 남아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고려아연의 탄생

고려아연은 비철금속계 절대강자다. 재계 26위 영풍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1974년 설립돼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연간 120만 톤 규모의 아연, 연, 금, 은, 동을 비롯한 10여 종의 비철금속을 생산하는 세계 1위 제련기업이다.

제련사업을 친환경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2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자원순환 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추진 중이다. 신사업을 이끄는 건 3세 최윤범 회장이다. 최 회장은 최기호 창업주의 세 아들인 최창걸·창영·창근 명예회장에 이어 고려아연을 이끌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파악하려면 영풍그룹의 탄생부터 살펴봐야 한다. 영풍그룹은 1949년 황해도 출신의 동향인 장병희(1909~2002) 창업주와 최기호(1908~1980) 창업주가 동업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모태다.

해방 이후 월남한 두 사람은 서울 남대문 일대에서 전기기구와 농기계, 발전기 등을 각각 판매했다. 그러던 중 같은 고향, 비슷한 나이, 사업가라는 공통분모로 금세 친해져 수산물 수출회사인 영풍기업사를 공동 창업했다. 영풍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발맞춰 1970년 아연 광산이 있던 경북 봉화군 석포리에 석포제련소를 세워 비철금속 제련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제련기업인 도호아연으로부터 노하우를 지원받는 형태로 사업모델을 구상했지만 일본 측이 기술이전을 꺼려했다. 장병희·최기호 창업자가 대한해협을 오가며 “제련소로 성공하더라도 고객을 뺏지 않겠다”고 약속해 도호아연 임원들을 설득한 끝에 기술 자문을 얻게 됐다.

이후 박정희 정부가 경남 울산의 온산면에 대규모 비철금속 단지를 조성하려고 하면서 사업 확장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석포제련소는 아연 광산이 근처에 있고 낙동강 최상류에 위치해 아연 정광과 제련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받기 용이한 최적의 입지였다.

하지만 환경 관련 법령에 따라 석포제련소 일대가 청정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온산제련소에 비해 사업 확장에 제약이 커졌다. 영풍은 온산에 ‘제2 제련소’를 지어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고려아연을 별도로 설립했다.

온산제련소는 부가가치가 크지만 중금속 오염도가 아연보다 높아 석포제련소가 취급하지 못했던 납 제련이 가능해 아연뿐 아니라 전기동, 인듐, 금, 은 등을 생산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영풍 경영은 장 씨가, 고려아연 경영은 최 씨 가문이 각각 맡았지만 창업 2세대까지는 공동경영체제를 큰 탈 없이 유지했다. 팀제가 생기기 전까지 공동영업과 인사교류를 하며 부서별로 부장급은 고려아연이, 과장급은 영풍이 맡는 식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당시 영풍과 고려아연은 영풍의 지분을 20% 중반으로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 최 씨 일가가 모종의 이유로 갖고 있던 영풍의 지분을 팔기 시작했고, 반대로 장 씨 측은 사들이면서 양측의 지분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 씨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고려아연도 장 씨 일가 지분이 늘며 장씨 일가가 최대주주가 됐다. 최 씨 가문이 장 씨 가문보다 후손이 많다는 점도 두 가문의 지분 격차가 생긴 원인 중 하나다.

장병희 창업자는 2남 2녀를 두고 아들 2명에게 일찌감치 승계를 마쳤고, 최기호 창업자는 6남 3녀를 뒀는데 큰아들이 일찍 세상을 떴고 이 중 아들 4명이 경영에 참여했다. 형제경영, 사촌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지분을 골고루 나눠 갖게 된 것이다.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2013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영풍빌딩 회의실에서 정기 이사회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영풍


끈끈했던 장 씨·최 씨 왜 갈라졌나

“무슨 일이 벌어지면 최기호 회장한테 가서 얘기해라.”

장형진 고문은 부친인 장병희 창업주로부터 이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장 고문이 최근 한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2세대까지는 두 가문의 교류와 소통이 활발했다면서 밝힌 내용이다. 1990년대 들어 시작된 2세대 경영에선 장형진 고문이 영풍을, 최창걸 명예회장이 고려아연 경영을 맡았다.

두 사람은 창업자인 아버지들을 통해 어릴 적부터 동업을 보고 자랐고 사업적 교류도 활발했으며 사이가 좋았다고 전해진다. 서로 의견이 부딪힐 땐 나이가 5살 더 많은 최창걸 명예회장이 양 집안을 중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세대에 와서는 유대관계를 쌓을 기회가 없었다. 3세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대표 모두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돌아와 친분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창업세대를 거쳐 2세에서 3세로 경영권이 넘어가며 나이와 경영 스타일 차이로 인해 소통도 점점 어려워졌다.

2세대인 장 고문은 1946년생으로 올해 78세, 3세대인 최 회장은 1975년생 49세로 두 사람은 29살 차이다. 자라온 환경과 시대가 다른 만큼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시대도 변화했다. 제련업에 대한 환경 규제 등이 강화됐고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ESG 요구도 지속적으로 증대됐다. 제련산업도 ESG 요구 사항에 대응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 전환과 친환경적인 미래 먹거리 발굴의 필요성이 커졌다.

최윤범 회장이 취임한 2022년부터 고려아연은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친환경 에너지가 주축인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최 회장이 신사업 투자를 위해 대규모 차입금을 들여오자 그간 무차입경영 기조를 갖고 있던 장 고문 측은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는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가문의 갈등을 단순한 감정싸움으로 봐선 안 된다. 75년간 이어진 두 가문의 동맹 관계가 3세대에 들어 여러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져 버렸다.

재계 관계자는 “피를 나눈 형제들도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데 남남인 장 씨와 최 씨의 동업 관계가 계속될 거라 생각하는 건 비현실적”이라며 “3세 경영을 시작하기 전 양측 일가가 ‘아름다운 이별(분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준비했어야 했다. 결국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두 집안이 협의를 통해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했다.

영풍 측 감정이 상한 계기는 고려아연이 대기업들과 진행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맞교환이었다. 이 일로 영풍이 갖고 있던 지분가치가 희석됐다. 고려아연은 현대차그룹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을 비롯해 한화그룹 계열사, LG화학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우호지분을 늘렸다. 이로 인해 최대주주인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2021년 말 27.49%에서 현재 25.4%로 낮아졌다.

장 고문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최 회장과 갈등이 커진 계기로 최 회장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상호교환을 언급했다. 최 회장이 외부 자본을 끌어들이며 자기 세력을 넓히는 동안 자신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 고문은 “고려아연이 한화, 현대차 등과 신주 발행, 지분 교환을 진행하는데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반대했다.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했을 때도 반대했다. 전부 다 반대했는데 몰아붙였다”며 “그 얘긴 결국 ‘나 당신이랑 안 하겠소’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장 고문은 “최 회장이 취임한 이후 2년 동안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외로웠다”고도 했다.


2편에서 계속.


[기사 인덱스]
영풍·고려아연, 동지에서 원수로…협업과 분쟁의 75년史 ①
‘깨진 우정’ 영풍·고려아연, 지분 희석·ESG 리스크 우려에 폭발 ②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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