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은 배임' MBK 반발에 고려아연 "적법한 경영권 방어수단"
입력 2024-10-02 11:51:44
수정 2024-10-02 12:56:59
법원이 2일 공개매수 기간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을 막아달라는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고려아연의 반격이 시작됐다.
고려아연은 4일부터 자사주 공개매수 방식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설 전망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김상훈 부장판사)는 영풍 측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 결정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고려아연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거론된 대항 공개매수와 자사주 매입을 병행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영풍과 사모펀드(PEF) 운영사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서겠다며 공개매수 기간(9월 13일~10월 4일) 동안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도록 해 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자본시장법 제140조에 따르면 공개매수자와 그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기간 공개매수 대상 회사의 주식을 공개매수 외의 방식으로 매수할 수 없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영풍에 속한 계열사인 특별관계인으로 자사주 매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영풍 측의 경영권 인수 시도를 "적대적·약탈적 인수합병(M&A)"이라고 규정하며, 더는 영풍의 특별관계인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 매수 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해왔다.
고려아연 "공개매수 취득 자사주 전량 소각"…최윤범, 기자회견서 대응 계획 발표
이날 법원이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고려아연은 즉시 이사회를 열고 공개매수를 통한 자사주 취득 및 취득한 자사주에 대한 소각 등을 의결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은 80만원대가 될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은 최근 기업어음(CP) 발행으로 4000억원을 마련하는 등 자사주 매입을 위한 '실탄'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원 결정에 대해 고려아연은 "고려아연 경영진과 이사회가 적대적 M&A 상황에서 자사주 취득을 위한 일련의 행위들을 실행하는 것이 법에서 허용하는 합법적인 행위임을 명확히 해준 결정"이라며 "법원의 현명한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법원의 결정에 의해 MBK와 영풍 측의 공개매수 기간 중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림에 따라, 이날 이사회 결의를 통해 공개매수를 통한 자기주식 취득 및 취득한 자기주식에 대한 소각 결정을 했다"며 "이를 통해 단기 차익과 수익률 극대화만을 노리는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은 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이 법령에 의거했고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안임을 일부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했다.
고려아연은 "자기주식 취득은 제3자배정 신주발행이나 우호 주주에 대한 자기주식 처분 등과 달리 다른 주주의 이익을 해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회사의 재산을 주주에게 반환하는 것으로서 배당과 다르지 않다"며 "주주 사이 부의 이전의 불공정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주주가치가 제고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고려아연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부 타당성이 있음을 인정받은 결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사회의 자사주 매입 결정이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영풍·MBK파트너스 측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매입 시 시가보다 높게 자기주식취득 가격을 정하더라도 회사의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행위인 만큼 배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며 "영풍 측은 (자사주 매입이) 자본시장법 제176조 시세조정행위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고려아연의 이사들의 행위가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2일 오후 3시 서울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영풍·MBK파트너스 측과의 경영권 분쟁 이후 처음으로 향후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계획 등을 언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영풍,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중지 가처분 신청…"배임 행위"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배임 등 법 위반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법원 결정 직후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 목적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 결의가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해하는 배임행위로 관련 절차의 진행을 중지시켜 달라는 취지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가처분 기각 판결 직후 낸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이 영풍의 특수관계인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이 금지돼야 한다는 영풍 측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하지만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공개매수는 정상 주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배임이므로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이 사건 분쟁의 당사자는 MBK·영풍과 현 경영진인 최윤범 회장일 뿐이고, 고려아연은 분쟁의 당사자도 아니므로 분쟁의 일방 당사자인 최윤범 회장을 위해 회사 자금을 사용해 자기주식을 취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고려아연 실제 시가는 주당 금 50만원 정도인데, 현재 70만원 수준까지 올라와 있는 고려아연 주식의 주가를 고려할 때 자기주식을 취득할 이유가 없다"며 "이러한 주식을 고려아연이 주당 금 80만원에 취득하는 경우 그 즉시 주당 금 30만원가량의 손해를 입게 되며 이러한 의사결정을 한 고려아연 이사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