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없이 안 돌아가" 조선소·제조업 채우는데 "쉬었다" 청년 사상 최대[외국인 300만 시대①]
입력 2024-10-07 06:49:01
수정 2024-10-07 06:49:01
외국인 체류자 260만
"쉬었다"는 2030 75만명
지난해 외국인 취업자는 92만명
외국인 300만 시대, 5가지 딜레마
“여기 한국 맞아?”
수원역 지하상가에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이다. 지하상가에 모여 있는 휴대폰 매장은 20여 개. 이 중 한국인만 상대하는 매장은 단 한 곳이다.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직원을 두고 외국인 손님을 상대로 장사한다.
한때 내국인들에게 휴대폰 성지(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는 곳)로 불리던 이곳은 이제 한국인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훨씬 많이 찾는 곳이 됐다. 단골 손님은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수원과 인근 도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수원역 지하상가 내 휴대폰 매장 직원은 “한국인은 온라인이나 자급제 등 다양한 옵션이 생겨 이곳을 찾지 않는다”며 “인근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외국인 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돈이 된다”고 말했다. 수원역은 1호선과 수인분당선, ITX, KTX, 무궁화호 등 다양한 노선이 지난다. 수원시에 거주하는 외국인 3만6000명뿐만 아니라 인근 안산시(5만2000명), 화성시(4만7000명)에 거주하는 외국인 역시 그들의 소비자다.
'다문화 국가' 기준 5% 넘어선 한국
제조업 일자리가 모여 있는 수원역의 풍경은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은 2024년 6월 국내 체류 외국인이 260만 명을 찍었다. 이민자와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를 합한 숫자다. OECD ‘다인종·다문화 국가’의 기준인 총인구의 5%를 넘어섰다. 말 그대로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2024년 8월 제조업의 고용보험 상시가입자 중 외국인은 작년 8월 대비 4만1000명 늘었다. 반면 제조업 고용보험의 내국인 가입자는 3000명 줄었다. 숫자만 보면 외국인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외국인이 차지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한국인이 기피하는 ‘저임금·저숙련’ 일자리다. 임금과 처우는 낮은데 노동 강도는 높아 일할 사람이 없는 직종이 대부분이다.
일각에서는 돈을 더주고 업무 환경을 개선해 내국인을 채용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언뜻 들으면 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청년들의 대학 졸업률이 OECD 1위이고 몸 쓰는 일에 대한 편견이 있는 한국에서 ‘3D 직종’으로 불리는 직종에 취업하라고 등 떠밀 수는 없다.
언제 도산해도 이상하지 않은 한계기업만 17.4%인 중소기업의 형편도 녹록지 않다. 이 회사들은 그동안 한국 노동력의 공백을 외국인 인력으로 메꾸며 버텨왔다. 전문가들은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에서 이민자와 외국인 근로자는 사회를 지탱할 필요조건이라고 전제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민과 외국인 근로자를 둘러싼 딜레마가 존재한다. 질문 1. 실업자 늘어나는데 일할 사람은 없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여론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한국인을 쓰면 되지 왜 외국인을 고용하냐”는 논리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고 취업이 어려울 땐 이런 논리에 더 힘이 실린다.
최근 고용시장은 한파를 맞았다. 올해 8월 일할 의사가 없는 비경제활동 인구는 1600만 명(취업도 실업도 아닌 상태). 이 중 전업주부나 학생이 아닌데 이유 없이 “그냥 쉬었다”고 답한 인구가 256만7000명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대와 30대 중 ‘그냥 쉰’ 인구는 74만7000명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보다도 ‘그냥 쉰’ 청년이 많았다.
고스펙, 고학력자는 많은데 대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한 영향이다. 지난해 한국의 만 25~64세 성인 중 대졸 이상 학력자는 54.5%였다. 청년인 만 25~34세의 경우 69.7%로 OECD 국가 중 1위였다.
이런 사람들이 널려 있지만 정작 산업계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곳들이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9곳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구인난을 절실히 느낀다고 답했다. 한국고용정보원 최근 조사에서는 중소기업이 느끼는 청년 구인난이 2년 전보다 더 악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체가, 기업 규모별로 보면 상시 근로자 10∼19인의 소규모 기업이 느낀 어려움이 가장 컸다. 중소 제조업 기피현상이다.
이들의 돌파구는 외국인 근로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취업자는 총 92만 명이었다. 취업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비중은 200만~300만원 미만이 50.6%로 가장 많았다. 외국인 근로자는 비전문 취업비자(E-9)와 방문취업비자(H-2) 등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인력이 가장 많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중소기업이 먼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청하면 정부가 비자를 발급해주는 제도다.
올해만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외국인은 16만5000명이다. 중소기업이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정부에 요청한 숫자다. 이들 중 90%는 제조업이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규모는 2022년 6만9000명에서 올해 16만5000명으로 2년 만에 1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중소기업 구인난이 그만큼 심각해진 것이다. 이마저도 채우기 어려운 현실이다. 올해 중소기업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16만5000명 중 7월까지 비자를 발급받은 인력은 17.7%에 불과했다.
외국인 근로허가제로 입국한 이들에게는 정주화 방지 원칙이 적용된다. 단순기능직에 종사하는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가 장기간 체류하면서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단기 순환방식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장기체류 시 영주권 부여 문제를 비롯해 결혼, 출산, 자녀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들의 체류기간은 4년10개월에서 지난해 10년으로 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어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고 성실하게 일한 근로자들은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들이 나가면 또다시 단기 고용 외국인을 데려와 업무 숙련을 시키고 문화에 적응하는 기간 동안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력지원실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임금이나 처우를 올려준다고 해서 청년들이 가지 않는다”며 “현실적으로 고용주도 말이 잘 통하는 내국인을 채용하고 싶지만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 청년들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질문 2. 조선소·건설현장에는 왜 외국인이 많을까
10년 만에 호황을 맞은 조선업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조선업 슈퍼사이클로 3년 치 일감을 확보했지만 전문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조선업계 인력부족이 올해부터 연평균 1만2000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2027년부터는 13만 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수주 잭팟’이 이어지고 있지만 10년 전 떠난 숙련공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종사자 수는 9만3038명으로 10년 전(20만3400여 명)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 수준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장기간에 걸친 조선업 불황으로 조선 생산현장의 숙련 인력들이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 등 다른 산업으로 이탈했다”며 “최근 수주 증가와 건조 물량 증가로 조선 경기가 다소 회복됐으나 청년층의 제조업 기피현상 심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조선업으로의 신규 인력 유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이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인력 부족은 한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위험 요인이었다.
이 자리를 외국인이 메꿨다. 국내 조선업 인력의 16%는 외국인으로 채워졌다. 특정활동(E-7)과 비전문취업(E-9) 비자를 가진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정활동(E7) 체류자격 소지자는 해당 직종에 부합하는 용접, 도장, 전기, 플랜트 등 전문 분야 작업을 수행하고 비전문취업(E-9) 소지자는 그 외 조선업 내 각종 공정에 필요한 업무들을 수행한다. 대부분 조선 3사의 협력사 직원이다.
‘조선 1번지’ 거제와 울산에 외국인 인력이 채워지면서 기업들도 이들을 수용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선소에는 각국 언어로 번역된 안전 안내문이 부착돼 있고 HD현대중공업 사내 협력사에서는 지난해 최초로 외국인 현장 반장이 탄생했다. ‘터치업’(붓 도장) 업무를 담당하는 스리랑카 출신의 쿠마라(34) 씨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국인 9명과 외국인 19명으로 구성된 작업반을 이끌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쿠마라 씨는 도장 업무에 대한 이해력이 높고 한국어 자격(사회통합프로그램)도 최고 등급인 5등급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책임감 있는 모습에 동료들의 신임까지 얻고 있어 외국인 1호 현장 반장으로 선임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짧은 기간 교육을 받고 생산 현장에 투입되다 보니 숙련공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의 적응을 돕고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생산 현장 내 맞춤형 인력 양성을 위해 올해 2월 지상 4층, 연면적 3915㎡ 규모로 도장교육실, 용접교육실습실 등 협력사 근로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최신 직무교육시설의 ‘뿌리아카데미’를 열었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해당 시설에서 직무교육을 받고 있다. 현장 소통을 돕기 위해 30여 명의 전문 통·번역사를 고용하고 언어 학습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조선소가 돌아가지 않는 만큼 이들의 생산성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건설업 역시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현장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해 말 발간한 ‘건설근로자 수급실태 및 훈련수요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무려 43만6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30만 명은 불법체류자다.
그런데 이들이 없으면 핵심 공정을 할 사람이 없다. 내국인은 건설업 주요 6개 직종 중 ‘보통인부’에 해당하는 업무를 맡는 반면 형틀목공, 철근공 등 핵심 공정에 해당하는 분야는 외국인이 주도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형틀목공, 철근공은 업무 강도가 높고 힘들어서 내국인들이 꺼리는 공정이라 건축현장의 70%, 토목현장의 30%가 외국인으로 이뤄진다”며 “공사비가 한정된 상황에서 내국인 숙련공은 단가가 비싸고 청년들은 힘든 공정에 지원하지 않으니 외국인 없이는 현장이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 이수도 제대로 하지 않은 불법 체류자의 비중이 높아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차희성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외국인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데 의사소통까지 안 되다 보니 철근 누락, 부실시공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일본과 영국처럼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건설 현장 노동자의 취업 이력, 자격증, 경험 등을 등급화해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을 활성화해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