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와 이복현 [하영춘 칼럼]


역대 금융감독원장 중 존재감 최고는 단연 초대 이헌재 원장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금감원장을 맡아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치밀함을 바탕으로 얽히고설킨 구조조정을 무난하게 처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이헌재 전 원장에 견줄 만한 금감원장이 나타났다. 이복현 원장이다. 금감원 내에선 ‘복 사장’으로 불리는 이 원장의 존재감은 놀랍다. 웬만한 금융계 사람치고 금융위원장이 누군지 몰라도 이 원장은 알 정도다. 일부에서는 이헌재 전 원장을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존재감이 남다른 두 사람이지만 닮은 점은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성취하는 놀라운 추진력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다는 점, 언론을 적절히 활용한다는 점 정도다. 성장 배경은 물론 말투, 화법, 일하는 스타일 등은 정반대다.

이헌재 전 원장은 천재형답게 말투가 어눌하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회의에 참석했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그의 말뜻을 해독하기 위해 따로 모였다는 후문도 있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후에 ‘이헌재 사단’으로 불렸다)을 앞세우고 자신은 잘 나서지 않았다. 관료 출신으로 시장을 경험한 노회함이 묻어났다.

이복현 원장은 정반대다. 직설적이다. 대부분 현안에 대해 속전속결식 답을 내놓는다. 특수통 검사 출신이자 공인회계사답게 사안을 꿰뚫는 시각이 탁월하다. 잘잘못을 가리는 데는 더 뛰어나다. 전문가들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본인이 직접 나서 ‘옳다, 그르다’ 식으로 가르마를 타준다. 이를 바탕으로 레고랜드 사태, 태영건설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카카오 시세조종,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추진, 우리금융 부당대출 등 현안들을 발빠르게 수습해왔다.

두 사람이 가장 다른 점은 시장을 보는 시각인 듯하다. 이헌재 원장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특정 기업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한 언론이 단독 보도했다. 시장이 움찔했고 증시가 요동쳤다. 이 원장은 곧바로 기자들 앞에 섰다. “검토한 적은 있지만 없던 것으로 했던 방안”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담당자를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 시장은 곧바로 안정됐다.

몇 년 지난 뒤 혼찌검이 났던 담당자는 “내부적으로 확정한 뒤 시장반응을 떠보기 위해 언론에 흘렸던 사안이다. 시장이 움츠러드니 없던 걸로 한 거다. 그때는 수시로 그랬다”고 말했다. 속된 말로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는 거다. 이 전 원장은 그만큼 시장을 중시했다. 계속해서 시장반응을 보고 시장이 무너질라 치면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 방안도 수정했다.

이복현 원장은 다르다. 시장을 모르는지 무시하는 건지 그의 안중엔 없는 것 같다. 최근 빚어진 가계대출과 관련된 혼란이 대표적이다. 은행들은 7월부터 9월까지 가계대출과 관련해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20차례 이상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높였다가 다시 내리고, 대출 대상을 제한했다가 완화하기도 했다. 원인 제공자는 금감원, 구체적으로 이 원장이었다. “대출금리를 올리라”고 했다가 “금리인상은 잘못”이라고 했다. “일률적으로 대출을 금지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시장과 실수요자들은 당혹했다. 천하의 이 원장도 결국 사과해야 했다.

그의 사과가 시장의 중요성과 무서움을 깨달았다는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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