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전 돌입' 고려아연 1.5조 실탄 장전…MBK "대규모 차입 의존"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약 2조70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자사주) 공개 매수에 나선 가운데 우선 1조5000억원의 회사 내부 현금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연합과의 지분 확보전이 한층 가열될 가능성에 대비해 금융권 대출 한도와 사모사채(회사채) 발행까지 최소 1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대응 여력을 확보한 상태다.

대출 1.7조·회사채 1조 등 단기차입 2.7조,
1.5조 추가대응 여력 평가

4일 전자공시시스템에 고려아연이 공시한 공개매수 설명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2조6635억원의 자사주 매집을 위해 자기 자금 1조5000억원을, 차입금 1조1635억원을 투입한다.

자사주 매수 발표에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2일 1조원 규모 회사채 발행, 1조7000억원 한도 금융기관 차입 등 총 2조7000억원 규모의 단기 차입 확대 계획을 공시한 바 있다.

이 금액이 자사주 취득 규모와 일치하면서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이 전량 차입금을 활용해 자사주 매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는 단기 차입 증가분의 일부만 투입한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 매수에 투입하는 차입금은 은행권에서 긴급하게 설정한 1조7000억원 한도 대출 중 일부다.

고려아연은 하나은행과 SC제일은행에서 한도 안에서 최장 인출일로부터 1년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대출을 받았다. 조건은 각각 최소 고정금리 5.5%, 최초 변동금리 4.67%다. 매입 대상 주식 대상 1순위 질권이 설정된다.

따라서 고려아연은 이번 자사주 매입 이후에도 추가로 이들 은행에서 5000여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메리츠증권을 대상으로 회사채 1조원을 발행해 긴급조달할 계획을 공식화한 상태다. 고려아연은 최근 '운영 자금 마련'을 명분으로 총 4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을 조달한 바 있다.

종합해보면 CP 조달 자금을 제외해도 고려아연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최근 늘린 단기 차입금 중에서도 최소 약 1조5000억원을 향후 경영권 방어에 추가로 투입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백기사'로 나서 고려아연 지분 약 2.5%를 공개 매수하려는 베인캐피탈의 투자 금액 4300억원도 활용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MBK 파트너스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영풍·MBK, 83만원 추가 인상 '맞불'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이날 오후 고려아연의 대항 공개매수에 맞서 기존 75만원에 83만원으로 공개매수 가격을 추가로 인상했다.

공개매수 청약 수량이 발행주식총수의 약 7%를 넘어야 사들이겠다고 한 조건도 삭제했다. 이번에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인상한 가격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과 동일하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위법성이 다분한 최윤범 회장의 자사주 공개매수로 인해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MBK와 영풍의 정당한 공개매수가 방해를 받았다"며 "자사주 공개매수가 배임 등 법적 리스크가 많고 회사와 남은 주주들에게 끼치는 재무적 피해가 크다는 점이 충분히 인식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 생각해 조건을 변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고려아연은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전체 발행주식의 18%인 372만6591주(약 3조1000억원)를 주당 83만원에 공개매수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초 내걸었던 최소 매입 수량(5.87%) 조건도 삭제했다.


사진=영풍정밀


고려아연, 연장전 대응 '현금 실탄' 장전…추가 인상카드 꺼낼듯

영풍·MBK파트너스의 이번 공개매수 가격 추가 인상으로 고려아연·베인캐피탈 연합도 현재 83만원에서 추가 인상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측의 매수 조건이 동일해지면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장기전에 접어든 만큼 시장에서는 고려아연 측이 이에 대비해 추가로 현금 실탄을 동원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을 갖춘 상황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승부처로 지목되는 영풍정밀에 대한 양측의 경영권 분쟁도 치열하다.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영풍정밀은 영풍그룹 계열사지만 최 씨(고려아연) 일가의 보유 지분이 장 씨(영풍)보다 많다. 현재 최창규 회장이 영풍정밀 경영을 맡고 있다.

지난 9월 13일 MBK파트너스는 영풍정밀에 대해 공개매수가 2만원을 제시한 데 이어 9월 26일 2만5000원으로 매수가를 한 차례 올렸다. 이후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주당 3만원에 대항공개매수에 나서자 MBK파트너스도 최 회장과 같은 수준으로 매수가를 추가로 상향 조정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오는 7일 최 씨 일가가 출자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제리코파트너스에서 회의를 소집하고 영풍·MBK 연합에 대한 맞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고려아연뿐 아니라 영풍정밀에 대한 대항 매수가격 인상 여부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풍·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이 자기자금이라고 표현한 1조5000억원은 운전자금 명목으로 발행한 기업어음(CP) 4000억원과 메리츠증권을 대상으로 발행한 고금리 단기사채 1조원이 현금화돼 회사로 입금된 것이며, 여기에 기존 회사 보유 현금 중 1000억원을 보탠 것으로 파악된다"며 "고려아연이 대규모 단기 차입에 전적으로 의존해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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