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에도 꿋꿋한 전세가격, 앞으로 더 오른다[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상가에 전세 및 매매 시세가 붙어 있다. 사진=최혁 기자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 정부와 금융권이 돈줄을 조이면서 그 여파가 부동산 시장에 선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치솟던 매매가격에는 대출규제 조치가 즉각 반영되며 상승률이 줄었다. 반면 전세가격은 여전히 어느 정도 상승폭을 유지하며 임차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전세가 상승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상반기 신규 입주 물량이 줄었고 매매로 전환되지 못한 주거 수요가 전월세 시장에 남으며 공급 대비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가을 이사철을 맞은 계절적 요인과 주택담보대출 대비 헐거운 전세대출 요건도 작용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며 전세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통적인 주택시장 성수기인 봄과 가을 외에 새 학기 이사철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강남구 대치동과 양천구 목동 등 일명 학군지가 전세가 상승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매머드 단지인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등 입주장을 맞는 지역 외에는 오름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한번 전세 갱신권을 쓴 뒤 새로 임차 계약을 해야 하는 세입자들에게는 더욱 추운 겨울이 될 수 있다. 매매만 잡은 ‘대출 조이기’

10월 9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9월 5주 주간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9월 마지막 주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0.02% 올랐다. 전주에 0.4% 오른 것에 비하면 상승폭이 절반으로 꺾였다. 각각 0.09%, 0.12%를 기록했던 서울과 수도권 변동률도 이 주에는 0.06, 0.10%로 낮아졌다. 매매 상승폭이 둔화되고 있는 것이다.

9월부터 시행된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단 영향이 시장에 직접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의 대출규제는 소위 ‘영끌’을 통해 서울 등 수도권 핵심지역에 진입하려는 수요를 대폭 차단했다. 10월 들어서는 5대 시중은행의 가계부채가 감소추세로 전환되며 주택시장 역시 지금의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그러나 전세가격은 상승 흐름을 유지하는 분위기다. 9월 5주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0.05% 오르며 전주와 같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서울도 변동률 0.10%를 이어갔다. 수도권 전세가격은 0.11%에서 0.10%로 소폭 완만해진 한편, 지방은 –0.01%에서 0.00%로 보합 전환됐다.

임대차 시장은 매매보다 유동성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대신 입주물량 변동 등에 따른 수급의 영향이 큰 편이다.

올해는 상반기에 지난해 대비 입주 가구수가 줄었다. 직방 집계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상반기 입주물량은 5015가구에 불과해 지난해 같은 기간 1만3644가구 대비 8000가구 이상 줄었다. 이 같은 공급부족도 전세가격 상승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올해 하반기 입주 가구 수는 지난 상반기는 물론, 지난해 하반기 대비해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하반기 서울에선 지난해 같은 기간 1만6966가구보다 많은 1만8439가구가 입주한다. 그러나 이 물량의 3분의 2가량이 강동 1만2032가구 규모 ‘올림픽파크 포레온’에 집중돼 있는 것이 문제다.

이밖에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새 아파트 입주는 8월 1045가구 규모 북서울자이폴라리스(강북구 미아동)와 9월 1265가구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송파구 문정동)에 그쳤다. 수치보다 ‘체감’ 오름폭 클 것

일부 전문가들은 전세가격이 실제로는 가파르게 오르지는 않았다고 보고 있다. 매매가와 달리 2022년 하반기 금리인상 이후 떨어진 가격이 전고점에 닿지도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마포구 소재 ‘마포 프레스티지 자이’ 전용면적 84㎡ 타입 전세 실거래 가격은 2021년 12월 13억원까지 거래됐다가 최근 들어 12억원까지 회복됐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신축의 경우 최근 들어 전고점을 회복하는 분위기”라면서도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은 낡은 아파트는 여전히 재계약을 할 때 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실수요자들이 체감하는 전세가격 상승폭은 큰 편이다. 전세 임차인들 상당수가 2020년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첫 계약을 한 임차인들은 2년 거주 후 2년 계약 갱신을 한 뒤 4년 만에 그동안 오른 가격에 따라 신규 계약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때는 같은 시기 함께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에 따라 전세 가격을 5% 이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

강영훈 대표는 “실질적인 전세 계약기간이 4년이 된 상황에서 신규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세입자가 체감하는 요즘 전세가격은 높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올해 하반기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전월세 신고제)이 시행된 지 4년이 됐다”며 “이제 신규 전세계약을 해야 하는 실거주 수요가 주택시장에 다시 나오게 되는데 대출규제로 인해 이들이 매매수요로 전환되지 못하게 되면서 전세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새 학기 수요가 집중되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전세가격은 더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최근 몇 달간 신축 아파트 전세 시세가 집중적으로 상승했다면 겨울철에는 대치동, 목동 등 유명 학군으로 인기가 많은 지역 내 아파트 전세시장도 달아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는 입주물량도 대폭 감소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내년 전국 입주물량은 24만8713가구로 올해 35만5798가구 대비 10만 가구가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대중 교수는 “입주 예정 물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내년이 되면 예정보다 더 적은 가구수가 입주할 수 있다”며 “게다가 요즘 주택시장은 새 학기 수요가 몰리는 겨울철이 가장 성수기이므로 내년 2월까지 학군지를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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