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노동시장에 사라진 美 ‘추가 빅컷’ 기대…중동 긴장도 변수[글로벌 현장]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화면에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기자회견이 중계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이 9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을 단행한 이후 월가에선 11월 FOMC에서도 추가 빅컷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Fed는 당시 기준금리를 기존 연 5.25∼5.50%에서 연 4.75∼5.0%로 0.5%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 또 이날 발표한 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중간값)를 종전의 연 5.1%에서 연 4.4%로 낮췄다. 연내에 0.5%포인트 추가로 금리인하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는 최근 나온 미국의 9월 고용보고서로 인해 사그라들었다. 미국의 9월 신규 일자리 증가폭이 예상 수준을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인 긴장이 높아지면서 유가가 뛰었고 이로 인해 Fed가 당분간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자리 25만4000명 증가
미국 노동부는 10월 4일(현지 시간) 9월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25만4000명 늘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31만 명을 기록한 뒤 6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시장 예상치인 15만 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7~8월 고용 증가폭도 상향 조정됐다. 7월 고용 증가폭은 종전 8만9000명에서 14만4000명으로 5만5000명 늘었고 8월 고용 증가폭은 14만2000명에서 15만9000명으로 1만7000명 증가했다. 7∼8월 상향 조정 폭은 기존 발표치 대비 총 7만2000명이었다. 9월 실업률은 4.1%로 8월 4.2%보다 0.1%포인트 떨어졌고 전문가 예상치 4.2%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간당 평균임금 상승률은 전월 대비 0.4%, 전년 대비 4.0%로 시장 전망치(전월 대비 0.3%·전년 대비 3.8%)를 모두 웃돌았다.

9월 신규 일자리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외식업 부문에서 6만 9000명이 늘었다. 의료 부문은 재택 의료 서비스, 병원, 요양 및 거주 요양 시설에 힘입어 4만5000개의 일자리를 추가했다.

정부 주도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3만1000개 증가했다. 사회 지원 급여 일자리는 2만7000개 추가됐으며 건설업 부문에서도 2만 5000개 늘었다. 프린서플 애셋매니지먼트의 시마 샤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9월처럼 어마어마한 깜짝 고용지표는 고용시장이 실제로는 약하지 않고 강함을 시사한다”며 “Fed가 11월 추가 빅컷을 단행할 것이란 기대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엑스(X·옛 트위터)에 “이 지표만 두고 보자면 미 고용시장이 견조함을 넘어 강한 상태이고 ‘미국 예외주의’가 지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시장은 2024∼2025년 Fed가 덜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점을 가격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달러 다시 강세
미국 달러도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고한 성장세를 나타내 올 11월 빅컷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지면서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월 8일 오후 9시 30분(현지 시간) 기준 102.54를 기록하며 지난 8월 중순 수준까지 올랐다. 8월에는 Fed의 통화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며 달러인덱스가 102선 안팎을 횡보했다. Fed가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 9월 18일 전후로 이 지수는 101 선까지 내렸다가 최근 들어 상승세로 돌아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월 고용보고서 발표 이후 Fed가 11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34.7%까지 본 시장의 확률은 10월 8일 오후 9시 30분(현지 시간) 기준 0%로 떨어졌다. 0.25%포인트 내릴 확률은 일주일 전 63.2%에서 86.7%로 커졌고 동결 가능성은 0%에서 13.3%로 올랐다. 브래드 베히텔 제프리스 외환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시장 참가자들이 미국에서 공격적인 금리인하에 대한 가능성을 낮추고 견해를 바꾸는 등 미묘한 변화가 관찰된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발린저그룹의 외환시장 분석가인 카일 채프먼은 “연준이 7월과 8월 성명서 수정을 미리 알았다면 25bp를 인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국채금리 다시 4%대
미국 고용지표로 인해 월가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 경기침체에 대한 전망은 줄었지만 대신 인플레이션 우려는 커지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긴장이 증폭되는 등 중동 정세가 악화하면서 유가가 급등했다. 한때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80달러를 넘겼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두 달 만에 연 4%를 넘어섰다.

글로벌 채권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10월 9일 오전 7시(현지 시간) 현재 연 4.0220%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연 4%대를 넘어선 것은 지난 8월 초 이후 두 달 만이다.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서 Fed가 11월 ‘빅컷’을 단행할 것이란 기대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중동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도 인플레이션 우려를 재점화했다. 10월 7일(현지 시간) 브렌트유 12월 인도분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3.7% 오른 배럴당 80.93달러에 마감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원유 시설을 공격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를 끌어올렸다. 애덤 턴퀴스트 LPL파이낸셜 전략가는 “10월 10% 넘게 오른 WTI가 인플레이션과 금리에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행히 미국과 아랍 국가들이 중동 지역 모든 전선의 휴전을 위해 이란과 비밀 회담을 시작했다고 이스라엘 언론이 10월 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로 인해 브렌트유 가격은 80달러 아래로 내려갔지만 원유시장 투자자들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이 보복 계획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공격을 시작할 경우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월 8일(현지 시간) 미국 당국자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이스라엘이 미국에 미리 알리지 않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군사작전을 벌인 데 이어 이란에 대한 보복 계획에 대해서도 귀띔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당국자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 공습에 대한 보복 공격 시점은 물론이고 이란 내 공격 목표에 대해서도 보안을 지키고 있다.

특히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란 원유시설이 공격받으면 세계 원유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란은 국제사회 제재 때문에 공개적으로 원유를 수출하지는 못하지만 중국 등에 밀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헬리마 크로프트 RBC캐피털마켓 글로벌상품전략책임자는 전면전 위험이 고조되면 전쟁에 따른 피해 비용을 국제화하기 위해 이란과 친이란 세력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접국 에너지 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허리케인, 보잉 파업이 변수
호조를 보이는 미국 노동시장도 변수는 남아 있다. 최근 허리케인 ‘헬렌’이 미국 남동부 지역을 강타하면서다. 보잉의 기계공 수만 명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노동시장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이들의 파업은 보잉 공급업체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 월가에선 파업이 10월 말까지 지속된다면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발표될 10월 비농업 임금 데이터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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