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자들은 다 계획이 있었다” 생숙으로 보는 ‘규제 풍선효과’[비즈니스포커스]
입력 2024-10-30 06:00:18
수정 2024-10-30 06:00:18
“어차피 예상된 일이었다.” 10월 16일 ‘생활형숙박시설 합법사용 지원방안’이 나오자 부동산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정점이던 2020년 주택의 대체재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은 완공 시기가 다가오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웃돈을 노리던 투자자들은 분양권이 팔리지 않아서, 실거주를 위해 분양받은 수요자들은 전입신고도 되지 않는 ‘집 아닌 집’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을 위기였다.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결국 정부는 회생에 나섰다. 내년부터였던 이행강제금 부과를 2027년까지 유예하고 복도폭과 주차장 규제를 완화해 기존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변경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전국 18만 실에 달하는 생숙 중 5만2000실은 숙박업 신고가 되지 않은 가운데 6만 실이 아직 공사 중이다. 최대 11만 실에 달하는 소유주에게서 매년 공시가격의 10%, 즉 수천만원의 이행강제금을 걷는 일은 나라에도 부담이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선 생숙이 결국 오피스텔의 전철을 밟게 됐다는 분석이다. 원룸형 사무실 개념으로 도입된 오피스텔은 바닥난방과 전입신고가 허가되면서 점차 ‘준주택’의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이번 생숙 용도변경 방안이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시장에 “편법을 써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다시 한번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요와 규제의 결합 ‘레지던스’
생숙 문제는 법적으로 숙박시설이던 상품이 ‘유사주택’으로 팔리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한류 열풍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지자 정부는 부족한 장기 숙박시설 공급을 위해 2012년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생숙을 도입했다. 생숙은 이름 그대로 숙박용이지만 취사가 가능한 형태였다.
통상 호텔 같은 숙박시설은 사업자가 자금을 일으켜 짓고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생숙은 아파트나 오피스텔, 상가처럼 숙박시설의 각 호실을 개인에게 쪼개어 공급하는 ‘선분양 방식’을 통해 개발업자가 부족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지난 부동산 상승기에 생숙은 다시 한번 진화를 거쳤다. 정부가 아파트에 이어 오피스텔까지 부동산 규제 대상으로 삼으면서 생숙이 주거 수요자 및 투자자들의 또 다른 도피처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택시장에선 아파트가 가장 선호도가 높고 잘 팔리지만 전매제한 등 각종 규제와 세금 중과의 대상이었다. 주택공급 부족으로 인해 청약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아파트 분양 받기도 쉽지 않았다. 이에 준주택인 주거용 오피스텔이 대체재로 뜨며 인기를 모았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초기 생숙은 주거용 임대보다 숙박업을 통한 수익률이 높다는 점에서 착안해 개발하는 토지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상품으로 공급됐다”며 “그러다가 주택시장이 과열되면서 아파트 대체재로 관심을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거용 오피스텔은 시행사에 ‘효자상품’이었다.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상업용지에 높은 용적률로 건물을 지어 호실을 잘게 쪼개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양가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서울 강남권에선 소형 오피스텔도 일명 ‘하이엔드’ 상품이라는 이유로 3.3㎡당 1억원에 분양하기도 했다. 분양권 웃돈도 수천만~수억원에 달했다.
2020년 정부는 이처럼 부동산 경기가 과열되자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넣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자 시장에선 레지던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롯데건설이 2021년 8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분양한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로열동, 로열층에 속한 일부 매물 웃돈이 2억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특히 개발업자 입장에선 생숙이 주거용 오피스텔보다 나은 상품이었다. 숙박시설은 상주하는 인원이 적으므로 아파트, 오피스텔보다 법정 주차 대수가 적다. 복도폭이나 소방시설 등의 규제도 약한 편이다.
건축비가 많이 드는 지하주차장 공간이 덜 필요한 것은 큰 장점이다. 오피스텔은 점차 주거용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주차난을 겪은 결과 아파트와 같은 수준의 주차대수를 확보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전용면적이 넓은 오피스텔이 ‘아파텔’이라 불리며 확산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건물에 들어가는 세대 수가 적어지기 때문에 주차대수를 적게 설계해도 된다.
이미 생숙 다음 상품 나와
정부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태도를 바꿨다. 2003년에도 국내 부동산 시세는 급격히 올랐는데, 이때 오피스텔 바닥난방 시설 설치를 금지했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인 2009년에는 다시 바닥난방이 허용되는 등 오피스텔을 준주택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주택공급도 줄었기 때문이다.
생숙 대책도 마찬가지라는 평이다. 전국에 생숙 분양이 한창이던 2021년 정부는 생숙을 주택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관리를 강화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미 분양한 생숙에 대해서도 주택용도로 사용하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2년의 계도기간이 끝난 뒤에도 이행강제금 부과는 다시 2027년까지 유예됐다.
다만 생숙이라는 상품 자체가 오피스텔처럼 준주택으로 변신하며 살아남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태생 자체가 숙박시설이므로 주거용 오피스텔로 전용되지 못하면 이제 숙박용으로 쓰여야 한다. 정부는 건축법을 개정해 신규로 공급되는 생숙에 대해 숙박업 신고 기준 이상일 때만 분양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행 숙박업 신고 기준은 30호실 이상 또는 건물 연면적의 3분의 1 이상이다.
그러나 편법을 활용한 비슷한 형태의 상품은 계속 공급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식산업센터나 오피스빌딩을 쪼개 개별 욕실을 넣는 등 주거가 가능한 구조로 분양하는 ‘라이브 오피스’도 나오고 있다. 라이브 오피스는 업무용이라 바닥난방이 안 되고 취사도 불가능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과 규제를 피해 주택과 유사한 상품은 갖가지 형태로 계속 나올 수 있다”며 “이번 생숙 대책은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문제의 규모가 커지면 특단의 조치로서 합법화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