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계에 닥친 위기의 원인, 리더십의 실종 [EDITOR'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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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찬사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불안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 찬사가 쏟아지는 시점이 정점이 아닐까?’

지난 8월 1일 세계은행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서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고 선진국이 되려면 투자, 기술 도입,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을 예로 들며 ‘성장 슈퍼스타’라고 추켜세웠습니다. 이어 “한국 경제 발전사는 개도국 정책 입안자의 ‘필독서’”라고 소개했지요.

두 달 후인 10월 1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소프트파워 지수가 세계 1위를 기록했다”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상업성, 문화, 디지털, 교육, 세계 영향력, 제도 등 6개 주요 항목을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이어진 노벨상 시즌에도 한국은 뜨거웠습니다.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수상한 것은 K컬처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이자 선진국에 제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노벨경제학상에서도 한국은 주인공이었습니다. 수상자들은 남북한 경제발전의 격차는 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며 한국을 예로 들었습니다.

연이은 찬사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오늘의 찬사는 어제의 성공에 대한 보상일 뿐 오늘과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시기 ‘삼성 위기론’이 터져나왔습니다. 여기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다른 기업들의 상황도 좋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유튜브에는 삼성전자 위기와 관련된 수백 개의 동영상이 떠돌아 다닙니다. 기자들도 낯설었던 삼성의 2인자는 블라인드나 젊은이들이 찾는 커뮤니티에서 익숙한 이름이 됐습니다. 술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 삼성전자 얘기입니다.

이 엄청난 관심을 보며 사라져가던 낙수효과란 단어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트리클 다운 효과.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으로 대기업이 성장하면 중소기업, 국민경제로 그 과실이 흘러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 효과는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고들 했습니다. 대기업들이 해외에만 공장을 지어 파급효과가 국내에 미치지 않는다는 게 근거였지요.

하지만 다른 방식의 낙수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주주들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주주가 400만 명이나 되고 모든 펀드에 삼성전자 주식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관심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효과가 증발해 버렸습니다.

삼성전자가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겠습니다. 한경비즈니스 6월 5일자(한국 대표 기업 고난의 행군)에 분석해놨습니다. 수주업(파운드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1위의 자만, 비전의 부재, 인재 양성 실패, 경영진의 무책임, 고전적 관리경영으로의 회귀 등이었습니다.

다른 기업도 낙관하기 힘듭니다. LG그룹은 현상유지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포스코도 힘겨운 상황입니다. 제2의 반도체가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2차전지(배터리)는 캐즘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소외된 느낌입니다. 그래서 “비관의 근거는 구체적이지만 낙관의 근거는 추상적이다”란 말이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자동차와 HD현대가 자동차와 조선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바이오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고 한화가 방산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것은 위안입니다.

아울러 K뷰티, K푸드, K컬처 등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언제 어떤 폭발력을 갖게 될지 모를 것이란 기대감을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창간 29년을 맞아 15개 산업의 경쟁력을 점검해 봤습니다. 이 기획을 하면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현재 해외 경쟁사들이 부러워할 만한 한국 CEO는 누구일까?”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세계 각국 정부가 모두 경제 전쟁에 직접 플레이어로 참가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비즈니스에 올인을 해도 시간이 모자란 대기업 총수들을 국내외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수행하게 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될까. 산업정책이라 할 만한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산업계가 처한 어려움은 리더십에서 비롯됐습니다. 직원과 이해관계자들에게 비전을 주지 못하는 경영자들,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을 보면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 투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폴레옹은 “리더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을 줄 수 없다면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도 없는 것은 아닐까요.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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