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 그리고 이별의 조건[하영춘 칼럼]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투의 노랫말은 허구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별이라도 생채기는 남는다.

사람 관계가 이럴진대 돈이 걸린 기업 간 이별은 살벌할 수밖에 없다. 7조원대 ‘쩐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 사태가 대표적이다. 장 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혈투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다. 75년간 이어져온 동업자 정신은 온데간데없다.

따지고 보면 동업 후 이별이 아름다운 적은 별로 없다. 미국 빅테크기업도 그렇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공동 창업했다. 초기 지분도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을 겪다가 앨런이 회사를 떠나면서 동업은 끝났다.

트위터(현 X)의 공동창업자인 잭 도시와 에반 윌리엄스도 회사가 성장하자 갈등 끝에 결별했다. 메타(옛 페이스북)도 마크 저커버그와 에두아르두 사베린이 공동 창업했지만, 사베린은 잊혀진지 오래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회사가 커진 뒤 경영철학을 두고 이견을 보이다 헤어졌다.

그렇다고 동업관계가 모두 비극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LG그룹과 GS그룹의 갈라서기는 아름다운 이별의 교과서로 꼽힌다. 재계 49위인 삼천리그룹은 지금도 훌륭한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삼천리의 출발은 고려아연과 비슷하다. 1955년 고(故) 이장균·유성연 명예회장이 공동 창업했다. 두 사람은 창업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전 계열사 주식을 두 집안이 같은 지분으로 소유하고, 어떤 비율로 투자하든 이익은 똑같이 나누며, 한쪽이 반대하는 사업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원칙은 창업 2세인 이만득 삼천리 명예회장과 유상덕 ST인터내셔널 회장에게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2010년 삼탄(현 ST인터내셔널)은 계열사 간 지분조정을 위해 삼천리 주식 36만4693주를 두 가문에 절반씩 넘겼다. 정리하는 주식이 홀수다 보니 1주가 남았다. 1주는 결국 시장에서 팔았다. 동일 지분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1949년 창업해 삼천리그룹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장한 고려아연은 왜 가장 추한 모습으로 이별하고 있을까. 대우증권 사장을 거쳐 21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성국 작가는 창업 2, 3세 들어 결별이 많은 이유로 △고속성장이 준 높은 성공 가능성 △동업자보다 학연, 지연, 혈연이 중요한 환경 △의사결정을 주도하려는 경향과 함께 창업 3세의 특징을 꼽았다.

창업 동지는 동질감이 끈끈하고, 이들을 보고 자란 창업 2세도 동업자를 존중한다고 홍 작가는 분석했다. 이런 경험이 없는 3세들은 선민의식이 강한 반면, 조기 해외유학을 하다보니 글로벌 경영을추구하며 선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선호한다고 한다. 동업 가문과의 의리 지키기는 후순위라는 것이다.
마침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창업 3세다. 영풍 장형진 고문은 2세다. 둘의 견해차는 감정싸움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고려아연 사태를 낳았다고 하니 홍 작가의 분석이 일리가 있다.

문제는 폐해다. 개인 간 이별은 그들만의 생채기로 끝난다. 고려아연식 결별은 후유증이 너무 크다. 고려아연은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자사주를 사들이면서 연 6~7%로 2조원 이상 빌렸다. 누구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고려아연과 소액주주들이 입을 피해는 막대하다. 이별은 자유라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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