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금융지주사들은 만만치 않은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직원들의 횡령사건과 금융상품 관련 사고, 전직들이 저질러 놓은 친인척 관련 비리 등 금융지주사들이 수습해야 할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지주 회장과 금융당국 간 껄끄러운 관계까지 더해져 심란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는 예외다. 실적도 잘 나오고 큰 사고도 안 터지고 함영주 회장을 바라보는 용산의 시선도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우호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하나금융이 태평성대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 직원들도 “10여 년 만에 이런 평화로운 시기는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법인이 출범한 지 10년 차, 지배구조가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태평성대가 지속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변수가 하나 있다. 금융그룹 전체를 이끄는 지주 회장의 임기가 내년 3월 종료된다. 연임일지 포스트 함영주의 등장일지가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연임에 무게가 실리지만 채용비리 재판이 걸림돌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함 회장의 임기뿐 아니라 은행을 포함해 하나증권, 하나카드, 하나캐피탈 등 14개의 계열사 중 12곳 최고경영자(CEO)들도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함영주, 1년 연임될까
함영주 회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강경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은행에 텔러(창구 전담 직원)로 입사해 그룹의 수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취임 첫해 그룹 역대 최대 순익을 기록한 함 회장은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3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누적 순익(3조2254억원)을 내면서 연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올해 실적에 따라 함 회장 임기 3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내실도 튼튼하다. 함 회장이 올해 ‘성장’보다 ‘관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위험가중자산(RWA)을 적극 관리하기로 한 방향이 하반기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를 말끔하게 잠재웠다. 올해 3분기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13.17%로 전분기(12.80%) 대비 0.37%포인트 상승했다. 보통주자본비율은 금융사의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건전성 지표다. 위험가중자산은 대출한 돈의 회수가능성을 평가해 반영한 것이다. 보통주자본비율이 높을수록 금융사가 위험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의미다.
주가도 좋다. 올초 4만3000원이던 주가는 10월 29일 기준 6만4000원으로 올라가며 연초 대비 48.8% 상승했다. 하나금융은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주환원율 50%를 달성하겠다는 밸류업 계획도 밝혔다.
현 정권에서도 함 회장의 연임을 높게 점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1년 6개월 전 임기가 만료된 금융지주 회장들은 모두 연임이 좌절됐다. 2022년 12월 용퇴를 선언한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8월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 등 연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던 금융지주 회장들이 차례로 물러났다. 최근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 등 금융사고가 잇달아 터지면서 거취 압박을 받았다.
노골적인 간섭은 없었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을 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우리금융 현 경영진에게 부당대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민간 회사인 금융지주 회장의 교체 과정에 직간접적인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어쨌든 함 회장에 대해선 별다른 메시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경영실적에도 함 회장의 연임에는 변수가 있다. 우선 ‘나이’가 문제다. 하나금융 지배구조 내부규범(10조 8항)상 회장 나이가 만 70세를 넘길 수 없다. 재임 중 만 70세가 도래하는 경우 최종 임기는 해당일 이후 최초로 소집되는 정기주주총회일까지로 한다. 1956년생인 함 회장은 현재 만 68세다. 연임에 성공한다 해도 1년 정도밖에 회장을 할 수 없는 규정이다. 김정태 전 회장도 1년 연임한 사례가 있다.
3년 임기를 수행한다면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 ‘셀프 연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은 정관과 지배구조 내부규범 등에서 회장 임기를 3년 이내로 제한하되 연임이 가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지주회사 회장의 임기가 3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한 상법(383조 2항)에 따른 조치다. 다만 연임 횟수는 별도의 제한이 없어 장기 집권이 가능한 구조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하나은행장을, 지주가 설립된 그 이듬해부터 2012년까지 지주 회장을 지내며 15년간 하나금융 CEO를 맡은 바 있다. 전임인 김정태 회장도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지휘봉을 잡았다.
이를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대부분 금융지주는 2011년부터 회장 나이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것. 당시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하며 CEO 경영승계 프로그램 도입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법 모범규준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금융지주사들이 HSBC나 BNP바리바, 메릴린치 등 해외 유수의 금융기관을 벤치마킹하며 CEO 선임에 연령 제한을 뒀다.
그중에서도 하나금융지주는 2011년 2월 금융지주사 중 가장 먼저 그룹 회장의 최고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도입했다.
함 회장의 임기 내내 족쇄처럼 여겨졌던 사법 리스크는 일부 해소됐다. 지난 7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로 금융당국에서 받은 중징계 처분이 대법원에서 최종 취소됐다.
이제 채용 비리와 관련한 재판이 함 회장의 거취를 좌우할 변수가 됐다. 함 회장은 아직 채용업무 방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특정 지원자가 합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다. 1심에서 무죄 판결 받았으나 2심에서 유죄로 뒤집히면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함 회장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함 회장은 연임 도전은커녕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률(5조)에 따라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임원 자격을 상실토록 했다. 물론 비슷한 케이스의 다른 지주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기 때문에 하나금융 내부적으로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함 회장이 회장 레이스에서 탈락하면 차기 회장 후보군에 이은형 하나금융 부회장을 비롯해 이승열 하나은행장,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 등 주요 계열사 인사가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외부 자문기관 등을 활용해 회장 경영승계 후보군(롱리스트)을 매년 관리하고 있다.
역할 커진 이승열 행장
이승열 행장은 올해 3월부터 강성묵 대표와 함께 하나금융 사내이사에 신규 선임되며 그룹 내 존재감을 키웠다. 함 회장 1인 사내이사 체제에서 3인 체제로 확대한 것이다.
이 행장은 연임 가능성이 높은 CEO로 꼽힌다. 그는 첫 외환은행 출신 하나은행장으로 통합 상징성을 갖는다. 취임 첫해인 2023년 사상 최대 순이익(3조4766억원)으로 리딩뱅크 지위를 지키며 영업 경험이 많지 않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이 행장은 줄곧 본점 조직에서 근무하며 IR팀장, 경영기획부장, 경영기획그룹장, 그룹재무총괄 등을 맡았다.
올해는 함 회장이 자산건정성 관리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문한 만큼 기업금융 영업 강도를 낮추고 있다. 앞서 하나은행은 2022년 기업금융 시장에서 자금수요가 폭발적으로 상승하자 이를 적극 취급했고 여기서 얻은 이자이익으로 리딩뱅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나은행은 올해 3분기 누적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 2조780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5% 증가한 수치다.
내부통제는 선방했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금융사고로 몸살을 앓는 동안 하나은행은 상대적으로 금융사고 건수도 액수도 적었다. 일반적으로 연말 인사의 기준이 실적에 맞춰졌다면 올해는 내부통제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함 회장과의 역학관계가 변수다. 은행장은 금융지주 회장 후보 1순위인 만큼 금융그룹 지배구조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차기 행장 선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초임인 이 행장이 함 회장의 거취와도 연동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연임 청신호 켜진 비은행
강성묵 대표는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로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던 하나증권을 올해 실적 정상화로 이끌었다.
강 대표는 자산관리(WM)·투자은행(IB)을 강화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WM부문은 지역 영업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앙지역본부와 남부지역본부를 신설하고,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영업 추진과 관리본부를 통합했다. 부동산 금융에 치우쳐져있던 IB 사업도 균형을 찾기 위해 IB1부문과 2부문으로 나눴다. 효과는 있었다. 하나증권은 올해 상반기 WM부문에서 173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3분기도 WM 부문의 손님 수 증대와 IB, 세일즈앤트레이딩(S&T) 사업 부문의 실적 개선이 성과로 이어졌다. 하나증권의 3분기 누적 연결 기준 당기순익은 1818억원을 기록, 지난해 동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다만 하반기 핵심과제였던 초대형IB 인가 획득이 미뤄진 점은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당초 하나증권은 연내 초대형IB 인가를 신청하려 했으나, 금융당국이 종합투자금융사업자(종투사) 제도를 재점검하기로 하면서 일정 연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호성 하나카드 대표도 연임에 무리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대표는 하나은행에서 영업그룹장까지 지난 영업통이다. 영업전문가인 만큼 카드사 본업인 신용판매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하나카드는 해외여행 특화카드인 ‘트래블로그’ 돌풍으로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2022년 7월 출시된 트래블로그 서비스는 지난해 1월 가입자 수 50만 명에서 올해 8월 600만 명을 돌파했다. 트래블로그의 흥행으로 하나카드의 해외 체크카드 점유율은 약 50%를 차지했다. 하나카드의 올해 상반기 순익은 1166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60.6% 성장했다. 이는 금융지주 카드사 중 가장 가파른 순이익 성장이다. 3분기 누적 순이익은 1844억원이다.
높은 연체율은 개선 과제로 꼽힌다. 하나카드의 연체율은 1.82%다. 우리카드(연체율 1.78%), KB국민카드(1.29%), 신한카드(1.33%), 삼성카드(0.94%)와 비교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돋보기
하나금융의 아픈 손가락, 함영주 구단주의 축구팀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 대회에 출전한 미국 선수들은 암스테르담 대회 기간 동안 계속해 특정 음료를 마셨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미국 선수들이 마시는 음료’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음료는 ‘코카콜라’였다. 이를 계기로 코카콜라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올림픽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가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심어졌고 올림픽 참여 기업이라는 이유로 선호도가 올라갔다. 코카콜라와 올림픽의 동맹은 90여 년에 걸쳐 이어져 오고 있다.
기업의 스포츠 마케팅은 강력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유명 스포츠 선수나 구단을 후원하거나 운영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전략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금융권에서도 스포츠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그룹으로 꼽힌다. 축구, 농구, 골프 등 다방면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축구.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축구하면 하나금융을 연상하는 사람이 꽤 있다. 하나금융의 축구 마케팅의 시작은 1998년 하나은행이 한국축구대표팀 공식 후원은행으로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17년부터 프로축구 K리그 타이틀스폰서로 참여 중이며, 2020년엔 프로축구단 대전하나시티즌(옛 대전시티즌)을 인수했다. 2019년 론칭한 K리그 축덕카드는 5년간 약 26만개가 발급되며 K리그 직관 팬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 선수 등을 그룹 광고모델로 발탁하면서 많은 팬들을 끌어 모으는 등 하나금융은 축구 전 분야에 걸쳐 후원과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전하나시티즌 창단은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이 했고, 2021년부터 함 회장(그룹 부회장 시절)이 구단주를 맡았다. 함 회장은 충청 출신으로 대전·충남지역과 인연이 깊고 K리그 구단주로는 보기 드물게 종종 경기 직관에 나서는 등 팀을 향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당시 대전하나시티즌에 전북현대와 울산현대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투자가 단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면서 팀이 K리그 1부리그(K리그1)로 승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아지기도 했다. 실제 함 회장은 과감한 선수영입에 나섰다. 부임 첫해에 마사·이진현·알리바예프 등 굵직한 선수 영입이 이어졌고 이듬해인 2022년에도 2부리그 에이스인 김인균과 조유민, 주세종 영입에 성공한다. 결국 인수 3년 만에 K리그1으로 승격했다.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함 회장은 축구팬들 사이에선 ‘함멘(함영주+아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맥을 못추고 있다. 2023년 대전은 8위를 차지하며 K리그1에 잔류했지만 올 시즌 성적이 추락해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자 K리그1 승격을 이끌었던 이민성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됐다. 현재 감독은 남자 23세 이하(U-23)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황선홍 감독이다. 대전은 10월 27일 대구와 홈경기에서 전반 24분 마사의 골에 힘입어 간신히 9위(승점 41·10승 11무 14패)로 올라섰다. 강등권 싸움에서 한숨 돌린 셈. K리그1에서 10~12위는 강등권이다. 10~11위는 K리그2 팀들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잔류가 결정되고, 12위는 곧바로 2부리그로 강등된다.
스포츠 마케팅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지만, 운영하는 팀의 실적은 그룹 직원들의 사기와도 연결된다. “축구가 힘들다면서요?” 호시절을 보내고 있는 하나금융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