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NH농협은행이야?” 농협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시공시가 이뤄진 금융사고 금액만 450억원 정도다. 사고 이유도 다양하다. 횡령, 배임, 외부인에 의한 사기 등이다. 잇단 금융사고에 농협은행은 지난 8월 23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중 처음으로 이사회가 은행 내부통제를 컨트롤하는 조직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금융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은 농협은행의 잇단 금융사고 발생 이유에 대해 농협금융 특유의 지배구조를 지목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의 집행 간부 등 임원 후보를 결정하는 데 관여하는 불투명한 인사 운영을 꼬집었다.
금융사고 올해만 최소 590억원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농협은행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 말까지 확인된 금융사고만 9건으로 사고 금액은 433억6041만원에 달한다. 9건의 사고 중 횡령 3건, 업무상 배임 3건, 사기 2건, 금융실명제 위반 1건 등이다. 여기에 9월, 10월 추가로 발생한 금융사고까지 더해지면 건수와 금액이 더 늘어난다.
일단 10월에만 수시공시가 2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금융사고가 1건이다. 수시공시를 통해 밝혀진 금융사고는 모두 ‘외부인의 사기’와 관련됐다. 10월 9일 농협은행은 부동산담보대출 적정성 여부를 자체 감사하던 중 140억원의 이상 거래 건을 발견했다며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당시 농협은행은 해당 이상 거래가 외부인에 의한 사기로 의심된다며 당사자를 수사기관에 고소 조치했다고 밝혔다.
10월 25일에는 외부인의 사기에 의해 15억원 상당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농협은행은 공시했다. 해당 차주는 서울의 한 농협은행 지점에서 허위문서를 제출해 과도하게 대출을 받았다. 농협은행은 ‘부동산 사기를 수사하던 경찰’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달받아 사건을 인지했으며 추후 내부 감사를 통해 이상 거래 내용을 확인했다. 경찰 수사가 아니었다면 해당 금융사고는 더 늦게 인지됐거나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10월 24일에는 농협은행 울산 지역의 한 지점에서 직원이 70대 고객의 돈을 횡령한 사건이 확인돼 은행 본점이 내부 감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해당 직원은 올해 7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2억5000만원가량의 예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법상 금융사고 3억원 미만의 경우에는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10억원 미만일 경우엔 공시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70대 고객 예금 횡령 건’과 같은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다.
9월 이후 공시나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사건을 더하면 올해 농협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최소 13건, 금액은 590억원 정도다. 5대 은행 중 건수도 많고 금액도 큰 편이다.
‘깜깜이 인사’가 잇단 횡령·배임 원인
농협은 농민이 주주인 협동조합이다. 조합원 수만 208만 명인 농협의 최고 권력은 농협중앙회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중앙회의 회장은 임기 4년 단임제에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중앙회 산하 계열사 대표 인사권과 예산권·감사권을 갖고 농업경제와 농협금융 경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는 인사조정위원회를 통해 농협금융의 집행간부 등 임원 후보를 결정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 농협금융 대표이사도 인사조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별도의 근거 규정은 없다. 이렇다 보니 농협금융은 자사 임원을 선임하는 이 위원회의 회의 자료와 논의 내용 및 결과를 기록하거나 관리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농협금융 임원 선임이 농협중앙회 내에서 ‘깜깜이’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농협금융에 최고경영자(CEO) 인사권이 있지만 농협은행도 중앙회장 입김에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로 이어진다.
금융감독 당국은 “내규 등에 금융지주 대표이사의 중앙회 인사조정위원회 참석 근거를 마련하고 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 및 결과, 관련 자료들을 금융지주 측에서도 문서화해 관리하는 등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농협금융에 농협중앙회의 부당한 경영·인사 개입을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경영 유의 전달).
이는 금감원이 지난 5월 실시한 농협금융과 농협은행 정기검사에서 드러난 부분에 대해 개선을 ‘권고’한 것이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취약한 지배구조 탓에 농협금융 계열사에서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문성이 부족한 중앙회 인력이 시군지부장에 배치돼 내부통제 체계가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권고’ 수준에 그친 데는 농협중앙회가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라는 점을 금감원이 의식해 선을 넘지 않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농협금융은 금감원의 권고를 수용해 관련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통상 조치를 받은 금융기관은 경영 유의 사항의 경우 6개월, 개선사항은 3개월 이내에 금감원에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농민 대통령’의 입김은 어디까지
인사권을 쥔 농협중앙회의 현 사령탑은 강호동 회장이다. 강 회장은 경남 합천 출신 조합장으로 40여 년간 농협에 몸담아온 ‘농협맨’이다.
농협금융 임원 중 중앙회장의 복심으로 불리는 곳은 외풍이 작용하는 회장직이 아닌 비상임이사와 부사장 자리다. 비상임이사는 조합장 출신으로 중앙회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현재는 강 회장 추천 인사인 박흥식 광주비아농협 조합장이 선임됐다. 박 이사는 농협금융 이사회운영위원회 위원장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 보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상근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가 열릴 때만 참여할 수 있어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 농협금융의 전반적인 업무를 다루는 부사장(사내이사) 자리가 이를 보완, 대부분 중앙회 출신들이 자리를 잡는다. 현재 김익수 부사장도 중앙회 출신이다. 다만 강 회장이 핸들을 잡기 전인 지난해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금융지주 회장, 행장 등 자회사 대표이사, 사외이사, 감사위원 등을 선임하는 임추위는 현재 총 6명으로 구성됐다. 사내이사 1명, 비상임이사 1명, 위원장을 포함한 사외이사 4명 등이다. 비상임이사와 중앙회 출신의 부사장이 포함돼 있어 중앙회의 입김이 크다는 시각이 있다.
다만 농협금융은 지난 9월 1일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일부 개정했다. 임추위는 5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고 위원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구성한다.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때에는 비상임이사를 제외하고 구성한다(11조 2항). 임추위에서 중앙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조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내용이 사외이사 선출에만 적용돼 사실상 금융지주 회장과 행장 등 CEO 선출에는 여전히 비상임이사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는 중앙회장의 입김이 CEO 선정 시 얼마나 작용할지 주목된다.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과 이석용 농협은행장이 연말 임기가 만료된다.
한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협중앙회 국정감사(10월 18일)에서 강 회장의 낙하산 인사 논란이 제기됐다. 여야 의원들이 “강 회장 취임 이후 단행한 인사 49명 중 내부승진자는 전혀 없고 강 회장 선거를 도운 농협 퇴직자가 주요 요직으로 복귀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강 회장은 “꼭 캠프 출신이라기보다 선거 기간 저와 마음을 나눈 분”이라며 “선거 때 음으로 양으로 도와줬다”고 답했다.
지준섭 전 NH농협무역 대표는 2022년 퇴임한 뒤 중앙회장 선거에서 강 회장을 도운 뒤 중앙회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여영현 전 농협네트웍스 대표는 2022년 퇴임했다가 강 회장 선출 이후 중앙회 상호금융 대표이사가 됐다.
김창수 남해화학 대표(전 농협중앙회 지역본부장), 조영철 농협에코아그로 대표(전 농협홍삼 대표), 박서홍 농협경제대표이사(전 농협경제지주 상무) 등도 퇴임 후 다시 재취업했다.
박석모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은 전 NH농협은행 부행장 출신으로 2016년 퇴임했다가 농협중앙회로 돌아왔고 2016년 퇴직했던 김정식 전 농협중앙회 전무이사도 8년 만에 농민신문사 대표로 취임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