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그리고 삼성전자…투자 시장 뒤덮은 투자우울증[파괴자, 혼돈, 그리고 나④]

주식시장서 깊고도 짙은 ‘투자우울증(Investor Blues)’ 발생
비트코인 급등으로 인한 상승 박탈감까지 사회적 문제로

한국 국가신용 등급보다 더 높았던 삼성전자,
최근 변동성 커지며 안전자산 이미지 사라져

대장주 기업 주가 하락, 주주 신뢰 흔들며
시장 전반에 복합적인 영향 미쳐

[커버스토리: 2025 트렌드 - 파괴자, 혼돈, 그리고 나]

비트코인이 사상 최초로 9만달러(1억 2670만원)을 돌파한 13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시황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최근 주식시장에는 깊고도 짙은 ‘투자우울증(Investor Blues)’이 번지고 있다. ‘대장주’ 삼성전자의 급락과 위험 자산으로 여겨지던 비트코인의 급등. 투자자의 우울감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자산 하락으로 인한 ‘우울’과 ‘상승 박탈감’이라는 이중적인 층위에서 시대 문제가 되고 있다.

2025년에도 믿었던 안전자산의 붕괴와 새로운 자산의 유혹이 주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심리를 다스리는 자가 투자전략의 승기를 쥘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시 찾아온 비트코인 블루‘비트코인 대통령’을 자처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사상 최초로 9만 달러를 넘는 등 가파른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13일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이날 새벽 4시 9만2864달러에 거래되면서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미 대선 직전까지 7만3000달러 선을 맴돌았지만 트럼프 당선 직후 7만5000달러를 넘더니 결국 9만 달러 선까지 뚫었다.

급격한 상승장에 시장은 다시금 “나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 현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불안감, 상대적 박탈감. 이는 최근 국내 증시에 대한 불신과 우울감에 더해 새로운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기 화성시 중소제조업에서 근무하는 30대 A 씨도 그중 하나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코인 열풍이 거셌던 2018년 알트코인에 투자했다가 결혼자금으로 마련했던 2000만원의 상당수를 잃었던 C 씨는 다시 온 비트코인 황금기에 “손이 떨린다”고 말했다. 과거의 투자 실패 기억에 다시는 코인 판을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온종일 들리는 ‘비트코인 사상 최고가’ 소식과 주변에서 얼마를 벌었더라는 수익률 자랑에 다시금 마음의 동요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20대 B 씨도 비트코인 블루의 수렁에 빠졌다. 몇 달 전 유튜브에서 비트코인을 사야 한다는 영상을 본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 됐다. 그는 “위험자산이라고 생각해서 안 샀는데 그때 샀더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블루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2018년 2월엔 당시 2000만원이 넘던 비트코인이 600만원대까지 추락하자 한 3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투자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심리학 연구에서는 재정적 박탈감이나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불안장애,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을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박탈감이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이 만성적으로 분비될 경우 신체 면역력이 저하되고 불면증, 집중력 저하,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재정적 상황이 건강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미 한국은 동일한 상황을 겪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3월 비트코인과 주식투자 중독 관련 상담은 1362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659건)의 2배로 뛰었다. 전문가들은 예상치 못한 큰 보상, 특히 암호화폐나 주식의 급등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중독’과 관련된 뇌 회로를 활성화시켜 고위험 자산에 반복적으로 참여하는 중독적 성향을 띨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암호화폐 투자와 도박의 유사성을 연구한 학자들은 ‘심리학 프런티어(Frontiers in Psychology)’(2020년)에서 암호화폐 투자자 중 상당수가 보상 기대에 따라 투자 행위를 반복하는 중독적 성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비트코인과 같은 변동성이 큰 자산의 급격한 가격 상승은 예상치 못한 큰 보상을 경험하는 것과 같아 도파민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이는 중독적 행동과 유사한 패턴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다. 또 ‘도박연구저널(Journal of Gambling Studies)’(2019년)에서는 주식, 암호화폐와 같은 위험자산의 변동성이 높은 시장에 반복적으로 참여할 때 중독적 행동을 나타내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이러한 반응은 도박 중독자들에게서 관찰되는 패턴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 ‘블루’의 파장심리학자들은 자산 하락과 박탈감이 주는 복합적 좌절감이 투자자의 장기적인 재정 상태와 정신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감정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손실을 확정짓는 매도를 반복하거나 상승을 쫓아 투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지고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한 행동재무 학술지는 경제적 박탈감과 위험한 투자 행동의 관계를 연구하며 재정 불안이 높은 사람들이 금융시장에서 단기 이익을 위해 충동적이고 고위험 투자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투자 우울증’은 이제 투자자 개개인의 심리 상태를 넘어서 시장 전체의 투자 심리, 한국 경제의 근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일확천금’의 심리가 투자에 스며들면서 고위험 고수익만을 좇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은 사회적 문제다. 이런 투자 경향은 재정적 손실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심리계좌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며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 전략으로까지 이어져 가계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에 따르면, 손실액이 커질수록 조급해진 투자자는 더 변동성이 큰 시장으로 모여든다.

‘벼락 거지’란 신조어를 만든 비트코인의 투기적 열풍이 몰아친 뒤 ‘빚투’에 시달리는 2030대 청년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이를 입증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 실태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19~39세 청년 가구주 중 소득대비부채비율(DTI)이 300% 이상인 ‘위험’ 지표에 해당하는 경우는 21.7%로 2012년 8.37% 대비 2.6배가 높아졌다. 약 10년 새 연소득의 3배 이상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는 청년 가구주의 비율이 2.6배 증가한 것이다. 여기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나 ‘빚투’(빚을 내 투자한다)처럼 가용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 ‘블루’를 넘어서2025년엔 이러한 투자자의 우울이 사회 전반에 확대 생산될 전망이다. 1월 20일 트럼프의 임기가 시작되며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의 주가도, 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도 모두 변동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2025년 경제 문제의 핵심은 ‘대장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대장주의 향방에 따라 적게는 수백만, 많게는 수천만 투자자의 자산이 바뀌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트럼프가 미국 반도체법(칩스법)을 수술대에 올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2022년 8월 제정된 칩스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와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법에 따라 미국에 공장을 짓고 보조금을 받기로 했는데 트럼프는 이 같은 직접 보조금 지급 정책에 회의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표명했다. 설상가상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규제를 강화할 경우 반도체 섹터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력 약화로 대외 불확실성에 가장 민감한 종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박명규 디자이너

비트코인 전망도 엇갈린다. 당장은 추세에 따라 추가 상승 여력이 있는 반면, 버블이 꺼지면 하락장이 올 것이란 의견도 많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애널리스트인 제프 켄드릭은 “랠리가 이제 막 시작했다”면서 연말까지 12만5000달러, 내년 말까지 20만 달러까지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낙관론을 폈다. 반면 페퍼스톤그룹의 크리스 웨스턴은 “비트코인 가격이 과열 상태에서 추가 상승할 여지가 있는지, 소폭 조정을 기다릴지 투자자들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 우울증’은 2025년 거대한 파도로 다가올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이겨내기 위한 건강한 투자 관점과 장기적인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증폭될수록 안정적이고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격동 속에서 최근 사상 최대 현금을 보유한 워런 버핏은 이 같이 말했다. “시장 변동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결국 당신의 수익을 결정할 것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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