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대출 한도 축소…돈줄 막힌 서민 ‘발 동동’

울의 한 은행 앞에 내걸린 디딤돌 대출 등 정보. 사진=연합뉴스



장면1. 10월 17일 국회전자청원에 ‘디딤돌대출 규제를 중단하라’는 국민동의청원이 공개됐다. “은행들은 더 높은 금리의 대출로 유도하고 있는데 디딤돌대출 규제가 가계대출 증가를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이 맞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해당 청원은 1만2876명(11월 14일 기준)의 동의를 얻었다. 약 한 달 뒤인 11월 13일 “수도권 디딤돌대출 맞춤형 관리방안 규제로 제도 시행 전부터 청약을 진행 중인 가구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하루도 안 돼 2000명의 동의를 얻었다. ‘디딤돌대출 규제를 중단하라’는 국민동의청원은 총 4건이 올라와 있다(11월 14일 기준).

장면2. 온라인 커뮤니티에 ‘청약 아파트 디딤돌대출 불가능 사태의 진짜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글이 떠돌고 있다. “디딤돌대출의 재원인 주택기금이 모자라서 정부가 신규분양 디딤돌대출을 아예 없애버렸다”는 내용이다. 해당 글은 6만 명 가까이 읽었다.

디딤돌대출을 두고 한 달 사이 정부의 입장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실수요자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수년 전부터 자금 계획을 세워놨던 사람들은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디딤돌대출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무주택자에게 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디딤돌대출 규제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서울 디딤돌대출, 12월부터 5500만원 댕강
국토교통부는 11월 6일 ‘디딤돌대출 맞춤형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12월 2일 신규 대출신청분부터 ‘수도권 아파트’의 디딤돌대출 가능 금액이 최대 5500만원 줄어든다고 밝혔다. “주택시장과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란 설명도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10월 주요 은행을 통해 디딤돌대출의 한도를 예고 없이 갑자기 줄이는 조치를 시행하려다 실수요자 반발에 부딪히자 이를 유예했다. 한 달 만에 대출 한도 축소 대상을 수도권 아파트로 한정하고 다시 한 달간 유예기간을 두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디딤돌대출은 무주택자(부부 합산 연 소득 6000만원 이하)가 5억원 이하의 주택을 구매할 때 최대 2억5000만원까지 저금리로 빌려주는 서민대출이다. 이번 규제에서 대출 축소로 인한 상대적 부담이 큰 연소득 4000만원 이하 가구가 3억원 이하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는 적용 대상에서 뺐다.

부부합산 연소득이 4000만~6000만원인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최대 대출 축소폭이 부부의 1년치 연봉과 맞먹는다.
신축 아파트는 디딤돌대출 아예 못 받나
이 규제는 구축 아파트를 매매하거나 분양 아파트에 입주하는 경우 모두 적용된다. 핵심은 총 두 가지다. 먼저 수도권 아파트에 대한 ‘방공제’ 적용이다. 방공제는 대출을 받을 때 소액 임차인에게 내줘야 하는 최우선 변제금을 대출금에서 빼고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최우선 변제금은 서울 55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4800만원이다.

방공제가 적용되면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어 부부가 경기도 과밀억제권역에서 5억원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현재는 5억원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적용해 방공제 없이 3억5000만원 대출이 가능하다. 앞으로는 해당 지역 최우선 변제금(4800만원)이 빠진 3억200만원만 빌릴 수 있다.

기존 임차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등 즉시 입주가 곤란한 경우는 예외로 해준다. 가령 조치 시행(12월 2일) 전 구축 아파트를 계약하고 대출 신청을 했는데 매수하려는 집에 세입자가 있어 잔금을 내년 상반기(1∼6월)에 치를 경우 방공제 적용 없이 대출할 수 있다.



다음은 후취담보대출 제한이다. 등기가 안 된 신규 분양 아파트는 디딤돌대출을 받기 힘들다. 청약 당첨자들이 잔금을 조달하는 데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 12월 1일까지 입주자 모집 공고를 실시하고 내년 상반기에 입주하는 단지는 디딤돌대출이 가능하다. 이때도 방공제에 따른 한도 축소는 적용된다. 디딤도대출로 잔금을 치를 수 있지만 예상보다 축소된 금액을 빌리는 셈. 부족한 부분에 대한 대출을 알아봐야 한다.

짚고 갈 점은 재개발·재건축 및 300가구 미만의 소규모 아파트 등은 애초에 디딤돌대출을 받을 수 없다.
다른 방법은 없나
“3년 전 수도권 아파트를 사전청약으로 분양받았어요. 디딤돌대출을 받아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죠. 하반기 입주자는 대출받을 수 없다니 너무 화가 납니다.”(40대 직장인)

디딤돌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시중은행 대출이나 보금자리론 등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디딤돌대출 금리는 2~3%로 은행 주담대 금리(3~4%대)와 비교하면 금리차가 1~2%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

다른 대출을 받고 나서 등기가 완료돼도 디딤돌대출로 전환하기 힘들다. 정부는 형평성 측면에서 허용하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 신규 주택 입주자들은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비싼 이자를 내고 잔금을 치르거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면 입주권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이다. 디딤돌대출이 소득이 낮은 서민대출이란 점에서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규제를 도입했다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신생아 특례는 정말 기회가 늘어났나
디딤돌대출 가운데 신생아 출생 가구에 대해서는 이런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연소득 요건을 부부 합산 1억3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완화한다.

신생아 특례는 대출 신청 2년 내 자녀를 출산한 무주택자가 9억원 이하 집을 살 때 연 1∼3%대로 받을 수 있는 대출이다. 9월 서울 아파트 중위매매가격(8억8400만원)을 고려하면 아이를 낳은 고소득 가구에 서울 주택을 낮은 비용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다만 금융권 관계자는 “소득 기준이 완화돼도 다른 조건들이 그대로이면 대출받기 어렵다”며 “특히 순자산 조건이 4억6900만원 이하인데 고수익 직장인 부부 중 전세금, 저축 등을 합쳐 순자산이 이 정도 안 되는 경우는 드물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자리 잡는 신혼부부들도 최소 2억은 들고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주택기금 고갈이라던데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의 재원이 되는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이 줄어들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2021년 49조원이었던 여유자금은 2024년 3월 13조9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3년 새 70% 떨어졌다.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은데 공교롭게도 주택도시기금이 정부 세수결손에 마이너스 통장 용도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28일 기획재정부는 올해 29조6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세수결손 대책으로 주택도시기금 활용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세수결손 대응책엔 포함되지 않았던 방안이다.

기획재정부는 주택도시기금 여유재원(최대 3조원)을 활용해 공자기금 예탁 확대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공자기금은 주로 국채를 상환하거나 재원이 부족한 정부의 일반사업회계에 자금을 빌려주는 공공은행 역할을 한다.

기재부는 청약통장 월 납입인정액이 10만원에서 25만원으로 늘어 여유재원은 충분한 수준으로 판단, 2조~3조원을 공자기금에 잠시 예탁해도 건전성엔 큰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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