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카우가 없다"...재계 6위 롯데, 반등 절실한 이유

'유동성'이 아닌 '포트폴리오'의 위기
화학 무너지며 사라져버린 캐시카우
이커머스 공략 실패로 유통도 제자리걸음

M&A와 투자로 돌파구 찾았으나 기대 이하 성과

[비즈니스 포커스]
롯데그룹은 은행보증을 통한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신용 보강을 목적으로 그룹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진=연합뉴스


“유동성 위기를 겪는 롯데그룹이 12월 초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직원 50%를 감원할 것이다.”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출처 불명의 ‘지라시’가 퍼지면서 ‘롯데 위기설’이 불거졌다. 이 지라시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은 소설에 가깝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롯데그룹의 자산 규모와 위상을 때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도 “롯데가 원하면 돈을 빌려줄 금융회사는 많다. 하지만 아직 롯데는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는 위기설을 불식하기 위해 재무구조 현황을 공개했다. 롯데그룹의 10월 기준 총자산은 139조원,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5000원에 달한다. 그룹 전체 부동산 가치는 10월 평가 기준 56조원이며 즉시 활용 가능한 가용 예금도 15조4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부동산 가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팔려고 하면 그 가치를 제대로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동성 자산은 롯데가 믿고 있는 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설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일각에서는 작은 소문 하나에 롯데그룹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근거 없는 소문 하나에 재계 순위 6위인 회사가 흔들릴 만큼 많은 사람이 롯데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롯데의 주력 사업들을 들여다보면 단기적 유동성 위기보다 더 클 수도 있는 ‘포트폴리오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선 부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대로 가면 장기적으로는 희망을 찾기 어렵고 그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은 충분히 가능하다. 잘되는 사업이 없기 때문이다. ‘대우그룹’의 전철을 밟아 공중분해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재 롯데그룹이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라진 캐시카우롯데그룹이 위기에 빠진 건 오랜 기간 그룹을 지탱해온 양대 축인 ‘화학’과 ‘유통’ 부문에서의 경쟁력 약화가 주된 원인이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13년 만에 재계 순위(자산총액 기준)가 5위에서 6위로 내려갔다. 이 역시 두 부문에서의 실적이 부진했던 결과다. 롯데그룹은 전체 매출의 약 60%가 화학과 유통 부문에서 나온다.

롯데그룹의 화학 사업을 담당하는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수천억원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7년까지만 해도 3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던 탄탄한 기업이었다.

신동빈 회장이 그룹 총수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형제의 경영권 다툼이 불거졌을 때마다 신 회장은 롯데케미칼을 국내 3대 화학사로 육성한 경영 능력을 부각해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는 완전히 무너졌다. 2017년을 기점으로 실적이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2022년부터는 적자 기업으로 전락했다. 이번 위기설의 진원지도 롯데케미칼이었다. 과거 회사가 발행한 약 2조4000억원 규모의 사채와 관련해 올 3분기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사채관리계약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 3개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이자 비용의 5배 이상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9월 말 기준 이 수치는 4.3배로 하락했다.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줄어드는 반면 부채는 빠른 속도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유통 사업을 담당하는 롯데쇼핑도 예전만 못하다. ‘유통 거인’이라는 과거의 별명이 무색할 만큼 매출이 하락하고 있다. 오프라인의 위축 속에 이커머스 사업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쇼핑의 무게 추는 완전히 온라인으로 기울었다. 롯데쇼핑이 운영하는 롯데마트는 폐점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쇼핑도 ‘온라인 유통 강자’로 거듭나겠다며 이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을 내놨지만 성과는 처참하다.

수익을 내기는커녕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현재까지 누적 적자만 5000억원이 넘는다.

롯데그룹의 버목이자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했던 화학과 유통사업이 부진하면서 회사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됐다.
뼈아픈 M&A 성과앞으로도 문제다. 현재로선 두 사업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화학 사업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롯데케미칼은 줄곧 기초화학 부문 사업에 집중해왔다. 현재 롯데케미칼 매출에서 범용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한다. 중국이 저가 제품으로 물량 공세를 펴면서 롯데케미칼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석유화학 자급화를 선언한 뒤 범용 제품의 생산력을 끌어올렸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은 이 분야의 최대 수출기업으로 떠올랐다. 재계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앞으로 그룹의 골칫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힘을 내줘야 할 유통사업도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커머스 사업의 핵심인 물류 경쟁력에서 롯데쇼핑은 더 이상 쿠팡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 면세점을 주력으로 하는 호텔롯데,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도 적자전환했다. 롯데칠성음료, 롯데웰푸드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계열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사들인 기업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업구조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수년 전부터 핵심 계열사들의 실적이 서서히 악화되며 ‘롯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인수합병(M&A)이었다.

2021년 한샘을 인수해 가구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2022년에는 편의점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니스톱을, 지난해에는 2차전지 소재 관련 신사업을 위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품에 안았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모두 한발씩 늦었다. 가구, 편의점 모두 코로나19 이전 정점을 지났으며 2차전지 소재도 이미 경쟁이 치열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롯데가 인수한 후 세 기업은 일제히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 중에서도 약 2조7000억원을 들여 품에 안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롯데케미칼의 차입금 규모가 급증한 원인으로 작용하며 지금의 위기론을 불러오는 시발점이 됐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를 인수하는 데 2조7000억원을 입했는데 이 중 1조7000억원이 차입을 통해 이뤄졌다. 전기차 캐즘의 영향으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올해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자 롯데그룹은 렌터카 사업을 비롯해 호텔과 백화점 등의 매각을 검토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또 롯데그룹은 은행보증을 통한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신용 보강을 목적으로 그룹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하는 결정을 내렸다.

11월 28일 단행한 인사에서도 경영 효율 화를 위해 임원 22%가 최임하는 등 고강 도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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