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날씨에 주말마다 기온 올라
기상청, '따뜻한 겨울' 예고
패션업계 헤비아우터 판매 부진
10~11월, FW 정가 판매 시기 놓쳐
패션업체들이 겨울 장사를 망쳤다. 따듯한 겨울로 인해 단가가 비싼 외투를 사려는 사람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역대급 추위가 올 것이라는 예고에 늘려놓은 생산량은 재고부담이 되고 있고 광고 등 마케팅에 투입된 돈은 허공에 날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내수 침체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패션업계가 이상 기온으로 엎친데 덮친 상황에 처했다.
역대급 추위가 올 것이라는 예고와 달리 따뜻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첫눈이 오며 기온이 떨어지긴 했지만 체감 온도가 영하 25도까지 떨어진 지난해 11월과 비교하면 온화한 날의 연속이다. 첫눈 시기도 지난해보다 10일 늦었다. ◆ 길어진 더위에 늦게 방 뺀 SS최근 기상청이 ‘따뜻한 겨울’을 예고했다. 올해가 예년보다 추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예보가 달라졌다. 앞서 기상청은 지난 10월 라니냐의 영향으로 12월 기온은 평년보다 낮을 것이라 전망했다. 라니냐는 시베리아의 차가운 공기가 동아시아로 더 강하게 유입되도록 만들어 한파를 만든다.
그런데 지난 11월 기상청 기후예측과가 발표한 ‘3개월 날씨 전망’(12월~2025년 2월)에 따르면 12월과 1월은 평년과 비슷하고 2월은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겨울철 기온에 영향을 주는 북서태평양, 북대서양, 인도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고 티베트의 눈덮임이 평년보다 적은 영향이다. 이로 인해 겨울철 기온 상승 가능성이 커졌다.
심지어 가을이 사라지고 따뜻한 날씨가 10월까지 지속됐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까지도 폭염이 이어졌다. 9월에 폭염이 발행한 것은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처음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인 국화는 더운 날씨에 개화가 늦어졌고 지리산국립공원 고지대(1400~1600m)에는 11월 초 ‘봄꽃’인 진달래가 피는 등 이상개화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패션업계는 고마진 제품군인 헤비 아우터(패딩, 코트 등) 판매 타이밍을 놓쳤다.
업계는 10월부터 겨울 의류 신제품을 선보인다. 통상 11월 중순부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아우터 수요를 잡기 위해 한 달 전부터 FW(가을·겨울) 제품을 판매한다.
그러나 올해는 11월에도 서울 낮기온이 25도까지 치솟는 등 따뜻한 날이 이어졌다. 최근까지도 SS(봄·여름)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꾸준히 이었다. 의류 업체들은 최근까지도 매장에서 SS 상품을 판매했다. 업체들 역시 부진한 FW 제품 판매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SS 상품 판매를 이어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SS 제품 판매 기간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FW 제품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주력 상품을 팔아야 하는 시기에 마진이 낮은 반소매나 봄 제품을 팔았다. 전반적으로 업계가 모두 날씨에 타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제품 판매 시기를 놓치면 마진은 줄어든다. 10월에 선보인 겨울 신제품을 정상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시기는 10~11월이 전부다. 12월부터는 블랙 프라이데이 등 연말 할인행사 시기가 겹치면서 신제품에도 할인이 들어간다. 12월이 지나면 봄 신상품이 나오기 전까지 재고를 털어야 하기 때문에 추가 할인도 시작된다.
업계의 암울한 상황은 달라진 대응으로 체감 가능하다. 주요 회사들은 시즌이 바뀔 때마다 판매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을 공개한다. 그런데 올해 아우터 판매 성과는 대외비다.
업계는 아우터 대신 니트, 카디건 등만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들이 아우터 대신 가볍게 입을 수 있는 가벼운 제품군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1월 들어 아우터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주말마다 따뜻한 날씨가 반복되면서 매출이 늘지 않고 있다”며 “예년처럼 아우터 판매는 10월부터 쭉 상승세를 타야 하는데 올해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패션 플랫폼 업계 관계자 역시 “지금은 매출 데이터를 뽑을 게 없다”며 “유의미한 수치가 나오지 않는다. 헤비 아우터의 일부 카테고리는 역성장까지도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가성비·요노 트렌드까지 덮쳐소비 트렌드도 업계에는 부담이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가 겹치면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다시 가계 소비 트렌드로 올라섰다. 충동구매를 줄이고 목적이 분명한 필수재 위주의 절약 소비만 추구한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절약 꿀팁, 재테크 방법 등을 공유하고 있다.
‘요노’ 트렌드도 있다. 요노는 ‘You Only Need One’의 줄임말로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의미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즐기자’ 의미가 있는 욜로(YOLO)의 반대 개념이다.
의류는 1년 이내에 소모되는 비내구소비재다. 경기변동에 대한 영향이 적은 내구소비재와 달리 비내구소비재는 타격이 크다. 이때문에 의류는 경기가 악화하면 가장 먼저 줄이는 항목으로 꼽힌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재정 상황이 악화될 경우 외식비, 의류비, 식료품비 등의 순서로 지출을 줄인다. 특히 1인가구의 경우 의류 지출을 가장 먼저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11월 소비지출전망 CSI(소비자동향지수) 항목 가운데 의류비는 97로 나타났다. CSI는 6개월 뒤 지출을 더 늘릴지 여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알 수 있다. 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응답이 더 많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고금리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로 인해 겨울옷 판매가 기대보다는 저조하다”며 “겨울만 기다리며 버텼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 할인 프로모션 등을 대대적으로 진행해 판매 촉진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