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젊게·짧게·적게…승진 ‘바늘구멍’ 통과한 뉴페이스 CEO들

[비즈니스 포커스]


5대 그룹(삼성·SK·현대차·LG·롯데) 부회장·사장 승진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5대 그룹의 정기 임원인사가 거의 마무리 됐다. 연말 재계 인사 키워드는 조직 슬림화, 기술통의 약진, 트럼프 시대 대응으로 요약된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 환경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한 탄핵 정국이 겹치며 기업들은 대내외 복합위기에 맞닥뜨렸다. 내년 경제 전망은 더 암울하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 중후반대 수준으로 속속 낮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인사에서 임원 승진을 최소화하고 임원 규모도 축소하고 있다.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향후 임원 승진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올해 임원 승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기업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영미 커리어케어 사장은 “임원 인사에서 연령대는 젊어지고 임기는 짧아지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3년을 채우면 오래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며 “LG그룹이 올해 1980년대생 임원 4명을 발탁했고 이제 1960년대생 대표이사 선임은 거의 없다”고 했다.

또한 “최소 단위 임원 인사로 공석을 채우기보다 업무 성격이 다소 다르더라도 조직을 통합해 한 명의 임원이 통합관리하는 조직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5대 그룹, 임원 승진·규모 축소 기조 뚜렷

주요 그룹 인사 트렌드를 살펴보면 삼성전자에서는 지난해(143명)보다 6명(4%) 줄어든 137명의 임원 승진자가 나왔다. 사장 승진자는 2명이었다. 이번 인사는 반도체 경쟁력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메모리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전환하고 파운드리 사업부장을 교체했다.

기존 대표이사인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과 함께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을 추가로 내정해 2인 대표이사 부회장 체제를 복원했다.

파운드리 사업부에는 한진만 DS부문 DSA총괄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탁했다. 파운드리 사업부에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해 ‘기술통’ 남석우 DS부문 제조&기술 담당 사장에 맡겼다. 미래전략실 출신 ‘전략통’ 김용관 사업지원TF 부사장은 DS부문 경영전략담당 사장으로 승진시켜 반도체 경영전략을 맡겼다.

SK그룹도 2명의 사장 승진자를 배출했다. 주요 계열사들이 이미 연중 수시 인사를 통해 경영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만큼 연말 정기 인사는 예년보다 소폭에 그쳤다.

손현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전략지원팀장(부사장)이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고 안현 SK하이닉스 N-S Committee 담당(부사장)이 개발총괄(CDO) 사장을 맡게 됐다. 인공지능(AI)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전략·글로벌위원회 산하에 있던 AI·디지털전환(DT) TF를 ‘AI 추진단’으로 확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을 위한 인사도 단행했다. 올해 상반기 SK그룹의 북미 대외 업무 컨트롤타워로 신설된 SK아메리카스는 대관 총괄에 폴 딜레이니 부사장을 선임했다. 폴 딜레이니 부사장은 미 무역대표부(USTR) 비서실장, 미 상원 재무위원회 국제무역고문 등을 역임하다 지난 7월 SK아메리카스에 합류했다.

신규 임원은 지난해(82명)보다 7명(9%) 줄어든 75명으로 이 중 3분의 2가 사업, R&D, 생산 등 현장·기술 분야에 특화된 인물이다. 신규 임원 평균 연령은 만 49.4세로 지난해(만 48.5세)보다 1살 높아졌다. 최연소 신규 선임 임원은 1982년생인 최준용 SK하이닉스 HBM 사업기획 담당이다.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 사진=연합뉴스


벌써 1960년대생 퇴장, 1980년대생 전면에

현대차그룹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39명의 임원 승진자를 배출했다. 지난해(252명)보다 13명(5%) 줄어든 규모지만 주요 그룹 중 승진자 수가 가장 많았다.

이번 인사에선 전체 임원 중 40대 비중을 2020년 21%에서 올해 41%로 2배가량 확대하며 세대교체에 힘을 실었다. 이번 인사에서 부회장 1명, 사장 4명이 승진했다.

삼성, SK, LG가 3년째 부회장을 배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에서 오너일가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이후 처음으로 부회장이 나왔다. 지난 11월 승진한 장재훈 현대차 완성차담당 부회장 내정자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은 대표이사로 전격 내정됐다. 현대차 사상 최초의 외국인 CEO다. 미국 외교관료 출신인 성 김 현대차 고문역은 대외협력·정세분석·PR 등을 관할하는 현대차그룹 싱크탱크 사장으로 임명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을 겨냥한 인사로 분석된다.

최준영 기아 국내생산담당 및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와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은 각각 사장으로 선임됐다. 정식 부임은 내년 1월 1일이다.

LG그룹의 올해 인사 기조는 미래사업과 R&D 강화였다. 사장 2명을 포함해 전체 승진 규모는 지난해(139명) 대비 18명 줄어든 121명, 이 중 신규 임원은 86명(지난해 99명)이며 신규 임원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와 같은 49세다.

김영락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과 현신균 LG CNS 대표이사가 사장으로 승진했다. 차별화된 미래 사업 역량 확보와 성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전체 신규 임원 중 23%(28명)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에서 발탁했다.

특히 AI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연구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3명을 포함해 1980년대생 임원 4명을 신규 선임했다. 이로써 1980년대생 임원은 총 17명이 됐다. 신규 임원 21명을 포함해 그룹 R&D 임원 수는 218명으로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사진=연합뉴스


“탄핵 정국·트럼프 시대, 대관·통상·전략통 수요 증가”

롯데그룹은 올해 역대급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58개 계열사 가운데 18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이를 통해 계열사 CEO 21명(36%)을 교체됐다. 임원 22%가 퇴임하면서 임원 규모도 지난해 대비 13% 줄었다.

롯데그룹의 주력인 화학·유통업이 침체를 겪고 있는 데다 최근 유동성 위기설까지 돌면서 비상경영체제에 걸맞게 ‘조직 슬림화’에 나선 것이다. 60대 이상 임원의 80%가 물러났고 1970년대생 CEO 12명을 대거 내정해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젊은 리더십을 전진배치했다.

이번 인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롯데그룹은 1986년생인 신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임원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그룹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된 롯데 화학군 총 13명의 CEO 중 지난해 선임된 3명을 제외한 10명을 교체했다. 롯데케미칼은 1년 만에 수장을 교체하고 미등기 임원 30%를 축소했다. 화학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대표이사 이영준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롯데 화학군 총괄대표를 맡겼다. 이 사장은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이사를 겸임한다.

기업들은 내년 정권교체 등 경영환경 불확실성에 대비해 대관업무 조직은 물론 외환 및 관세 문제를 담당하는 통상 업무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이영미 사장은 “새로운 성장 기회를 잡기 위한 투자, M&A가 활발해지면서 대관, 통상, 전략기획, M&A 관련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인재에 대한 욕심과 투자가 없는 기업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적극적인 인재 기용과 AI 등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위기 관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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