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용으로 진화하는 로봇 개[테크트렌드]



군사용 로봇은 한동안 금기시되던 이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무력 충돌과 유혈 분쟁이 확산되고 세계 각국의 국방력 강화 움직임이 커지면서 군사용 로봇의 개발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최초의 로봇 개는 2020년 출시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민수용 로봇 개 스팟(Spot)이었지만 그에 앞서 상용화가 추진된 최초의 로봇 개는 군사용인 빅독(Big Dog)이었다. 로봇 개의 최대 장점은 우수한 이동 성능지난 8월 실제 전쟁터에서 사족보행로봇, 속칭 로봇 개(Robot Dog)가 사용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로봇 시장이나 방산업계에서는 로봇 개가 군용 장비로써 다양한 장점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대표적인 장점으로는 어떤 지형이든 돌파할 수 있는 다리를 이용한 보행 방식을 든다. 육상 이동 수단에 대한 미 국방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상 지표면에서 이동하고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어떤 이동 방식을 쓰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바퀴로 갈 수 있는 영역은 불과 30%, 무한궤도로는 약 50% 정도에 그치지만 다리로는 거의 모든 지형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AMR(Autonomous Mobile Robot)과 같은 바퀴 방식의 이동 로봇이 상용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봇 개가 여전히 개발되고 있다. 다양한 로봇들 중에서 참호, 경사지, 장애물 등 다양한 지형에서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다리로 이동하는 로봇 개 또는 아직 미완의 기술인 휴머노이드뿐이기 때문이다.

로봇 개는 심지어 전쟁터의 게임체인저로 불리고 있는 드론보다 우수한 면이 많다. 드론보다 더 크고 더 무거운 물체를 운반할 수 있고, 더 긴 시간 동안 작동할 수 있으며, 바람의 영향도 훨씬 덜 받는다.

그 결과 드론이 관측, 공격, 소형 경량물체 운반 등에 한정적인 임무만 수행할 수 있는 데 반해 로봇 개는 한층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포탄, 식량 등 크고 무거운 각종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기관총, 로켓포 등 크고 무거운 무기를 탑재해서 위험 지역을 정찰, 감시하거나 험지를 돌파해서 적진의 참호에 진입할 수 있다. 덕분에 병사의 생존성 향상과 인명 손실 방지를 통한 병력 부족 문제 해결에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로봇 개는 기술적 개선의 여지를 많이 안고 있다. 가장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동력원이다. 최초로 상용화에 근접했던 로봇 개는 20여 년 전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했던 군사용 사족보행로봇 빅독이었다.

빅독은 미국 DARPA의 자금 지원을 받아 개발된 군수물자 수송용 로봇 개였다. 빅독은 길이 0.9m, 높이 0.8m, 무게 110kg의 작은 당나귀만 한 크기에 약 150kg의 물건을 싣고 운반할 수 있었다. 빅독의 최대 특징은 소형 2행정 1기통 15마력의 가솔린엔진을 동력원으로 삼는 점이었다.

빅독의 동력원으로 가솔린엔진이 사용된 이유는 고객인 미 해병대가 요구하는 기본 성능, 즉 수백 kg의 고중량 군수품을 먼 거리에 있는 최일선 기지까지 장시간 운반할 수 있는 성능을 배터리, 모터 기반의 전기 동력원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년 후 빅독을 기반으로 대형화한 시제품인 로봇 개 LS3(Legged Squad Support System)은 우수한 운반 성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모두 들릴 만큼 큰 가솔린엔진의 소음과 유지·보수의 어려움 때문에 군용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고 상용화에 실패했다.

이후 등장한 스팟 등의 로봇 개들은 모두 전기 모터와 배터리 기반의 전기 동력원을 채택하고 있어 소음 문제는 해결했지만 20kg대에 그치는 가반 하중, 고온이나 저온에서 민감하게 변화하는 가동 시간 등 개선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민간용에서 군사용으로로봇 개의 상용화가 재추진된 계기는 보행 성능과 유지·보수의 편의성을 한층 개선한 로봇 개 스팟의 등장이다. 2019년 출시된 스팟은 가솔린엔진 대신 전기 모터를 동력원으로 삼아서 한층 조용하다. 그러나 운반 가능한 중량이 약 20kg 정도에 그치는 약점도 생겼다.

스팟은 운송 수단이라기보다 탐지, 감시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작업용 로봇으로 소개되었다. 또한 스팟의 용도는 민수용으로 한정되었다. 학계,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여론이 로봇을 경찰과 같은 법집행기관이나 군대에서 무기로 전용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스팟의 출시 초기 미국 매사추세츠 경찰이 순찰견 대체용으로 시범 운용했다가 인권단체 등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한동안 중국 유니트리로봇틱스(Unitree Robotics) 등 대부분의 사족보행로봇 기업들은 민수용 로봇 개의 개발에 집중했다.

최근 늘어나는 군사용 로봇 개의 개발 시도는 세계 각지에서 확산되는 무력 충돌,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민수용 드론의 무기화 등 각종 로봇 무기의 시연장이 되고 있다.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 등으로 군 병력을 유지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선진국이나 지속되는 전쟁으로 병력 소모를 체감하는 전쟁 당사국들 모두 인명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로봇 무기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다.

동영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공개된 로봇 개는 영국 기업이 만든 BAD-2이다. BAD-2는 중국 유니트리의 로봇 개 Go-2를 군사용으로 개조한 모델이다. BAD-2는 기반 모델인 Go-2처럼 자율주행 또는 원격조종으로 작동할 수 있고 최대 가동 시간은 약 3시간이다. 최대 이동 거리는 약 30km에 달하지만 가반 하중이 7.5kg에 그쳐 용도는 참호 수색, 정찰, 감시, 지뢰 등 폭발물 탐지 등의 임무에 특화되어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스팟은 현재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이 경호용 장비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의 사저 ‘마러라고’에 배치된 스팟은 원격조종 또는 미리 프로그래밍된 경로를 따라 자동 이동하는 식으로 사저 인근 지역을 순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개발 단계에서부터 군사용으로 만들어진 로봇 개는 미국 고스트로보틱스의 비전60(Vision 60)이다. 비전60은 야간에도 시각 인식 기능을 통해 험지, 계단, 부서진 난간이나 계단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자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IP67 등급의 방수, 방진 설계로 악천후에서도 운용 가능하다.

가반 하중이 다른 로봇 개보다 다소 여유 있는 20kg대여서 로봇 팔, 정찰용 드론 등 각종 전술 장비를 달고 정찰, 탐색 외의 작업도 가능하다고 한다. 여타 로봇 개와 차별화되는 비전60의 장점은 유지·보수의 편의성이다. 여타 로봇 개와 달리 대부분의 부품이 모듈화되어 있어서 전문 인력이 없더라도 현장에서 교체, 수리할 수 있어서 비전60은 군사용 로봇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