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탈원전' 원점 되돌아가나…원전 르네상스 '안갯속'

'탄핵 정국' 정책 표류 현실화
'탈원전 5년' 고사 위기 몰렸던 업계 위기감

신고리 1·2호기.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윤 정부의 경제정책 추진 동력이 상당 부분 상실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14일 가결됨에 따라 원전 산업 부흥, '대왕고래' 가스전 개발, 반도체 산업 지원 등 핵심 산업 정책 동력이 약화할 전망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고사 위기에 몰렸던 원전업계의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이 내년 3월이 시한인 체코 원전 수출 계약 확정 여부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체코 당국은 아직 한국과 계약 추진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정 불안이 체코 원전 수출 계약의 전제 조건이 될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의 지식재산권 분쟁 타협안 도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에서는 한수원이 체코 원전 수출과 관련해 웨스팅하우스에 조단위 로열티 혹은 일감을 주고, 향후 제3국 원전 수출도 공동 도모하는 내용의 합의안 도출이 막판 단계에 다다랐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전 확대 반대하는 민주당, '11차 전기본' 원점 재검토 가능성

신규 대형 원전 3기 건설을 포함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확정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11차 전기본은 2024년~2038년까지 15년간 적용되는 정부의 에너지계획안이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초에 확정될 계획이었으나 4·10 총선 등으로 인해 5월에서야 실무안이 나오면서 전체적으로 미뤄졌다. 전기본 확정을 위해서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국회 보고를 거쳐야 한다.

11차 전기본의 핵심은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분야에서의 전력수요를 충당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태양광·풍력발전 등 신재생설비와 원전을 균형 있게 늘림으로써 2038년까지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의 70% 이상을 '무탄소전원(CFE)'으로 채운다는데 방점이 찍혔다.

당초 정부는 11차 전기본을 통해 2038년까지 최소 3기의 신규 대형 원전을 건설하고, 2035년부터 첫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가동하는 내용을 담은 11차 전기본안을 마련해 이르면 이달 국회 보고 절차를 거쳐 확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탄핵소추안 가결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야권이 정국 주도권을 가져가게 돼 전기본이 국회 보고 문턱을 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요구하며 11차 전기본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에 있는 방폐장 인수저장 건물에 중·저준위 방폐물이 보관돼 있다. 사진=한국원자력환경공단


2030년 폐기물 꽉 차는데 '고준위 특별법' 정쟁 휘말려 하세월…수출 최대 걸림돌

원전산업 성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도 2016년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수년째 공전하며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됐지만, 여야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을 가동하면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외부에 저장하거나,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과 중간 저장 시설 등을 건설하는 내용이다. 여야도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원전 확대를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하지 않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시설(방폐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폐기장 설치를 지원할 법안은 8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은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의 포화가 오는 2030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빛원전이 2030년, 한울원전이 2031년, 고리원전이 2032년 각각 포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임시저장소가 용량 한계에 도달하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1년 12월 수립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한국에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기까지는 최소 3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지 선정 절차에 13년, 시설 안전성 검증에 14년, 실제 방폐장 건설에 14년 등이 소요된다.

업계에서는 고준위 특별법 제정 없이는 국내 원전의 안정적 운영과 해외 수출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원전 주요 전원으로 활용하는 국가에서 고준위 방폐장 건설 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인도 정도다. 방폐장 없이는 환경 규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럽으로의 수출도 제약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422개 원자력 회원사로 이뤄진 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협회는 지난 11월 25일 고준위 특별법 조속 제정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에 전달했다.

美, 전력수요 폭증에 멈췄던 원전 다시 돌려…전 세계가 '친원전 유턴'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센터, AI 반도체 클러스터 확충 등으로 향후 전력 소비가 급증할 것을 고려하면 고준위 특별법 통과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에만 기대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맞춰 탄소중립 전환이 어렵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 재가동이 추진되고 있다. 스리마일섬 원전은 1979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로 불리는 원자로사고가 났던 곳이다. 이번에 재가동이 추진되는 곳은 사고가 발생했던 2호기와 다른 1호기다.

AI 데이터센터 건립이 크게 증가하는 등 전력수요 폭증으로 2019년 경제성을 이유로 폐로됐던 원전의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이다. 재가동되는 원전 1호기는 마이크로소프트(MS)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해 원전 제로 정책을 유지해온 일본도 최근 친원전 정책으로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2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이 3년 만에 개정하는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에서 원전과 관련해 "가능한 한 의존도를 저감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대신 "최대한 활용한다"고 명기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노심용융(멜트다운) 사고를 계기로 자국 내 모든 원전 운전을 일시 정지했으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인공지능(AI) 보급 등으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원전 가동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신규 원전을 6기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올해 1월 8기를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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