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M&A 시장 꿰뚫은 5가지 키워드 [베인의 위닝 전략]

[베인의 위닝 전략]

2024년 2월 미국 금융사 캐피털원이 신용카드 브랜드 ‘다이너스 클럽’을 보유한 디스커버파이낸셜을 35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사진=AP·연합뉴스



최근 몇 년간 침체를 겪었던 인수합병(M&A) 시장이 올해 모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전 세계 M&A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4% 증가한 3조4000억 달러(약 4779조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M&A 시장이 성장세로 돌아선 것은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약 4년 만이다. 여전히 높은 금리와 얼어붙은 투심으로 많은 기업 경영진이 선뜻 M&A 시장에 뛰어들지 못했지만 시장 회복을 염두에 둔 일부 기업의 과감한 딜이 눈에 띄었던 한 해였다.

올해 글로벌 M&A 시장을 관통한 키워드는 △스케일딜(scale deal) △인공지능(AI) △반독점법 △ESG △디지털전환 5가지로 요약된다.

① 확실한 성과를 노리는 ‘스케일딜’의 부상

올해 M&A 시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스케일딜’의 급증이다. 스케일딜은 신규 시장 진출보다는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를 주된 목표로 하는 M&A를 말한다.

올해 스케일딜은 전체 M&A 거래 가치의 59%를 차지하는데 이는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높은 금리와 불확실한 시장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비교적 확실한 성과가 보장되는 M&A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스케일딜은 매출 증가뿐 아니라 비용 절감 효과까지 노리는 정교한 접근이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스케일딜은 미국 금융회사인 캐피털원과 디스커버의 350억 달러 규모 합병이다. 이 M&A는 고객층 확대와 더불어 결제 시스템 통합을 통해 운영비를 절감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천연가스 회사인 원오크가 59억 달러를 투자해 보관·운송 등 ‘미드스트림’ 업종의 메달리온을 인수한 것이 주요 스케일딜로 꼽힌다. IT업계에서는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가 네트워크 기술을 확장하기 위해 140억 달러에 주니퍼를 인수한 것이 주목을 받았다.


최근 20년간 글로벌 M&A 시장 거래 규모 추이. 자료=베인앤드컴퍼니·그래픽=송영 기자


② 치열해지는 AI 기술 확보전

AI 등 신기술 확보를 위한 M&A도 활발했다. 대표적으로 디즈니는 메타버스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려 ‘포트나이트’ 게임으로 잘 알려진 에픽게임스의 지분 9%를 인수했다.

한국에서는 LG전자가 사물인터넷(IoT)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스마트홈 하드웨어 기업인 앳홈의 지분 80%를 인수했고, 영국 미디어 기업인 톰슨로이터는 이른바 ‘로테크’ 기술 강화를 위해 법률 특화 AI 모델을 개발하는 세이프사인테크놀로지스를 인수했다.

올해 시장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M&A 실무에서도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M&A 거래 초기 단계에서 AI로 소싱, 검토, 실사 과정을 일부 자동화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한발 더 나아가 데이터를 더욱 정교하게 분석하고 거래 구조와 통합 전략을 최적화해 대형 거래에서 발생하는 복잡성을 줄이는 도구로 AI를 활용하는 실무자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M&A 실무자 20% 이상이 생성형 AI를 활용했으며 이를 통해 거래 속도를 높이고 검토 과정에서의 정확성을 강화했다고 한다.

③ 거세지는 반독점법 역풍


올해 M&A 시장에서는 강화된 반독점법이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반독점법 소송이 거세진 미국과 유럽 지역의 기업들은 M&A 협상 추진 기간을 일부러 지연시키고 거래 구조도 재설계하는 등 규제 대응이 주요 기업 경영진의 주된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예컨대 미국 반도체 회사인 퀄컴은 반독점법 소송을 우려해 인텔 인수 추진을 미국 대선 이후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모든 M&A 의사결정이 반독점법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규제 심사 부담으로 중간 규모의 거래가 특히 줄어든 반면, 50억 달러 이상의 초대형 거래는 여전히 시장의 핵심 흐름을 형성했다.

올해도 초대형 거래는 10건 이상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미국 반도체 설계업체인 시놉시스의 앤시스 M&A와 미국 식품업체 마스의 360억 달러 규모 켈라노바 M&A는 성공적으로 규제를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모든 국가의 규제 환경이 까다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인도는 M&A 승인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고 일본은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M&A를 촉진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업들은 규제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고 더 정교한 스크리닝과 거래 구조 설계를 통해 상이한 규제 환경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④ ESG 강화 목적 M&A도 견조

최근 ESG 열풍이 다소 식은 모습이지만 올해도 ESG를 염두에 둔 M&A가 적지 않았다. 기업들이 단순히 매출 증대와 비용 절감을 넘어 환경·사회·거버넌스(ESG)를 강화하는 데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투자자와 소비자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트렌드에 따른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스위스 건축기업인 홀심은 친환경 건축 자재 생산 강화를 위해 벨기에 재활용 회사 두 곳을 인수했다. 이러한 거래는 순환경제와 탈탄소화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산업의 변화를 반영한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기업들은 M&A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며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중심의 거래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규제 리스크를 줄이고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열어주는 수단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⑤ M&A로 디지털 역량 강화

디지털전환은 올해 M&A 시장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트렌드였다. 특히 대형 기업들이 M&A를 통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미국 통신 대기업인 버라이존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프런티어커뮤니케이션을 203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인수 프리미엄이 30%에 달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양사 모두 공식 입장은 자제하고 있지만 버라이존 입장에서는 디지털 네이티브 고객층을 확보하고 데이터 중심의 미래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도 디지털전환은 중요한 고려 변수였다. 대표적으로 어도비는 크리에이티브 기술을 강화하기 위해 AI 기반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프레임닷아이오(Frame. io)를 인수했다.

디지털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재구성하며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이 과정에서 M&A는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 M&A 시장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한 해였다. 스케일딜은 안정적인 가치를 제공하며 시장을 주도했고 AI는 거래를 더 효율적이고 정교하게 만들며 혁신을 이끌었다.

반독점법 강화로 인해 기업들이 거래 전략을 재조정했으며 지속가능성과 디지털전환은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 5가지 키워드는 내년에도 M&A 시장을 관통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변화와 도전 속에서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M&A는 단순한 거래를 넘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략적 도구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윤성원 베인앤드컴퍼니 대표파트너. 사진=베인앤드컴퍼니



윤성원 베인앤드컴퍼니 대표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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