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평수도 ‘옥석 가리기’…집값 상승은 이제 부자들만 누리나[비즈니스 포커스]

급등한 시세·분양가에 비싼 대형아파트 부담 커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분양한 아페르 파크 거실 CG화면. 아페르 파크 제공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하락세를 탈 것만 같았던 전용면적 85㎡ 초과 대형 면적 아파트가 선전하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에도 시세가 오르고 있는 데다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선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주택시장이 실수요 위주로 전환되면서 쾌적한 주거환경과 ‘똘똘한 한 채’를 찾는 수요가 집중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의 재건축 규제완화로 인해 대형 타입 아파트는 비싸지만 높은 대지 지분을 보장하는 투자 상품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투자 주의보’를 알리기도 한다. 본격적인 하락기가 왔을 때 덩치가 크고 환금성이 떨어지는 대형 아파트는 ‘물리기 딱 좋은’ 투자처다.

이미 서울에서도 비강남권 대형 아파트는 청약 미달과 ‘마피’(분양권 가격이 최초 분양가보다 낮아진 ‘마이너스 프리미엄’ 상황)에 시달리고 있다. 몇 년 새 오른 집값과 분양가 상승으로 대형 아파트 가격이 부유층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자가 찾는다” 호가 그대로

대형 아파트는 지난 상승기 이후 다시 주택시장에서 부활해 ‘부의 상징’으로서의 지위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KB부동산이 집계한 월간시계열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 전용면적 135㎡를 초과하는 서울 아파트의 평균가격은 30억5145만원으로 전년 동월 28억8157만원보다 5.9% 올랐다. 이는 각 면적대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2000년대 아파트 시장을 주도하던 대형 아파트는 2008년 뉴욕발(發) 금융위기 이후 암흑기를 맞아야 했다. 가족 구성원이 줄고 있는 데다 젊은 맞벌이 부부가 선호하는 ‘직주근접’ 지역의 소형 아파트로 트렌드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중장년층이 선호하던 수도권 신도시 대형 아파트가 큰 타격을 받았다. 2010년 입주한 고급 브랜드 아파트 경기 용인시 수지구 소재 ‘래미안 이스트팰리스’ 전용면적 149㎡ 타입은 2015년까지도 분양가인 9억6000만원보다 2억원 저렴하게 거래될 정도였다. 이처럼 대세가 대형에서 소형으로 넘어가자 재건축 등 민간아파트에 대한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84㎡) 이하 중소형 의무 공급 규제도 점차 완화됐다.

그런데 2016년을 기점으로 다시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우선 중소형 아파트 시세가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대형 가격이 밀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아크로 리버파크’는 2019년 전용면적 84㎡가 34억원에 거래돼 3.3㎡당 1억원을 기록한 이듬해 같은 단지 대형 타입인 전용면적 112㎡와 전용면적 129㎡도 각각 3.3㎡당 1억원에 육박한 43억원과 48억5000만원에 손바뀜됐다. 강남이 주도한 집값 상승세가 서울 인근 지역과 수도권 전역으로 퍼지면서 신도시 대형도 도미노식으로 시차를 두고 예전 가격을 돌파했다.

게다가 아예 부유층을 대상으로 지어진 서울 핵심지역 대형 아파트들은 3.3㎡당 1억원을 넘기며 “대형이 단위면적당 가격은 중소형보다 낮다”는 통념도 사라지게 했다. 전용면적 206㎡부터 273㎡까지 초대형으로 구성된 ‘나인원 한남’은 매매 거래가 시작된 2021년 이후 가격이 주춤하지 않고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 단지에서 가장 작은 전용면적 206㎡ 타입은 올해 7월 110억원에 거래됐다.
청약 미달, 비싼 중대형에 집중
재건축 시장에서도 대형 아파트는 인기다. 초기투자금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조합원 분양 시 좋은 물건을 받을 수 있어서다. 통상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새 아파트 조성할 때 단지가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고급아파트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대형 아파트 세대를 일부 구성하는 사례가 많다. 가격 접근성이 높은 소형 매수 수요가 많아도 매물이 부족하면 자금력을 갖춘 매수인은 대형을 사들이기도 한다. 압구정 현대 11차 전용면적 183㎡는 지난 11월 86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분양시장에서 대형 아파트 선호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공급가격이 전반적으로 너무 오른 탓이다. 올해 4분기 들어 서울에서 일반분양을 실시한 민영아파트 중 미달이 난 곳은 11월 노원구 월계동에서 공급된 ‘서울원 아이파크’뿐이었다.

서울원 아이파크는 향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노선이 정차하는 광운대역 역세권 개발사업으로 조성되는 주상복합 단지로 노원구 내에선 최고 입지에 속한다. 그런데 1순위 청약 결과 전용면적 105~240㎡ 중대형 16개 타입 중 8개 타입에서 미달이 나왔다. 161㎡ 타입은 2순위에서도 청약이 마감되지 못했다. 서울원 아이파크 분양가는 가장 좁은 전용면적 59㎡ 타입이 9억원대로 161㎡는 20억원이 넘는다.

서울원 아이파크 외에 대형을 공급한 단지는 서초구 방배삼익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탄생하는 ‘아크로 리츠카운티’로 전용면적 144㎡가 최고 38억4170만원에 공급됐는데도 2가구 입주자 모집에 250건 신청이 몰리며 125대 1 경쟁률을 기록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최근 분양가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전용면적 84㎡ 타입 분양가가 15억원에 육박하는 곳도 생겼다”며 “그 지역에서 그 정도 가격을 받아줄 수 있는 소비자가 있어야 미분양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수’보다는 ‘동네’
준서울인 광명에서는 입주를 시작한 재개발 아파트에 ‘마이너스 피’가 붙기도 했다. 광명뉴타운 제2R구역 재개발로 공급된 ‘트리우스 광명’은 전용면적 84㎡ 이상 중대형 세대 중 평면이나 층에 따라 2000만~3000만원가량의 마피가 붙었다. 지난해 10월 후분양을 통해 비싸게 공급된 가운데 잔금까지 금방 다가왔기 때문이다. 자금조달을 하기 어려운 일부 수분양자들은 가격을 깎아서라도 팔아야 하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조합원들이 대형을 차지하고 소형 아파트가 일반분양에 나오게 되는데 해당 단지는 재건축 조합원들 대부분이 전용면적 59㎡를 신청하면서 가격대가 높은 중대형이 분양시장에 나오게 됐다.

이에 대해 한 광명 주민은 “광명 대형 아파트를 굳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사는 것보다 인(in)서울 더 좋은 동네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매수하는 게 투자 관점에서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자금조달의 측면은 물론 1~2인 가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고려했을 때 실거주가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대형 아파트 매수는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서남권에서 사업 등을 통해 고소득을 올리는 계층 상당수가 목동에 살 듯 일부 고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에서만 대형 아파트 수요가 받쳐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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