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개봉을 앞둔 픽사 애니메이션에서 트랜스젠더 서사를 삭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이루어진 변화라는 점에서, 정치적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7일(현지 시각) CNN과 더 할리우드 리포터(THR)는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이기거나 지거나(Win or Lose)’의 후속 에피소드에서 성 정체성과 관련한 대화를 편집했다고 보도했다.
‘이기거나 지거나’는 내년 2월 19일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 예정인 8부작 시리즈다. 남녀공학 중학교 소프트볼팀 ‘피클스’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캐릭터의 시점에서 풀어내는 형식이 특징이다.
CNN은 디즈니의 이번 결정이 트럼프 행정부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DEI(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정책에 반대하는 트럼프 당선인을 의식해 LGBTQ+(성소수자) 내용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디즈니는 이번 결정이 이미 여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디즈니 대변인은 해당 이야기가 삭제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많은 부모가 특정 주제에 대해 자녀와 직접 논의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THR에 입장을 밝혔다.
디즈니는 LGBTQ+ 서사를 담은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 2022년 동성애 관계를 포함한 ‘라이트이어(Lightyear)’와 게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트레인지 월드(Strange World)’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시 이들 작품은 일부 보수 단체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후 2022년 말 취임한 밥 아이거 최고경영자(CEO)는 디즈니 일부 콘텐츠가 정치적으로 변했다며 프로젝트 검토를 지시했다. 그는 같은 해 뉴욕 행사에서 “관객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며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 제작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론 스토리텔링보단 메시지 전달을 우선시하는 방식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CNN은 “이미 많은 기업이 압력과 위협에 대응해 DEI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THR 역시 “정치적 민감 콘텐츠에 대한 조정은 디즈니뿐만이 아니다”라면서 헐리우드 전체가 트럼프 행정부 시대를 대비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