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샤, 1세대 로드샵 부흥기 이끈 뷰티 브랜드
보아·동방신기·김혜수 등 모델로 쓰며 인기
트렌드 변화로 H&B스토어 올리브영에 밀려
매출, 4000억원대에서 2000억원대로 추락
다시 살아나는 미샤, 외국서 인기
빠르게 접목한 트렌드와 SNS 적극 활용
빨간 꽃무늬 가운데 검은색으로 적힌 ‘미샤(MISSHA)’는 2000년대 뷰티 유행의 정점에 있었다. 10대 청소년 대부분이 미샤 로고를 연상케 하는 꽃모양 부채와 꽃모양 거울을 가지고 다녔고 딸기향이 나던 요거트팩을 안 써본 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미샤는 로드숍 시대를 연 주인공이자 신화로 불렸다. 명동, 강남역 등 가장 비싼 번화가에 점포를 내며 여성들을 끌어들였다. 2010년 들어 여러 브랜드를 한번에 볼 수 있는 올리브영, 롭스, 랄라블라(왓슨스) 등 인기를 얻으며 화장품을 소비하는 공간이 로드숍에서 ‘H&B(헬스앤뷰티) 스토어’로 바뀌기 전까지는.
로드숍은 몰락했고 미샤는 추억의 브랜드가 됐다. 미샤가 주름잡던 저가 브랜드 자리는 유명 인플루언서 브랜드가 차지했다.
자취를 감춘 줄만 알았던 미샤가 살아났다. 심지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샤가 선보인 비비(BB)크림은 아마존 인기 상품이 됐다. 미샤는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 ◆ 동방신기·김혜수 쓰던 미샤, 고꾸라진 실적한때 미샤는 보아, 동방신기, 김혜수, 장동건, 원빈 등을 기용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1만원대 이하의 화장품을 판매하면서도 이미지 마케팅에서는 고급화 전략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2000년 국내 1호 로드숍으로 시작해 론칭 9년 만에 해외 19개국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미샤의 입지는 줄었다.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화장품 소비 트렌드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미샤와 같은 단일 브랜드숍에 비해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비교할 수 있는 H&B 스토어의 인기가 높아졌고 동시에 온라인쇼핑도 확대됐다.
1세대 로드숍인 미샤의 실적은 크게 악화했다. 2012년 매출 4523억원, 영업이익 536억원을 기록했지만 5년 뒤인 2017년 매출은 3733억원, 영업이익은 112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2018년에는 190억원의 영업적자까지 냈다. 이듬해 1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적자는 680억원까지 확대됐다. ◆ 재기 성공…글로벌로 향한 전략 미샤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매출은 1954억원, 영업이익은 141억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53.1% 급증했다. 3개 분기만으로 2023년 연간 영업이익(114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최근 2년간 영업이익은 흑자를 기록했으며 매출도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다. 심지어 해외에서 반응이 더 좋다. 그 배경에는 △글로벌 전략 강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흡수 △1020세대 중심의 SNS 활용 등이 있다.
미샤가 재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미국 중심의 전략 변화’다. 미샤는 2020년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며 진출을 결정했다. 2023년에는 브랜드 최초로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 올슨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했다. 엘리자베스 올슨은 ‘MZ세대 에르메스’로 불리는 미국 명품 브랜드 더로우의 창립자 애슐리 올슨과 메리케이트 올슨의 동생이다.
전략은 성공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 매년 열리는 프라임데이 행사에서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프라임데이에서 실적을 견인한 최대 공신은 미샤의 ‘M 퍼펙트 커버 BB크림’이다. ‘BB크림 카테고리’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행사가 끝난 이후 현재까지도 글로벌 브랜드와 상위권을 다투며 지속적으로 높은 인기를 보이고 있다.
미국 매출 가운데 아마존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50% 이상이다. 증권업계에서는 미샤가 K뷰티의 비중국 지역 모멘텀을 흡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2024년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걸그룹 트와이스 사나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했다. 글로벌 시장과 젊은층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해외 비중(2024년 3분기 기준)은 전분기 대비 3.6% 늘어난 58.5%에 달한다. 특히 유럽, 중동, 일본 시장에서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3분기 유럽과 중동지역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1.3%, 171% 늘었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유럽 국가와 중동 지역에서 각 나라별 특성에 맞춘 브랜드 포트폴리오 구축과 인플루언서 활용 등 맞춤형 마케팅 및 적극적인 채널 확장을 통해 얻은 성과”라고 설명했다. ◆ 빠르게 접목한 트렌드와 SNS 활용동시에 미샤는 빠르게 변화하는 뷰티 트렌드를 분석해 그에 맞는 전략을 펼쳤다. 미샤가 2023년 진행한 ‘뷰티 이즈 리얼리티’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는 ‘스킨 스트리밍(Skin Streaming)’이라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스킨 스트리밍이란 제품을 과하게 덧바르지 않는 화장법을 의미한다. 스킨케어 루틴을 3가지 또는 4가지로 줄이는 게 핵심이다.
내 피부에 필요한 성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제품만 사용해 낭비를 줄이고 이를 통해 환경보호에도 앞장서겠다는 소비자들의 책임감이 담긴 트렌드다. 한때 해외에서는 스킨 스트리밍의 일환으로 ‘욕실 세면대를 가볍게 만드는 법’(화장품을 줄이는 법) 등이 공유되기도 했다.
미샤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뷰티 이즈 리얼리티’ 캠페인은 ‘아름다움이란 많은 화장품 브랜드들이 보여주는 과장되고 꾸며진 상황이 아니라 모두의 평범한 일상에 담겨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에이블씨엔씨는 “현지 소비자 분석을 기반으로 한 제품 기획과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며 “요즘 트렌드에 맞춰 제품 기획을 효율적이고 간소화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패키징도 깔끔하게 바뀌었다. 제품의 효능을 알기 쉽도록 외관 디자인을 단순화했다. 예를 들면 미샤의 개똥쑥 라인은 개똥쑥 사진을 활용했고 비타씨플러스 라인은 상단 투입구를 노란색으로 만들었다. 또 같은 색으로 ‘C’를 크게 새겨넣었다. 소비자들이 제품 성분을 바로 파악할 수 있어 선택에 대한 피로도를 줄여준다.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한 미샤는 해외 전용 제품도 만들었다. 미국, 유럽을 타깃으로 선보인 ‘M 퍼펙트 커버 세럼 BB크림’은 미국 아마존에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핫 뉴 릴리스(Amazon Hot New Release) 페이스 메이크업’ 부문 1위를 달성했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이 제품의 초도 물량은 이미 완판됐으며 빠르게 증가하는 판매량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요인은 2030세대를 타깃으로 SNS 마케팅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미샤는 뷰티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글로벌 숏폼 플랫폼 ‘틱톡’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미샤 BB크림을 사용하는 인플루언서의 영상은 100만 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틱톡 바이럴 영향력이 아마존 판매로 이어진다”며 “특정 제품이 한번 순위권에 오르면 다른 제품에 대한 관심도 생기기 때문에 틱톡은 중요한 마케팅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