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CDMO 시대…론자는 어떻게 K-바이오의 ‘워너비 기업’ 됐나[비즈니스 포커스]
입력 2025-01-07 06:00:23
수정 2025-01-07 06:00:23
화학→바이오 기업으로 변신, CDO 위주 업력 쌓으며 시장 선도해
“한국의 론자를 만들겠다.” “론자에 버금가는 기업이 되겠다.”
지난해 한미약품에 이어 최근 셀트리온 등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바이오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에 진출했다. 그들의 목표는 스위스 기업 론자(LONZA)처럼 되는 것이다. 론자는 오랜 기간 이 시장을 이끌어오며 CDMO의 대명사로 불리는 회사다.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함에 따라 CDMO 수요 역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바이오를 차세대 먹거리로 보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기회를 포착하며 발을 담그고 있다. 이미 빅파마 다수를 고객사로 확보하며 ‘글로벌 업체’로 성장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필두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론자가 태생부터 바이오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발전 및 화학 제조업체에서 출발해 변신을 거듭한 끝에 지금에 이르렀으며 여전히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추격자 입장인 국내 기업들이 론자의 성장 사례를 통해 배울 점이 많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온 생명공학 기술과 업력, 사업 규모의 벽은 높다. 치밀한 전략과 투자를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의 론자’에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전기·비료 만들다 바이오 회사로
이미 130년을 훌쩍 넘긴 론자의 역사는 그야말로 변화의 역사다. 론자라는 사명은 스위스에 위치한 론자강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1897년 창업해 론자강 오른쪽 제방에 발레(Valais)주 최초의 대형 수력발전소와 해당 발전소 전력을 활용해 가스램프에 사용하는 카바이드(탄화칼슘) 생산 공장을 지었기 때문이다.
1900년대 들어 전기조명의 등장과 제1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카바이드 수요가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은 론자는 질소비료를 생산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으로 사업 확장을 이어갔다. 이 시기 유럽, 미국 등에 해외 생산기지가 늘었다. 론자는 점차 스위스를 넘어 세계적인 화학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 같은 화학 기술을 바탕으로 론자는 1956년부터 합성 비타민B3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위궤양 치료제를 위탁생산하기 시작했다. 영국 제약사인 글라소스미스클라인이 개발한 이 치료제가 인기를 끌면서 자체 생산만으로는 필요한 물량을 공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론자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화학·유기물질에 대한 전문지식을 생명공학 분야에 적용하기 위해 연구조직을 신설했다.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바이오 분야에 발을 디뎠다. 1992년 체코 소재 바이오텍을 인수한 뒤 치료용 단백질을 제조하는 셀텍 바이오로직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론자는 이후 발전 및 화학사업을 단계적으로 매각하고 바이오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갔다. 2000년에는 미국 포츠머스에 2만L 생산능력을 갖춘 동물 세포 배양기 3대를 짓기 시작해 CDMO 사업의 기반을 닦았다. 바이러스 백신, 유전자 치료제 시장에서 자사만의 바이오의약품 개발 플랫폼을 선보이는 등 맞춤형 위탁사업의 업력을 쌓으며 업계 1위 선도업체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코로나19부터 ADC까지 기회↑
론자는 전 세계 CDMO 기업 중 매출 1위이며 미국을 비롯한 북미권과 유럽,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전역에 100개가 넘는 사업장을 갖추고 있다. 생산능력으로는 송도캠퍼스 4공장까지 60만L를 보유하며 세계 최대를 기록하게 된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밀리지만 이 같은 수치만으로 론자를 평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론자의 명성은 바이오 업계 전체에 큰 기회가 됐던 코로나19 확산 당시 확연히 드러났다. 모더나로부터 코로나19 mRNA 백신 원액을 독점 공급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고품질 원액 생산이 가능한 곳이다.
론자는 특히 위탁생산(CMO)보다 세포주 개발부터 맡는 위탁개발(CDO)에 특화됐다. 개발 분야 역시 mRNA 등 단백질의약품부터 표적항암제 종류인 항체약물접합체(ADC), 세포유전자체료제(CGT) 같은 차세대 유망 의약품까지 다양하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이뿐 아니라 “비임상 단계에서 필요한 약리독성시험과 정보학을 이용한 디지털 분석서비스 등 CRO(임상수탁) 영역의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어 엔드투엔드(End-to-End) 콘셉트에 맞는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고 평했다.
특히 ADC와 CGT는 아직까지 기술장벽이 높은 고부가가치 분야로 개발단계부터 패키징까지 전 주기의 의약품 생산이 가능한 곳은 론자가 유일할 것으로 알려졌다.
CDO·CRO 강화해야
론자는 물론 국내외 CDMO 기업들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기회가 더 급속히 커질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2030년까지 바이오시장 규모는 6000억 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의약품은 전통적인 케미컬의약품보다 원재료와 공정개발, 생산까지 전 과정이 복잡하며 높은 비용이 필요다. 이에 따라 CMO뿐 아니라 CRO, CDO까지 모두 위탁하려는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2024년 미국 상원 통과가 불발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도 올해에는 의회 문턱을 넘을지 주목된다. 국내 바이오업계에선 이미 글로벌 CDMO로 성장한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중국 경쟁사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고전하기를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시바이오로직스도 CDO에 특화된 업체인 만큼 론자처럼 CDO에 강한 곳이어야 생물보안법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론자는 2024년 최고경영자를 교체하고 바이오 CDMO, 그중에서도 차세대 의약품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캡슐 및 건강성분사업(CHI)에선 철수한다.
국내 기업들은 바이오시밀러 개발 및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CDO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최근 CDMO 법인인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 설립을 완료한 셀트리온도 바이오시밀러 특화 기업이다. 특히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는 수요에 맞춰 생산설비 투자를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그동안의 바이오시밀러 노하우를 바탕으로 CDO와 CRO 사업 등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025년 CDO와 CRO 사업 영업을 개시하고 CDMO와 연구시설도 구축할 것”이라며 “CMO만 해서는 1만L당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