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경영권 유지 위한 ‘집중투표제’…한화·현대차·LG라면 하겠나”

강성두 영풍 사장 인터뷰

[비즈니스 포커스]

강성두 영풍 사장이 1월 7일 서울 강남구 영풍그룹 사옥에서 한경비즈니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에 지분 6~7%포인트가량을 뒤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월 23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첫 표대결을 앞두고 ‘집중투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대표적 제도로 거론되지만 영풍·MBK 연합은 최 회장 측이 자신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은 상법상 ‘3% 룰’(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적용받더라도 최 회장 일가의 표만으로는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 회장 측 ‘우호세력’으로 분류돼 온 한화(8%), 현대차(5%), LG(2%) 등의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주)한화, 현대차, LG화학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 위원장도 최근 인터뷰를 통해 집중투표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강성두 영풍 사장은 1월 7일 서울 강남구 영풍 사옥에서 한경비즈니스와 만나 “임시주총에서 ‘우군’들이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고 판단해주길 바란다. 만약 고려아연 집중투표제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소속회사 주주들이 왜 여기 회사는 도입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변할 건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는 SK, 한화, 신세계, CJ, KT, 포스코, KT&G 등 극소수 기업만이 일부 계열사에서 채택 중이다. 한화그룹은 계열사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피인수 전부터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왔으나 폐지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계에서는 경영안정성 저하, 투기세력에 의한 경영권 공격 수단 악용 우려 등으로 집중투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우군들이 찬성표를 던지게 되면 자사에도 집중투표제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딜레마다.

현재 MBK·영풍이 고려아연 지분의 40.97%(의결권 46.7%)를 확보해 지분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한 상태다. 최 회장 측은 우호세력을 합해도 39.15%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약 3%의 고려아연 지분을 매도해 영향력(7.49%→4.51%)이 줄었지만 이번 임시주총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고려아연 지분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에서 ‘단순투자’로 변경했다. 일반 투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사 선임 반대나 배당 제안, 위법 행위 임원에 대한 해임 청구 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단순 투자는 경영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경영권 갈등에 대놓고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는 의도란 해석이 나온다.

강 사장은 “국민연금은 경영권 분쟁이 없는 일반적인 주총에서는 경영권을 존중하는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며 “사기업의 1대주주와 2대주주간 경영권 분쟁에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는 힘든 상황일 것이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했다.



강성두 영풍 사장은 1월 23일 예정된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윤범 회장 측 우호세력으로 분류되는 한화·현대차·LG 등과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이승재 기자




-영풍·MBK가 집중투표제 안건에 반대하는 이유는.

“최윤범 회장이 임시주주총회를 앞둔 시기에 느닷없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를 잘 살펴봐야 한다. 최 회장이 그간 자기주식 공개매수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등 겉으로는 소수주주 보호를 운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경영권 유지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와 시스템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집중투표제로 최 회장은 또 한 번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룰’을 바꿔버렸다.

최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사실상 가족회사인 유미개발을 동원해 집중투표제 안건을 임시주총 마감일에 임박해 기습적으로 주주제안한 것은 결코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국 국민연금과 다른 소수주주들은 집중투표제가 적용된다면 행사했을 수도 있는 이사 후보 추천권을 행사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최 회장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게 아니라면 집중투표제 도입은 향후 영풍과 MBK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한 제도라고 본다.”


-영풍과 고려아연 간 갈등이 촉발된 계기에 대해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영풍이 고려아연의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 추진을 건건이 반대했다는 최 회장 측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다. 영풍은 최대주주로서 고려아연의 신사업을 적극 지지한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75년간 동업하며 그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지분 희석은 하지 않는다’는 주주 간 협약을 통해 장 씨 가문은 영풍을, 최 씨 가문은 고려아연을 독립 경영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지켜왔다.

그런데 최 회장이 취임한 뒤 1대주주인 영풍의 동의 없이 2022년 8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감행해 한화를 끌어들이며 일방적으로 룰을 깼다. 경영권 분쟁의 신호탄이었다. 이전엔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

최 회장 취임 이후 한화 해외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5%의 신주를 발행한 것을 시작으로 2022년 11월 한화, LG화학 등에 6% 상당의 자사주 맞교환 및 매각, 2023년 현대차그룹 해외 계열사인 HMG글로벌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5%의 신주를 발행해 1~2년 사이에 16% 상당의 지분가치를 희석시키면서 자신의 우호세력을 확보했다.”


-2024년 3월 고려아연 정기주총에서 영풍과 고려아연은 첫 표대결을 벌였다. 당시 제3자 유상증자를 국내 법인에도 허용하는 ‘정관 변경안’이 영풍의 반대로 무산된 게 분쟁의 트리거가 됐다고 보나.

“고려아연 정관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요건이 굉장히 엄격하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시 외국 합작법인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신주를 발행할 수 있는데 최 회장 측은 2024년 정기주총에서 국내 법인에도 신주발행을 허용하는 ‘정관 변경안’을 내놨다. 안 그래도 지분율이 역전된 상황에서 최 회장 측 뜻대로 정관이 변경되면 무차별적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가능해져 기존 주주의 심각한 주주권 훼손이 우려되는 만큼 찬성할 수 없었다.

결국 정기주총에서 영풍의 반대로 신주인수권 관련 정관 개정이 무산되자 최 회장 측이 이른바 ‘독립’을 선언하며 공동 원료구매 및 영업 종료, 동업의 상징인 서린상사 경영권 장악, 황산취급대행계약 갱신 거절 통보 등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강성두 영풍 사장. 사진=이승재 기자



-MBK와 손을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황산취급대행계약은 두 가문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공동 비즈니스 중 하나인데 20년간 유지해온 계약을 3개월 뒤에 끊겠다고 선언하면 석포제련소는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영풍은 석포제련소에서 만들어진 황산을 온산항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의 황산탱크와 파이프라인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황산취급대행계약 갱신 거절로 황산 수출이 막히면 석포제련소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회사가 망한다는 위기감에 최 회장 측에 위임했던 고려아연 경영권을 되찾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다만 영풍이 직접 고려아연 경영권을 행사하기에는 여러 가지 부담이 있어 전문적이고 경험이 많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기로 결정했고 MBK파트너스에 1대주주 권한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왜 고려아연 거버넌스가 무너졌다고 보나.

“직계 포함 2.2% 지분으로 회사를 사유화한 최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 때문이다. 원아시아파트너스 출자와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등 2건은 최 회장의 경영자로서의 결격 사유가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최 회장은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신생 사모펀드인 원아시아파트너스에 이사회 결의도 없이 5600억원을 투자해 1400억원가량의 손실을 냈다.

고려아연이 5800억원을 주고 인수한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과정과 절차도 의문투성이다. 2021년 2월에 설립된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신생회사를 매출액(2021년 29억원)의 200배에 달하는 고가에 인수했다. 이그니오홀딩스 인수는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증거개시제도(미국 연방법률집 제28장 제1782조) 등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 2건만 해도 1조원이 넘는 규모다. 개인회사에서도 이런 식으로 경영하면 배임이다. 상장회사에서 2% 남짓한 지분을 보유한 최 회장이 그야말로 ‘황제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그간 동업자 정신을 생각해서 선의로 묵인해왔지만 이대로 두면 고려아연이 망할 것 같아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영풍그룹 창업 당시 비슷한 수준이던 양측의 지분율은 어떻게 벌어지게 됐나.

“고려아연은 처음부터 영풍의 자식이었다. 1949년 장병희·최기호 두 창업주가 동업해 설립한 회사가 영풍이고, 영풍이 1974년 별도법인으로 설립한 계열사가 고려아연이다. 두 가문의 지분율은 장씨 일가 28.33%, 최씨 일가 26.97%로 비슷하게 유지되다가 최기호 창업주 별세와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등 최씨 일가가 모종의 이유로 지분을 매각하면서 격차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19년 영풍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장형진 고문이 개인 사재를 털어 서린상사가 보유한 영풍 지분 10.36% 매입하면서 큰 폭으로 벌어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장 고문이 서린상사가 갖고 있던 영풍 지분을 독식하면서 양 가문의 균형이 깨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잘못된 얘기다.”


-이사회 진입 후 다음 스텝은.

“이사회에서 2대주주인 최 회장과 최내현 켐코 대표의 자리는 인정해주려고 한다. 우리의 요구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사회 멤버로만 남으라는 것이다. 고려아연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 원아시아파트너스, 이그니오홀딩스 투자는 이사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 크다.

최 회장 개인의 독단적인 경영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고려아연에 선진화된 미국식 거버넌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집행임원제도 도입과 독립적이고 전문성 있는 사외이사진의 확대, 주주대표성을 강화한 이사회의 구축을 통해 잘못된 기업지배구조를 바로잡고 고려아연의 경영정상화를 통해 주주가치 증대에 힘쓸 것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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