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법정관리, MBK 약탈자 본능의 발현? [EDITOR'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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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골드만삭스, 칼라일 등 세계적 사모펀드들. 2000년대 초 그들이 보여준 기술은 현란했습니다. 부실채권이란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 그들은 부실채권을 사들여 수천억원, 수조원을 벌었습니다. 기업을 인수할 때도 큰돈 들이지 않았습니다. 인수한 회사의 자산을 팔아 인수자금을 갚는 기법을 선보였습니다. 매각 차익은 고스란히 이익이었습니다. 조세회피 지역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세금을 안 내는 기술도 보여줬습니다.

외환위기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던 한국은 외자유치인 줄 알았습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메시가 동네 축구에 들어와 실컷 가지고 놀고 떠난 듯했습니다. 국부 유출을 넋 놓고 바라봐야 했습니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 약탈자”란 이미지가 각인됐습니다.

사모펀드에 대한 경계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5년 한국 기업과 자본시장의 지원군 역할을 할 것 같은 사모펀드가 하나 등장합니다. 토종 사모펀드를 표방한 MBK였습니다. 외국계와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컸습니다.

이후 MBK의 활약은 화려했습니다. 코웨이와 ING생명을 인수한 후 가치를 높여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냈습니다. 시장에 부족한 자본을 공급하는 윤활유, 기업의 ‘후원자’로 포지셔닝하는 듯했습니다. 다른 국내 펀드들도 사냥꾼 이미지를 피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논란이 되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었습니다. MBK가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도 적대적 분위기는 없었습니다.

시선이 달라진 것은 2023년. 한국타이어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 MBK가 뛰어들면서부터입니다. 소수 지분을 가진 장남 편에 선, 현 경영진(차남)에 대한 적대적 M&A였습니다. “기업 사냥꾼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 “굳이 전 대통령의 사돈 회사 일에 끼어든 이유를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적대적 M&A는 실패했습니다.

MBK는 지난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74년 동업한 영풍그룹의 장 씨와 고려아연의 최 씨 가문의 싸움이었습니다. MBK는 고려아연을 경영하는 최 씨가 아닌 대주주인 영풍 편에서 섰습니다.

이때만 해도 개인적 의견은 중립이었습니다. 최 씨 일가의 경영 실책도 있었고, 영풍의 기업이미지도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MBK가 인수하고 몇 년 후 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을 중국 자본에 매각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한국 사모펀드인데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분쟁은 지금도 법정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MBK에 대한 중립적 생각을 바꿀 때가 된 듯합니다. MBK는 채권자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홈플러스를 법정관리에 집어넣었습니다. 당장 현금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선제적’이란 명분을 붙였습니다. ‘법정관리 기업’이란 이미지는 한국에서는 사실상 부도기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금융 채무는 동결되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을 동반할 것입니다. 경영은 실패할 수 있지만 기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마트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대주주들은 법정관리 전에 기업을 살리기 위해 사재 출연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할 것입니다. 정부 당국의 눈치도 봐야 할 테고요. 그러나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해 MBK가 자산매각 외에 어떤 노력을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신용등급 하락이 예고돼 있었음에도 “갑작스러운 조정”이라고 반발하며 법정관리로 몰고 간 것은 무책임해 보입니다.

물론 법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대주주가 무한 책임을 져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ESG나 사회적 책임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특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와중에 일어난 느닷없는 홈플러스 법정관리는 MBK가 기업사냥꾼 이미지를 스스로 덧칠한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 법정에 서기 전에 여론의 법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MBK 경영진이 정무적 감각을 갖고 있는지,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수색 쪽을 지나다 “김병주 도서관 건립 감사합니다. 김병주 회장님”이란 플래카드를 봤습니다. 그런 사회공헌을 하는 이유는 뭐였을까 궁금해집니다. 세금 회피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는 아니었을까 의심이 되살아나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김병주 MBK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제치고 국내 최고의 부자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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